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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UX Gas Writing

UX 라이팅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세요.

호명과 UX 라이팅

by 글쓰는개미핥기

호명의 인문학적 의미


호명(呼名, Interpellation)은 단순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아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주체성을 형성하는 인문학적 개념이죠. 즉, 흰 종이 위에 검은색 글씨로 적힌 글자를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인 거죠.


호명이라는 개념은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에 의해 본격적으로 정립됐어요. 알튀세르의 '호명 이론'에 따르면, 개인을 부르는 권위적 목소리의 효과로서 주체는 종속되고, 이 종속 과정을 거치면서 주체가 형성된다고 해요. 쉽게 말하자면, 누군가가 나를 불렀을 때 그 부름에 반응함으로써 '나는 하나의 주체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호명은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가 발화'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대상을 지각하고 언어를 통해 그 대상에 먼저 다가가는 행위죠. 누군가를 '호명'한다는 것은 먼저 대상에 '호기심'을 갖고, '관심어린 눈총'을 보내는 것과 같아요. 이 행위를 구체화하면 언어로써 대상에게 다가가는 '언어적 움직임'이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인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주체 의식'이라고도 부르죠.


김춘수의 <꽃>과 호명


사람과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줘요. 이때, 이름을 기억하는 행위까지 포함된 것이 바로 '호명'이죠. 그리고 김춘수의 <꽃>이 대표적인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어 가지고 왔어요. 이 시는 존재에게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 존재가 단순히 물리적 실체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려내요.


사람의 관계 속에서도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대상의 '이름'부터 알아내려고 하죠. 그리고 이름을 부르는 순간, 심리적 상호작용이 발생해요. 심리적 상호작용이라 함은 '저 사람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구나?'라는 것부터 시작하게 되는 거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의 첫 부분에서, '하나의 몸짓'은 단순히 움직이기만 할 뿐, 그 어떤 인격도 의미도 없는 존재예요. 즉, 사물이 본질적으로 존재하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죠. 그러나 화자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존재는 화자에게 다가와 '꽃'이 돼요. 여기서 '꽃'은 의미 있는 존재로서 대상이 변화했다는 것을 상징하죠. 이제부터 호명한 대상은 무의미한 존재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변모하게 돼요. 이것은 존재의 가치가 그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데서부터 비롯된다는 철학적 관점도 담아내게 되죠.


호명은 곧 상대를 인정하는 순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시의 후반부에 가면 화자는 자신도 누군가가 호명해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자신을 기억해 주고 불러주길 원하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호명이 '일방적인 행위는 아니고, 상호적인 행위다.'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어요. 화자가 대상을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었듯, 화자 역시 누군가에 의해 인정받고 의미 있는 존재로 변화하길 바라고 있어요.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인데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쓸모있음'을 증명하고 싶고, 증명받고 싶어해요.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또한, 그 욕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죠. 즉, 보편적인 열망인 거예요. 하지만 단순히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에 의해 이런 글을 쓰지는 않았겠죠?


제가 이 글을 쓴 것은 단순한 시적 장치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과 깊이 연결돼요. 바로 'UX 라이팅의 존재'에 대한 의미 부여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이런 글을 통해 일반 대중이 UX 라이팅이라는 대상과 관계를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인정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드는 인문학적 행위인 거죠. 바로 아래처럼 말이죠.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UX 라이팅, 이름을 불러주다: 직무의 가시화와 중요성


UX 라이팅, 이름을 불러주다: 직무의 가시화와 중요성이라는 글은 이런 관점으로부터 시작했어요. UX 라이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널리 알려지고 중요하게 여겨지길 바라는 마음이었거든요. 회사 기술 블로그에 쓰는 글인만큼 함축적이고, '있어빌리티'한 글이 되기를 바랐는 데요. 함축적인 만큼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보이거든요. 조금이나마 그 난해함이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써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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