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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김공룡 Jun 13. 2023

밴드 NELL과 사춘기의 상관관계

넬과 함께한 지독한 사춘기의 밤

 어제 밴드 Nell의 드러머로 활동한 멤버 정재원이 팀에서 탈퇴했다. 밴드 넬은 2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멤버 교체 없이 함께 많은 앨범과 공연을 한 대단한 아티스트다. 그런데 이렇게 4명 중 한 명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과 그로 인한 변화가 새삼스럽게 더 강하게 와닿아 서글퍼진다.


 넬은 나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흑역사지만 중학교 사춘기 시절을 지독하게도 겪었다. 중2병도 그런 중2병이 없을 정도로 세상 우울함과 부정적인 생각은 홀로 다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성격상 누군가에게 힘든 것을 잘 털어놓지도 못했고, 늘 긴장상태였기에 밖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나를 위로해 줬던 것이 넬의 음악이다. 보컬 김종완의 목소리는 정말 쓸쓸하고 외로우면서도 처절하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외로운 가사들에 그의 목소리가 더해지면 곡에 담긴 우울함이 배로 늘어난다. 그래서일까 듣고 있자면 꼭 나 대신 처절하게 울어주는 느낌이 든다.


 넬 멤버 탈퇴 소식을 접하고, 지독한 사춘기 시절의 일기를 찾아보았다. 이불킥을 불러일으키는 너무도 창피하고 어둠 가득한 글들 뿐이었는데, 부끄럽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기이자 시를 한 편 가져와보았다.

너는 붉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나도 붉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
그리고 우리는 붉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어느 날 넌 네 주위를 자로 재기 시작했어.
그리고 네 주위에 사각형을 그리고 또 그렸어.
그리고 지금, 네 주위에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어.

너는 손에 자를 쥐고 있어
나는 손에 붉은 칼을 쥐고 있어
우리는 손에 죽어버린 마음을 쥐고 있어. 

너에겐 더 이상 붉은 마음이 남아있지 않아.
나에게도 더 이상 붉은 마음이 남아있지 않아.
우리에게는 더 이상 붉은 마음이 남아있지 않아. 

그리고 우린 다시 붉은 선을 긋고,
서로를 밀어내고 밀려나겠지.

 중학생이 뭐가 그리도 서글프고 힘들었을까, 무슨 생각으로 저런 글을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매일 날카롭고 긴장감으로 가득했었다. 그리고 그 시기를 채웠던 넬의 곡들도 그러했던 것 같다. '백색왜성', '한계', '믿어선 안될 말', 'Counting Pulses' 등 정말 많은 곡들로 밤을 견뎌냈는데, 거대한 우울함에 잡아먹혀 눈물로 밤을 견뎌낼 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곡이 '유령의 노래'였다. 도입부부터 강렬하게 펼쳐지는 밴드 사운드가 마음을 울리고, 울부짖는 듯한 처절한 보컬이 잘 들리는 곡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랬던 넬도 나이를 먹는 것인지, 그들 안에 있었던 슬픔과 상처가 아물어간 것인지 어느 새부터 음악이 조금씩 밝아졌다. '1분만 닥쳐줄래요'처럼 멜로디만 밝은 분위기의 곡이 아니라, 위로와 희망에 대해 노래하는 등 새로운 분위기의 곡들이 생겨났다.




 내가 꾸는 꿈들이 점점 더 날 작아지게 해

 차갑고 차가워라 마음은 너무도 뜨겁고

 현실은 얼음장 같아라


 But I'll hold on

 이 순간을 잡고 놓지 않겠어 너와 나

 우린 달랐을 뿐 잘못되진 않았어


 - Nell - Dream catcher 中 -



 넬의 처절한 우울함을 사랑했기에 이 변화가 아쉽기도 했지만, 이들도 이제 행복을 찾은 것일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것일까 등의 생각이 들어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독했던 사춘기도 지나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우울한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게 되어 넬의 음악을 찾지 않는 밤이 훨씬 많아졌지만, 넬은 여전히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캄캄한 밤이자 밝게 빛나는 별이다. 멤버 모두가 큰 변화를 겪으며 어려운 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 늘 응원해요  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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