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지금 명상 중이거든요
유성온천역 근처에서 런닝을 뛰는 팀을 자주 볼 수 있다.
유성온천역에서 런닝을 시작하면 갑천 수변 공원을 지나 천변을 따라 한빛탑까지 갈 수 있다.
5키로. 직장인이 퇴근 후 힘들다 생각할만큼 뛸 수 있는 적당한 거리다.
당근 어플에 소모임 기능이 있었다.
운동을 하면 이벤트 참여할 수 있다길래,
또 유성온천 홍보팀에서도 런닝 크루에 대한 취재도 해달라고 했어서
당근 소모임에 들어가봤다.
모이는 장소는 유성온천역 앞 KFC. 시간은 늦은 21:30이다.
침묵의 런닝 크루라고 했다.
SNL에 나오는 크루처럼 사람 만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성격은 I. 개인적으로 홀로 E가 되겠구나 싶었지만
분위기도 익힐겸 조용하게 뛰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대전은 3개의 큰 강이 흐른다.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지리 환경이라고 한다.
유등천과 대전천 그리고 갑천. 이 큰 세 강을 기점으로 대전 행정구역이 나뉜다.
다들 출퇴근으로 자가용이나 지하철, 버스를 이용하지만 나 같은 베테랑 뚜벅이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천변 자전거 전용 도로를 달리면 출퇴근 시간엔 그 무엇보다 빠르게 갈 수 있다.
신호도 없고, 교차로도 없다. 오직 직진만 있다. 큰 강이 대전 중심을 흐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말은 따로 없어요. 각자 명상하듯 뜁니다."
모임장은 각자 소개 후 페이스 맞춰 함께 뛰지만 따로 친분 모임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게 깔끔하다 생각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였다. 대략 10명? 많지는 않다.
다들 왁자지껄한 상황 속 나 홀로 고독해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들 조용해서 다행이다.
침묵의 러닝은 그렇게 시작했다.
유성온천은 말 그대로 온천이 나오는 동네다. 가는 길에 약수터(?) 하나가 있다. 약수터라 하면 마실 물이여야 하겠지만 온천수는 음용으론 부적합하다고 한다. 다른 족욕장은 다 22시가 넘어 운영을 종료했지만 이 샘만큼은 계속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왔다.
일본에는 온천지구에서 온천 계란도 팔고 고구마도 판다고 하던데 이 샘에다가 고기들을 넣어두면 자연 수비드가 될 거고 근처에 그릴 놓고 숯향 입혀 팔면 잘 되겠단 상상을 했다. 아직 뛰기 전이니 이런 잡생각도 할 여유가 있던 거지.
천변은 좋다. 물에 비친 야경이 아름답다. 침묵의 런닝이었지만
충분히 침묵 속에도 각자 즐거움이 있겠다 싶었다.
5KM가 그리 먼 거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거리도 아니다.
야경이 아름다워서, 또 오랜만에 날이 선선해서 다행이었지
꽤 런닝 크루 페이스는 빨랐다. 어..?라? 싶었다.
침묵의 런닝인데 나 홀로 뒤쳐지면 누가 알아주나...
그래서 더 열심히 뛰었다. 말을 할 수 없게 하니 대열에서 이탈하면 안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30분정도 빠르게 뛰어 도착했다. 아니다 40분이던가.
런닝 크루를 보며 매번 궁금했던것이 목적지를 찍고 집에는 다들 어떻게 가는가였다.
"각자 알아서 흩어지시면 됩니다."
간단했다. 누구는 택시를 타고, 누구는 다시 왔던 길을 뛰어 돌아간다.
나는 타슈를 선택했다. 왔던 길을 다시 자전거 타고 돌아가면 된다.
모임장님은 다음에도 또 오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이거 매번 언제 열리나요?
보통 한주에 2번 이상 해요. 모임 일정은 당근 어플에 뜹니다.
네. 시간 되면 또 참여할게요.
그렇게 모임장과도 헤어졌다.
정말로 또 시간이 되면 함께 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라면 뛸 생각도 못했던 거리다.
동네가 조용해 보여도 작은 이벤트들이 여기저기 벌어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깔끔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꽤 좋은 행운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