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내게 가져다준 일상의 변화들
언택트 시대에서 1년 간 살아본 후기
얼마 전 재미있는 밈을 발견했습니다. 2020년을 한 단어로 요약하는 트윗이었는데 표현 방식은 각자 다르지만 모두 한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생각하는 것 같아 공감이 많이 되더군요.
저 또한 올 한 해를 요약하자면 밈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이 절실했던 순간도 없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Ctrl+Z처럼 일 년을 실행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안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힘들었던 한 해 속에서도 기쁘고 보람찬 순간들은 작은 보석처럼 구석구석 존재했으니까요.
그래서 올해 회고는 조금 특별하게 코로나 19로 인해 변화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위주로 적어보려 합니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인 42 SEOUL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코로나 19의 위험성이 커지자 42 SEOUL 또한 3월부터 온라인 학습을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사라지니 의욕도 생기지 않고 내가 지금 진도를 잘 나가고 있는지 의문도 종종 들더라고요. 또 낯선 VNC환경을 적응하는 일도 힘들었습니다.
가을 즈음에 잠시 오프라인 교육으로 전환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지만 막상 가보니 출입 인원수 제한으로 예전의 북적이던 모습은 보기 힘들었습니다. 또 거리를 두고 앉다 보니 예전처럼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의 경험을 교류하던 때가 많이 그립더군요. 불과 1년 전 일인데도 말이죠.
이미 1월에 동료학습의 재미를 크게 알아버린 탓인지 아쉬움이 많았던 본과정이었습니다.
운 좋게도 올해 신입 개발자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낯선 실무 환경에 적응하는 일도 빠듯했지만 제 경우는 재택근무에 익숙해지는 일도 추가되어 더 바쁘게 지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집에서도 업무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게 학부생 때만 해도 집에서는 집중이 안된다며 매일 도서관에 갔고 취준생 때는 카페를 밥 먹듯 드나들었으니까요. 그래도 역시 사람은 적응하는 생물이 맞는지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슬랙으로 출근 시간을 공유하고, vpn 환경으로 개발을 하고, 사내 위키로 매주 업무 내역을 작성하는 루틴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물론 집중력은 회사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자잘한 장점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출퇴근 시간이 왕복 1시간에서 10초로 단축되어 지하철 2호선 출근길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애매해지다 보니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맞춰 일하고, 그게 아닐 때는 쉬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가령 제 경우는 오전에는 아무래도 머리가 굳어 있어서 노래를 듣거나 쉬고 있다가 늦은 저녁에 일을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이번 달에는 팀에서 처음으로 랜선 회식을 진행했습니다.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회사 카드로 시키고 팀즈로 서로의 근황을 묻는 시간을 가졌는데 개개인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환경에서 편한 모습으로 만나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점심도 물론 맛있었고요.
연말이 기대되는 이유는 이래저래 많지만 개발자로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각양각색의 콘퍼런스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만큼 9월~11월 즈음이 되면 여기저기서 소식이 들려옵니다. IF KAKAO나 DEVIEW처럼 IT 전반을 아우르는 대규모 콘퍼런스부터 FEConf, JSConf처럼 특정 기술에 포커스를 맞춘 주제별 콘퍼런스까지. 키노트를 보며 캘린더에 일정을 하나 둘 채우다 보면 한 달이 부족할 지경에 이릅니다.
그만큼 기대하는 연례행사이기에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으로 변경된 모습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연사진은 여전히 화려하고 듣고 싶은 주제도 많지만 콘퍼런스 장소로 향할 때의 설렘과 도착했을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열정 가득한 분위기는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니까요. 부스를 돌며 개발자스러운 굿즈들을 모으는 재미는 덤이고요.
이처럼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좋았던 점도 있었습니다.
우선 경쟁률이 치열한 콘퍼런스들은 매년 티켓팅에서 떨어지기 일쑤였는데 온라인으로 변경되면서 인원수 제한이 없어졌기에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생방송으로 강연을 할 필요가 없어지다 보니 미리 녹화를 하고, 세션이 나오는 동안 연사자분께서 채팅으로 실시간 질의응답을 하시며 효율적인 시간 활용도 가능했고요. 마지막으로 언어별 자막 제공으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연사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실험적인 변화가 많았고 그만큼 앞으로의 콘퍼런스가 기대되는 해였습니다.
여러분의 2020년 새해 다짐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매년 '꾸준히 운동하기'를 다짐하고, 다짐만 한 채로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한 살 더 먹은 미래의 나에게 막연한 기대를 거는 건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나 봅니다.
코로나 19를 핑계로 이대로 올 해마저 운동을 안 하면 미래의 저에게 너무 미안해질 것 같아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이것저것 찾아서 해봤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게 그나마 가장 잘 맞는 운동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닌텐도 스위치 게임인 링 피트 어드벤처입니다.
주변에서 사도 금방 질린다는 얘기도 듣고 실제로 친구 집에서 처음 해봤을 때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는데, 막상 사고 실제로 조금씩 하다 보니 나름 제 스타일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RPG 게임처럼 몬스터를 물리치며 레벨을 올리고, 운동 스킬을 하나씩 모으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센서 인식이 생각보다 잘 되어 있어 내가 지금 올바른 자세로 운동을 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기에도 좋았고요.
평소 운동을 좋아하던 사람이 아닌지라 매일은 못하지만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송년회 또한 비대면으로 전부 변경했습니다.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오프라인으로 보던 사람들을 유튜브처럼 화면에서 보면 어색할 것 같았는데 막상 얘기하다 보니 평소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더군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의 재미는 환경이 바뀌어도 변함없나 봅니다.
여러 온라인 회의 애플리케이션 중에서도 제일 무난한 ZOOM으로 송년회를 진행했습니다. ZOOM에서는 가상 배경과 비디오 필터 기능이 있어 각자 어떤 콘셉트로 화면을 꾸몄는지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가지각색의 화면을 보며 요즘엔 뭐 하며 지냈는지 근황도 묻고, 각자 준비한 음식도 먹고 요새 유행한다는 마피아 게임도 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습니다. 대면 송년회와는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라푼젤(Tangled)'에서 나오는 라푼젤은 왕국의 공주였지만 악역에게 납치되어 약 10년 넘게 탑에 갇힌 채로 살게 됩니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노래 'When Will My Life Begin?'은 그런 라푼젤의 탑 생활에 대한 답답함과 바깥 세계를 향한 동경을 담은 노래입니다.
원래도 좋아하는 노래였지만 며칠 전에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오랜 세월 창문으로만 세상을 봐야 했던 라푼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올 한 해는 타의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고 몸과 마음 둘 다 지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한 해 회고를 하며 느낀 건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평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고, 변화된 일상 속에서 숨겨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는 태도가 생겼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진심으로 바라게 되기도 했고요.
이번에 겪은 특별한 경험을 미래에 그땐 그랬지 하며 웃으며 회상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의 위기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라푼젤이 결국 유진과 함께 탑에서 내려와 잔디에 발을 내디뎠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