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을 폄하하지 않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해라'
나같이 겁 많은 인간에겐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실패가 왜 안 두렵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게 가능한가? 실패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다고? 여러 번 실패했을 때 스트레스는? 그래서 늘 저 말이 불편했다. 위선적으로 들렸다. 현재를 지키기 위해 실패를 피하고 싶은 나 같은 사람을 '잘못 살고 있다'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내게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니던 꽃집을 그만두고 몇 개월 내내 자존감이 바닥을 찍었다. 꽃집에서 잘린 것도 아니고, 내 손으로 그만둬 놓고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나는 퇴사를 '실패로만' 정의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스스로 그만뒀다는 것 자체를 끔찍한 실패로 받아들였다. 일반 회사도 한 차례 퇴사하고 2년 만에 꽃집도 나오다니. 사회 부적응자가 된 기분이었다. 남편이나 친구들은 그건 실패가 아니라고 했다. 그냥 다니다가 맞지 않아 나왔을 뿐이라고. 그때마다 머리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전히 퇴사는 일종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물론 꽃일에 도전해 본 것 자체를 후회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 머무르기를 포기한 것이고, 그곳을 나온 뒤 플로리스트로 먹고사는 일에 대해서도 회의가 짙어진 게 사실이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심다는 막연한 꿈이 좌절된 셈이다. 일단은 그렇다. 현재 시점에서.
하지만 꽃집에서의 1년은 확실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1년 만에 꽃집 매니저가 되어 발주부터 매출 관리, 직원 교육까지 해본 경험이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다. 가장 까다로운 상품인 부케를 제작하면서, 하나의 제품이 고객의 손에 들리기까지 얼마나 섬세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생산자의 입장에서 처음 경험했다. 웨딩 촬영 디렉팅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꽃일을 하지 않았다면 초면인 포토그래퍼와 일대일로 일하며 '어색한 알잘딱깔센'을 해볼 일이 있었을까?
본업으로 서비스직을 해본 경험
생산자로 살아본 경험
프리랜서의 삶을 맛본 경험
앞뒤 안 가리고 미지의 세상에 뛰어들어본 경험
지나온 길에 대해 이 정도의 중립적인 마음을 갖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나는 그 이유가 실패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실패해도 괜찮다는 태도로 삶을 대해왔다면 어땠을까. 그렇게까지 무너지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었을 거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니는 길마다 흘리고 다니지 않았을 거다. 실패는 실패인 동시에 인생의 경험이며, 미래엔 실패가 아닐 가능성도 품고 있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면 말이다.
그러니 실패처럼 보이는 시간을 폄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실패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도 내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