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담사님과 꽃집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상하게 나는 퇴사 사유를 설명할 때마다 의자부터 떠오른다. 대다수가 '그건 잘못됐다'고 인정할 만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서있었다. 다만, 눈에 보이는 곳에 접이식 의자가 나와 있었다. 그걸 본 사장님이 나를 따로 불러내 의자가 왜 나와있는지 물었다. 그때 발바닥과 발뒷꿈치 통증이 심했고, 그래서 손님 없을 때 잠시 앉아 있었다고 답했다. 위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고 썼다는 식으로 둘러댈 수 있었겠지만 나는 늘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이었고, 사장님과 신뢰가 쌓여있다고 믿어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우리 매장은 앉는 매장 아니야" 였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80조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사장님은 그날 이후 그 의자마저 치워버렸다.
상담사님은 사장이 앉지 못하게 했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자신이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화를 내든 따져보든 하라고. 나는 말하는 법을 까먹은 사람처럼 말을 더듬었다. 어...음...만 한참을 반복했다. 마음 속에 부당함, 분노, 억울함, 속상함, 서운함 등 오만가지 단어는 다 생각이 나는데 이상하게 이걸 어떻게 말로 구현해야 할지, 어떤 말투로 해야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내게 상담사님은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지 않으면 그 분노가 나를 공격한다고 했다. 그게 지금 내가 겪는 무기력과 우울의 원인일 수 있다고. 일리가 있다. 분명히 상대의 잘못이고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건강하게 표출하지 못하면 쌩뚱맞게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기 시작한다. 허리가 아프고 족저근막염이 생긴 것도 요령껏 쉬지 않아서, 운동을 꾸준히 안 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었으니까. 심지어 상담사님에게도 한편으론 사장님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꽃집이 인건비를 아끼는 게 중요하고...최대한 효율적으로 인력을 사용해야 하고...하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된다는 걸,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하고 그로 인해 관계가 불편해져도 괜찮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상담사님은 말했다. 예전 같으면 여기서 또 다시 자책을 이어갔겠지만 이제는 그런 자기파괴적인 선택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매순간 나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