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조금씩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스레드가 시작인 것 같다. 그렇게도 싫어하던 SNS인데, 텍스트 기반이라는 것때문에 이번 달 초부터 손을 댔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파트타임 지원 메일을 다 써놓고 전송 버튼도 못 누를 정도로 무기력한데 스레드에 흥미가 간다는 게 신기했다. 해봐서 나쁠게 없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스레드 시작하는게 뭐 대단한 실행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자극 추구 성향이 0에 가까운, 새로운 것에 본능적인 반감이 강한 나로서는 큰 변화다.
생각해보면 글쓰기는 늘 나의 구원자였다. 휴학했을 때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100건 넘는 글을 발행했을 때 나는 내 안에 무언가 밀도있게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상실감도 글을 쓰면서 버텼다.
지난 몇 년 간은 침체기였다. 글쓰는 게 버겁고, 블로그든 브런치든 아무도 보지 않는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스레드는 소통이 자유롭고 소통하기 편하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달라졌다. 예전엔 누가 보든 말든, 반응이 있든 없든 난 그냥 쓰는 행위가 좋은거야ㅡ라며 자위했지만 경험적으로 리액션이 오지 않으면 지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스레드에선 다른 사람의 글도 읽고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달아봤다. 그러다 보니 나랑 결이 맞는 사람들은 내 스레드에도 와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리포스트를 했다. 스레드를 하지 않았으면 이런 즐거움이 있다는걸 , 이런 방법으로도 생활에 활기가 돌 수 있다는 걸 몰랐을 거다. 그리고 스레드를 하지 않았으면 내 블로그가 왜 이렇게 조용한지, 왜 블로그와 브런치를 꾸준히 이어가기가 힘들었는지 몰랐을 거다.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서 시작을 못하는 게 아니라
뭐부터 해야할지 알기 위해 시작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살아갈 방향을 잃은 상황에서 어떠한 기대나 목표도 없이 스레드를 시작하고 나니 글을 좋아하고 소통을 좋아했던 내가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젠 이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서 계속 쓰게 된다. 더 많이 쓰고 싶고, 더 좋은 걸 쓰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에서 기쁨과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어떤 걸로 밥벌이를 하게 될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계속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졌다. 10년 넘게 자꾸 글쓰기로 돌아온다는 것, 아직도 글쓰기가 나에게 매력적이라는 게 그 증거다.
2주 넘게 짤막한 글들을 스레드에 쓰고 나니 블로그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감이 왔다. 대단한 건 없다. 뭐든 그냥 쓰고 보는거다. 자기검열 없이 쓰면서 방법을 찾고, 이 세계에서 소통하고, 그렇게 하면 충분하다는 확신. 그리고 그게 나를 강하게 만들고 다른 걸 시작할 힘을 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 이 글도 블로그에 올릴 수 있게 됐다. 그렇게도 싫어하던 SNS가 나를 너그럽고 단단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