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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Oct 23. 2024

14년, 혹은 18년간 몸 담았던 조직을 떠났다.

이렇게 후련할 수가!

스무 살, 숨가쁘게 달려왔던 대학 입시를 마치고 꿈을 탐색하기 좋은 나이에

나는 경찰대학에 입학했다. 

고3 때 우리 고등학교 출신인 경찰대학 선배들이 와서 설명회 하는 자리에

좋아했던 선배 보러 간다는 친구를 따라 갔다가 

하나라도 더 합격해두자는 마음으로 혹해서 준비하다보니 합격을 하게 되었고

수능 성적이 서울대 갈 만큼 나오지 않았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입학을 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에 청년실업이 점점 악화된다는 어른들 말에 겁을 먹었던 것 같다.

(그 때 일반 대학에 간 내 친구들은 전혀 어려움 없이 취직을 한 것 같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가 입학할 당시에는 아직도 군대 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다.

(선배들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거수경례 해야 하고, 뭐 잘못하면 팔벌려뛰기나 푸쉬업 같은 훈련을 선배들이 줄 수 있었다..)

물론 그 안에서 잘 적응하고 열심히 공부하거나, 혹은 아예 돌이켜서 다른 길을 찾은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입시를 다시 거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에

그저 소극적 반항으로 최소한만 적응하고 졸업할 정도로만 공부하기로 했다. 

주중에는 기숙사생활이니 어쩔 수 없었지만 주말에는 절대 학교에 남아 있지 않았고

4학년 때는 경찰 말고 다른 길을 찾다가 통번역대학원에 응시했고 합격했다. 

당장 그만두기는 무서우니까 공무원 좋은게 뭐냐고 1년 일한 후 휴직부터 냅다 질러버린 것이다. 

막상 번역을 배워보니 나의 흥미를 떠나 밥벌이를 하기에는 번역시장이 녹록치 않아서 다시 돌아왔지만..


내 과거의 선택에는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과 돈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이 싫다는 것은 아는데 이걸 버리고 찾을 다음 선택지가 과연 이것보다 나을지를 몰랐고

(그때만 해도 경찰대학 나오면 어느 정도 인정을 해줬고, 공무원에 대한 인식도 지금보다는 나았다.)  

그런 용감한 선택을 하기에 주변의 목소리가 너무도 크게 들렸다.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알바를 해서 돈을 버는 선택지도 있었을텐데

또 그렇게까지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나가기에는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삶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의 젊은 공무원들은 짧으면 1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손절한다는데 (똑똑하군)

나는 그만두기까지 14년, 대학 시절까지 포함해서 18년이 걸렸다.

그 모든 시간이 있어서 좀 더 단단해진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사실 괴로웠던 시간만큼 좋은 사람들과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도 많았지)

그치만 좀 더 일찍 결단을 내렸더라면 또 다른 방향으로 잘 풀렸을 거라는 생각도 있다.

어쨌거나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파리 20구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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