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때는 엄마랑 소풍을 갔었다. 엄마는 그 당시 깎지도 않은 배랑 왕김밥을 준비해서 같이 소풍을 갔다. 엄마의 도시락은 내가 먹기에 과했다. 다 먹지도 못하는데 엄마는 무겁게 바리바리 싸 오셨다.
내 기억으로 1학년들은 부모님들이 따라와도 됐었나 보다. 운동회 때도 엄마는 오징어채를 맛나게 해오셔서 먹었다.
아홉살에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소풍은 나에게 좋은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때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연촌초등학교를 잠시 다니다가 신창초등학교로 전학 갔었다. 창동에 살았을 때다.
나는 이웃들에게 옷을 많이 물려 입었었는데 여러 가지 옷들이 있으니 엄마가 없어도 나름 잘 코디하고 깔끔하게 입으려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내가 엄마 없는 애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친구들이나 주변에 엄마 없는 걸 말하지 않았다. 괜히 흉 잡히는 것도 싫었다. 나는 엄마 있는 애처럼 살았다.
어느 날 소풍인데 김밥을 싸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일을 나가시고 집에는 김치뿐이다. 나는 그래도 소풍은 신나는 거니까 밥과 김치로 도시락을 쌌다.
설레는 마음으로 소풍 가서 신나고 들뜬 마음이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도시락을 꺼내는데 정성껏 싼 각종 김밥에 반찬이 화려했다.
나는 내 도시락을 꺼내놓기가 부끄러워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굶을 수는 없으니 꺼내놓았다. 김치와 밥 뿐인 도시락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내 옆에 앉으셨었는데 내가 도시락을 꺼내놓자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신다. 흰쌀밥에 김치만 싸 온 사람은 나뿐이다.
배고프니까 한 숟갈 한 숟갈 입에 욱여넣기는 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없고 먹기 싫은 점심이다. 이런 모습을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떤 소풍날은 아버지에게 도시락 어떡하냐고 물어봤다. 아버지는 단돈 500원을 쥐어주었다. 너무 속상했다. 500원 가지고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 관심도 없는 아버지가 미웠다.
나는 소풍을 가지 않는 걸 선택했다. 나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소풍을 좋아하는데 결석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날 선생님이 소풍 왜 안 왔냐고 하셔서 그냥 아팠다고 했다.
운동회 때도 운동을 잘하니 활개치고 하다가 점심때만 되면 교실 구석에서 누가 볼세라 대충 점심을 해결했다. 가족들이 모두 와서 즐기고 축제 같은 운동회는, 나에게 제일 슬프고 엄마 없는 게 서러웠던 행사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소풍 때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도시락을 싼다. 새벽부터 일어나 있는 솜씨 없는 솜씨 과일도 싸고 열심히 싸준다. 편하게 김밥을 사서 보내는 엄마들도 있지만 나는 꼭꼭 내가 김밥을 싸서 줬다.
그래야 엄마도리를 한 것 같다. 요즘에는 애들이 김밥 말고 김치볶음밥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걸 싸주라고 하니 간편하다. 그러면 나는 왠지 김밥을 싸줘야 후련한데, 엄마도리를 안 한 것처럼 어색하다.
어릴 때 엄마가 없어서 못 받았던 것들을 나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해주려고 하고 살았다. 나에 대한 보상처럼 그렇게 아이들에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