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해 보려 한다.
우리 외갓집은 전형적인 시골 모습이었다. 마당에 외양간이 있고 조금 들어가면 툇마루도 있고.. 여섯 살 때쯤 엄마랑 외할머니 집을 왔다. 외할머니는 쪽 찐 머리에 비녀를 꽂고 계셨는데 엄마를 많이 닮았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많이 닮았겠지.
외할머니는 흐뭇하게 우리를 보고 계셨고 말하지 않아도 엄청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보다 더 큰 사랑에 보자마자 외할머니 목을 감싸고 뒤에 매달려 안았다. 바다처럼 넓고 솜사탕처럼 포근한 외할머니 품은 짧은 시간이어도 강렬했다.
외할머니는 자꾸 먹을 것을 내오셨는데 고구마 삶은 것을 내오셨다. 어린 마음에 껍질이 있는 고구마가 더러워 보였다.
"흥 나는 더러운 고구마 안 먹어"
너무 솔직하게 말했는데 할머니가 속상하셨을까 눈치를 살피니 야단도 안치시고 허허 웃으신다. 우리 아버지 같았으면 엄청 혼났을 텐데. 그냥 알 수 있었다. 마음으로.. 외할머니의 특별한 사랑. 시간이 지나 배가 고파 누구보다 맛있게 고구마를 먹었다.
잠시 후 작은 소동이 있었다. 마당의 소가 수박 껍질을 삼켰다가 목에 걸려서 죽을 둥 살 둥 하게 된 것이다. 그때 소의 눈을 처음 보았다. 무척 크고 착하게 생긴 소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른들이 어찌어찌하여 소를 구해주고 모두 안도하였다. 외할머니는 소가 괴로워할 때 같이 안타까워하시고 자식처럼 같이 괴로워하셨다. 외양간 더러운 곳에 사는 소의 아픔에 슬퍼하는 외할머니를 보며 착한 어른이라 느꼈다. 맨날 가족들을 괴롭히는 우리 아버지랑 너무 달랐다.
가끔 외할머니 집을 가게 되면 그때 그 소는 잘 살고 있나 살펴보곤 했다. 눈이 예쁘게 생긴 소. 외할머니도 눈이 예쁘셨는데 너무 짧은 사랑을 주고 일찍 돌아가셨다. 나는 안다. 외할머니의 사랑이 어떤 건지.
안타까운 건 나의 자식들이 넷이나 되는데 아무도 외할머니의 특별한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부모의 사랑과는 또 다른 넓고 깊은 외할머니의 사랑.
나는 소망한다. 내 자녀들이 나중에 자녀를 낳으면 오래오래 곁에 있어줄 우리 외할머니 같은 외할머니가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