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네살에 군기가 빠지다.
한참 됐다.
쿠팡이츠에서 음식 배달을 시켜 먹은 지가 한참 됐다.
어제 추석이라 집에 놀러 온 애들이 그런다. 엄마 돈 좀 모으라고 그런다. 돈이 생기면 저축부터 하고 써야지 쓰고는 저축 못한다고 그런다. 집에서 요리를 하면 생활비를 줄일 수 있다고 알려주는 딸들이다.
우리는 쿠팡계정을 같이 쓰기 때문에 엄마가 무엇을 시켜 먹는 것을 애들은 다 볼 수가 있다. 엄마가 거의 매일 배달을 시키니 생활비가 부족한거라고 그런다.
'들켰다.'
나는 이렇게 배달시켜 먹은 지가 한참 됐다. 거의 올해 들어 지금까지다. 애들한테는 두어 달 밖에 안 됐다고 얼버무렸는데 애들이 논리적으로 짚어준다.
"엄마 쿠팡이츠의 존재를 알고부터 시켰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다. 올해부터다.
당연히 가계부는 구멍이 난다. 저금을 한 푼도 못한다.
나는 살림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이 '요리'이다. 어떻게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밥 없이는 못 산다. 빵이나 콘프레이크를 먹을 수도 있는데 오로지 '밥, 밥, 밥'이다.
내가 에너지가 떨어지거나 심리적 문제가 있을 때 아예 못하는 거는 '요리'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매일 먹어야 한다. 그러니 나는 배달이라도 시켜서 가족의 식사를 해결했다. 나는 요새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 요리까지 몸뚱이가 안 움직인다. 나의 페이스조절의 실패다.
죽으나 사나 가족들 밥을 해대는 기간이 있었다. 거의 미니급식 수준으로 한~솥 끓여놓고 그랬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잘 안 움직인다. 몸도 정신도 깨는데 한참 걸린다.
오늘 말이다
아침밥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깨기 직전까지 된장찌개를 끓이는 꿈을 반복해서 꿨다. 꿈에서나마 의무를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꿈에서 끓인 된장찌개는 먹을 수가 없다. 현실로 돌아와 매일 정시에 아침밥을 먹는 남편을 위해 일어나 지지 않는 몸뚱이를 겨우 일으킨다. 어서 일어나야 한다. 좀비처럼 주방으로 비척비척 걸어가 냉장고를 연다.
거의 가수면 상태에서 냉장고를 살펴보니 호박과 두부가 있다. 사온된장과 집된장을 적당히 섞고 멸치 육수 큐브도 넣는다. 요새는 멸치육수도 큐프형태로 나와서 편하다. 호박과 두부를 기계처럼 썰어 냄비에 넣는다. 양파도 거의 반통을 썰어 넣는다. 남은 야채는 일회용 플라스틱통을 찾아 넣는다. 다음번에 한 번 더 끓일 수 있겠다.
꿈에서는 파를 송송 썰어서 넣었는데 현실의 우리 집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다. '마늘을 넣을까?' 잠시고민하다가 동작을 하나라도 줄이기로 한다.
된장찌개의 퀄리티를 포기하고 완성에 의의를 둔다.
작은 불로 줄여 약간 졸여지게 둔다. 그래야 맹숭맹숭하지 않다. 수저로 맛을 보니 '괜찮다.' 합격이다.
냉장고의 몇 가지 되지 않는 반찬과 김을 꺼내놓고 보글보글 대망(?)의 된장찌개를 큰 그릇에 떠 놓는다. 두부도 듬뿍듬뿍, 호박도 듬뿍듬뿍 떠 넣는다. 오늘 아침의 메인은 된장찌개이기 때문에 아끼면 안 된다.
식탁에 꺼내놓은 아침밥상이 초라하긴 하지만 그래도 된장찌개가 있어 부끄럽지 않다.
그렇게 나는 좀비처럼 남편의 아침밥상을 완성(?) 하고는 안방으로 도망간다.
나는 아직 좀비상태이니 사람(?) 상태로 될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