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뒤통수 맞네.
진짜 이건 반복된 패턴인가 싶다.
결심하고 결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떠서 아무리 보고 온갖 촉을 동원해도 말이다.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징그럽게 없다는 결론이다.
'사람 보는 눈'이 왜 중요할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관계, 적어도 나에게 피해 주고 헤치지 않는 인간관계를 할 수 있어야 내가 덜 고생을 한다.
그것은 마음고생을 덜하게 된다는 뜻이고, 인생에서 좋은 기회도 잡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때 '사람복'이 좋은 사람을 관찰한 적이 있다. 그들은 온갖 귀인들의 도움과 대접을 받고, 이상한 사람은 별로 만난 적이 없다. 그리고는 말한다.
'나는 사람 복이 많아요.'그런다.
뭔가 불공평했다.
'나는 왜 사람 복이 없지?'
태어나 선택할 수 없었던 부모 형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후로 만난 인간관계도 그들은 사람 복이 많고 복에 복을 더한다.
나는? 나는 맨날 사람에 치이고 배신당하고 당하고만산다.
'왜지?'
'왜지?'
뭔가 불공평하다...
그러다 알게 됐다. 그들은 사람 복이 많은 것보다, 사람 보는 눈이 좋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 좋은 사람을 잘 도 골라낸다는 것이다.
나는 정확히 '사람 보는 눈'이 없다. 징그럽게 없다.
그저 나를 탈탈 털어주고 잃어버리고 나서야 '아! 이게 아닌데'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의 눈으로는 도저히 모르겠어서 온갖 논리력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얼추 성공하는 듯이 보였다.
나도 이제 편하게 살아야 되니까 말이다.
처음 시작에 알면 좋겠는데 탈탈 털린 후에 아는 게 힘들다.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첫 번째는 나는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한다. 웬만하면 장점을 찾아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게 지내려 한다. 그러다 보니 힘든 사람의 발견이 늦다.
두 번째는 상대방에게 기회를 너무 많이 준다. 한두 번 데이면 '앗 뜨거워.' 해야 되는데 또 믿는다.
세 번째는 나는 고통을 잘 못 느낀다. 상대가 상처를 줘도 잘 모르거나 나중에 알게 된다. 그리고 고통에 대한 인내심이 강하다. 그러니 또 발견이 늦다. 다른 인내심은 없는데 쓸데없이 사람 인내심이 많다. 이건 아버지의 영향 같다. 참 말도 안 되는 아버지를 참던 버릇이 웬만한 사람을 참는다.
네 번째는 상대가 불쌍한 생각이 들면 또 한없이 마음이 약해져 마음을 준다.
아고 많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이제 말이다.
나도 나를 보호해야 한다. 이제는 편하게 살고 싶다. 애쓰지 말고...
그래도 감사한 건, 품성 좋은 어떤 분들이 나를 골라내는 바람에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도 그럭저럭 사랑을 받았다.
아예 사람 복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든 나도 좀 살게 이제 다 쳐내자.
몇 명만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