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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pr 14. 2021

돌멩이를 선물하는 마음

돌멩이는 예쁘다

“선물이야.”


아이들 손바닥에 잘 데워진 돌멩이는 따스했다. 이다지도 엉뚱하고 귀여운 선물이라니. 우리 집 쌍둥이 네 살들은 밖에 나가면 자꾸 무언갈 주워서 엄마에게 가져다준다. 돌멩이, 솔방울, 도토리, 나뭇잎, 나뭇가지 같은 것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건 돌멩이. 바닥을 헤집으며 줍고 버리고, 또 줍고 버리다가 마음에 드는 돌멩이를 발견하면 집에 갈 때까지 손에 쥐고 있다가 엄마에게 주었다. 소중하게 꼭 쥐고 데워준 그 마음이 고마워 책장 위에 조로로 올려두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 돌멩이를 좋아했다.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오래도록 돌들을 살폈다. 손에 잘 맞는 예쁜 돌멩이를 발견하면 그렇게나 기뻤다.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호주머니에 넣어 와선 비누로 깨끗이 씻어 말렸다. 반질반질해진 돌멩이에 포스터물감으로 꽃을 그리고 글씨도 써넣었다. 거기에 문구용 니스를 덧발라 바짝 말리면 특별한 돌멩이가 만들어졌다. 서랍에 꽁꽁 숨겨두었다가 진짜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만 선물하곤 했었다.


돌멩이를 주워본 사람은 안다. 돌멩이의 아름다움을. 돌멩이는 독특하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어도 똑같은 돌멩이는 하나도 없다. 사람들 얼굴처럼 다 다르게 생겼다. 돌멩이는 고유하다. 깨끗이 씻어 말린 돌멩이인데도 코에 대면 흙냄새가 난다. 강가 냄새가 난다. 숲 냄새가 나고, 바다 냄새가 난다. 돌멩이를 주웠던 장소가 떠오르고 비슷비슷한 돌 틈에서 나만이 알아보았던 돌멩이의 예쁨이 생각난다.


정말로 돌멩이는 예쁘다. 돌멩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사람의 지문 같은 독특한 무늬가 보이는 것도 같다. 쓸모없고 하찮다 여겨지는 돌멩이 하나에도 애정이 솟고 뭉클해지는 것은, 어쩌면 바닥을 내려다보는 마음, 예쁨을 발견하는 마음, 가치와 쓸모를 따지지 않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돌멩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꼭 아이의 마음과 닮았다.


겨울에는 작은 책방에서 작가의 책상을 재현하는 전시를 했다. 그동안 작업했던 세 권의 책과 교정지들,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 작가노트와 필기구, 그리고 아이들이 선물해준 돌멩이 하나를 가져갔다. ‘아이들이 선물해준 돌’이라고 써 붙여둔 조막만 한 돌멩이는, 책상 위에 교정지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눌러주는 문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시를 찾아온 사람들의 손바닥에 안기며 귀여운 기쁨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나를 뺀 세상의 전부>라는 책에는 말레이시아 시골 동네에 머물던 시인이 한글을 새긴 돌멩이를 그 동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는 강가에 나가 가장 예쁜 돌멩이를 몇 개 주웠다. 돌멩이 위에 한 글자짜리 우리말을 볼펜으로 그려 넣었다. 꿈. 숨. 숲. 풀. 밤. 밥. 길. 커다란 낙엽을 주워 포장을 했고 밥풀로 포장을 봉했다.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기뻐했다. 아이들과 밤새워 한 음절짜리 단어들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했다.”


이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으며 생각했다. 산책길에 예쁜 돌멩이 두 개를 주워 와야겠다고. 호주머니에 넣고선 달그락 달그락 굴리며 돌아와야지. 깨끗이 씻어다가 볕에 말려 한 글자를 돌에 그려 선물해야지. 기역니은을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첫’과 ‘싹’이라는 글자를 하나씩 그려 주고 싶었다.


‘첫’과 ‘싹’은 시작하는 말들이야. 돌멩이 같은 너희들. 너무 작아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아무도 모를 단단한 시작과 미래와 아름다움을 품고 있을 너희에게 돌멩이를 선물하고 싶어.


아이들이 선물해준 돌멩이들




월간에세이 4월호에 '돌멩이를 선물하는 마음'을 기고했습니다. 돌멩이의 예쁨을 알아보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배워요. '돌멩이'라는 말도 너무 귀엽지 않나요? 가끔을 바닥을 내려다보며 예쁨을 발견하길. 다정한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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