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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도 생성형 AI를 쓴다

AI와 일자리 문제

by 오징쌤

얼마 전에 메이저 방송국에서 PD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한 회사에서 자기네 회사에 찾아와서 세미나를 열었다고 했다. 그 세미나의 내용은 영상 편집 프로그램에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능을 추가했다고 홍보하면서, 이 기능을 쓰면 영상 편집할 때의 반복 작업들을 빠르고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고객들에게 제품을 소개하고 시연하는 세션을 종종 하기 때문에 그 세미나가 어땠을지 눈에 선했다. 친구네 회사에서 그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영상 편집 감독들이었고, PD는 내 친구 한 명뿐이었다고 했다.


내 친구가 보기에, 그 세미나에 온 편집 감독들은 세미나 내용대로 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생성형 AI 기능을 쓰면 자기들의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는 듯했다. 하지만 PD의 눈에는 그 세미나가 정말 다르게 보였다. 생성형 AI를 쓰게 되면 그 자리에 있는 수많은 편집 감독들의 90% 정도가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영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방송국에서는 대부분의 스텝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데, 이들의 출퇴근부터 근태 등 업무 관리를 하느라 PD들은 애를 많이 먹는다고 했다. 이제 생성형 AI 덕분에 비정규직을 훨씬 적게 쓸 수 있고, 그러면 업무를 훨씬 효율적으로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인건비까지도 엄청나게 줄일 수 있는 것이다.


22년 말에 Chat GPT가 출시되고 나서 2년 반 정도 지났다. 그 사이에 구글, 메타 등의 빅테크 기업에서 LLM을 출시했고, 그 LLM 기반의 생성형 AI 서비스들이 영상, 이미지 등 여러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생성형 AI 서비스들은 챗봇 형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기존 업무 환경에 통합되어 일상적으로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아직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앞서 말한 영상 편집 프로그램처럼 기존에 잘 쓰이던 제품들에 생성형 AI 기능이 추가되고 있다. 나아가서 생성형 AI 기반의 새 애플리케이션들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이제는 리더가 어떻게 의사결정하느냐에 따라 일을 사람이 할지, 아니면 AI가 할지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https://www.businessinsider.com/netflix-generative-ai-use-artificial-intelligence-2025-7

이것은 한국의 작은 방송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생성형 AI를 써서 만든 영상 클립을 작품에 싣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기사가 나왔다. 넷플릭스에서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는 공상과학 드라마 <이터넛(The Eternaut)>을 만들고 있는데, 이 드라마 막바지에는 큰 빌딩을 무너뜨리는 장면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 장면을 이전처럼 사람이 한 땀 한 땀 그래픽 작업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터넛>의 제작비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넷플릭스의 대작 <아이리시 맨(The Irishman)>에서 시각 효과로 만든 클립 하나를 만드는 비용밖에 안 들었다고 하니 혁명적인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이것이 워낙 놀라운 소식이다 보니 굉장히 많은 언론사에서 이 내용으로 기사를 냈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생성형 AI가 만든 영상을 작품에 넣는 것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 생성형 AI로 영상을 만들게 되면 창작자, 배우, 제작진의 일자리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저작권, 나아가서 작품의 권위나 고유성 등을 판단하는 창작 윤리 등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Chat GPT가 출시된 이후 영화 업계 전반적으로 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넷플릭스도 이 논란을 고려해 생성형 AI로 영상을 만드는 데에 신중하게 접근했다. 하지만 이번에 효율성과 창의성, 제작비 절감 효과를 입증하면서, 앞으로 넷플릭스가 생성형 AI를 보다 열린 태도로 활용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세계에서 가장 큰 OTT 플랫폼이다 보니, 넷플릭스가 생성형 AI에 대해 어떤 정책을 시행하느냐에 따라 영상 업계의 수많은 관계자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봇물 터지듯 생성형 AI로 만든 영상이 넷플릭스 작품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자본은 부족한 창작자들이 폭넓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영상 제작 시스템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그만큼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여기서 윤리와 정치의 문제가 시작된다. 사람이 할 일 중에서 어디까지 AI에게 넘겨도 될까. AI에게 역할을 넘기고 나면, 사람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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