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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Sep 19. 2018

명절이 두려운 며느리를 위한 책 처방전

[마더티브 명절기획] 명절 앞두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갑갑하다면

왜 명절에는 '당연히' 시댁 먼저 가야 하는 걸까 

전은 왜 부쳐야 하는 걸까 

설거지는 또 얼마나 많을까 

마음이 답답해지는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해 마더티브에서 엄선한 책 3권

 



누구를 위하여 전은 부치나?

박선영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스윙밴드



박선영 전 한국일보 기자가 쓴 책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답답한 속을 확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글귀가 곳곳에 숨어있다. 날카롭게 본질을 찌르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다. 남편도 시댁도 모두 19세기를 살고 있는데 미래에서 온 며느리인 자신만 홀로 고독했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치게 된다.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19세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미래를 살아갈 아들딸을 생각하면 죄책감과 자괴감이 밀려오는 상황. 왜 여자들은 명절 때마다 자아분열을 겪어야 하는 걸까.



p.199 누구를 위하여 전은 부치나? 몸은 전을 부치고 있는데, 마음은 왜 전을 부치고 있느냐고 끊임없이 묻고 있는 모순적 상황. 문제는 힘든 몸이 아니라 마음이 승복할 수 없는 노동의 합목적성에 있었다.


p.201 명절증후군은 단지 1년에 한두 번 과도한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고충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여성 착취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제의에 대한 여성들의 신체적 거부반응을 뜻한다.


p.201-202 ‘명절 하루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속 좁게 구는 거야?’처럼 멍청한 소리도 없다. 그날 하루 우리는 364일 겪어온 차별과 착취를 어머님과 아버님과 서방님과 아가씨들 앞에서 19세기 버전으로 응축해 겪으며,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여성의 운명에 몸서리 치고 있는 것이다.




아 평화요?

최은영 <당신의 평화>(<현남 오빠에게> 수록작), 다산책방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 수록작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 평생을 남편과 시어머니의 충실한 종노릇을 하며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살아온 엄마는 예비 며느리 앞에서 가부장제의 가해자가 된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이 아프다. 


정작 자신은 손 하나 까딱 않으면서 좋은 시아버지 코스프레 하는 아빠. 그가 말하는 가정의 평화는 이 소설 제목처럼 ‘당신의 평화’일 뿐이다. 특정 성별의 일방적 희생을 재물로 삼는 기만적 평화. 최은영은 말한다. “며느리라는 이유로, 아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받아 마땅한 고통은 없다”고.



p.116(e북) 그의 집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지치고 피곤했다. 유진이 유진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부분이 아프게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p.117(e북) 대학 교육을 받고 여성학 수업을 들었으면서도 유진은 어쩐지 그의 식구들 앞에서 그의 식구들이 보기 좋은 모습대로 행동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와의 갈등을 피하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그런 태도를 취했던 걸까. ‘자기 여자’를 데려가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던 그의 욕구를 유진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었다. 유진이 이해할 수 없고 차마 돌아보기조차 싫었단 사람은 그때의 유진 자신이었다.


p.137(e북) “엄마랑 좀 그만 싸워라. 설거지하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여자들끼리 신경전 벌이고 그래. 서로서로 양보하고 그래야 가정이 평화롭지.”

"아... 평화요."




내 부모는 내가 감당한다

김은덕·백종민 <사랑한다면 왜>, 어떤 책  



전 세계를 함께 여행하면서 글을 쓰며 살아가는 김은덕·백종민 부부. 이들의 명절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하나, 두 번의 명절을 여자 쪽 집, 남자 쪽 집 공평하게 나누어 간다.

둘, 명절 때 차례음식 준비는 여자의 일이 아니다.

셋, 내 부모는 내가 감당한다.


이들 부부가 처음부터 이렇게 평등한 명절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책에는 ‘그럭저럭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을 포기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부부의 모습이 가감 없이 담겨있다. 남편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p.70 결국 문제의 핵심은 나에게 있었다. 은덕의 세계와 엄마의 세계를 이어 붙인 장본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음에도 연결만 시켜놓고 매개자의 책임은 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현명하게 잘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고 뒤로 숨은 내가 문제였다. 그동안 내가 원한 건 연극 한 토막에 불과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하루 이틀만 연기하듯 넘기면 모두가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연극은 연극일 뿐, 언제까지 역할놀이를 할 수는 없다. 내가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은 동안 모두가 서로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나만 나쁜 놈이 되어야 했다. 한쪽에게 확실히 나쁜 놈이 되어야 했다(종민).


p.80 그러나 남자 배우자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명절 바로잡기를 실현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명절 가이드라인을 실천하다 부모와 갈등이 불거졌을 때 아들이 당사자로 나서서 내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중략...6개월에 한번씩 찾아오는 명절 스트레스가 배우자와 시가를 향한 울분으로 바뀌면서 결혼생활은 불행에 빠진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문제로 인해 내 어머니의 세대가, 내가, 그리고 내 자녀의 세대가 불행에 이미 빠졌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바꿔 나가야지만 다음 세대가 위안을 찾을 수 있다(은덕).



by. 글- 금복

      디자인-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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