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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혁재 Feb 05. 2021

광희문 이야기

광희문을 찾았다.


 새까만 .  사내가  손으로 성벽을 짚어가며 휘적휘적 걷고 있다. 성벽이라도 부축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한 걸음걸이다. 씻지 못해 떼가 잔뜩  검은 손톱들이 성벽 돌을 긁어내며 사내는     위태롭게 성문으로 걷고 있다. 이따금 광대 근처 얼굴 가죽이 놀란  움직였다. 사내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익숙한  혹은 알아차리지 못한  사내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다. 다시 성벽을 짚고 성문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입술은 겨울바람에 대로  피딱지가 덕지덕지 앉았다. 움푹 파인  때문에 광대가 유독 빛난다. 날씨에 맞지 않게 얇은  끝자락은 겨울 칼바람에 정신없이 휘날린다. 사내 다리가 바람을 이겨낼  있을까. 성문에 다다랐다. 피곤에 지친 사내가 루에 올랐다.   




光熙門樓上에 凍死體


아편중독자로서

굶고 추워서 죽어


재작 26일 오전 2시경에 시내 광희문 루상(光熙門樓上)에 어떤 24~5세 되어 보이는 조선 청년 한 명이 얼어죽었는데 그는 아편중독자로 경성시내를 배회하던 자이며 원인은 먹지도 못하고 잘 입지도 못한 후 전기의 장소에서 자다가 요사이 맹렬한 새벽일기에 그만 견디지 못하여 필경은 죽어버린 것이라더라

(동아일보 1921. 12. 28. 3면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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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동남쪽에 위치한 광희문 이야기다. 광희문 밖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토막이나 불량주택"을 짓고 모여 살았다고 한다. 직업도 집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옛날에야 성곽 동남쪽 광희문이라 하면 그 위치가 바로 생각났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해선 머릿속에 위치가 잘 안 그려진다. 성 안과 밖을 연결하는 몇 안 되는 문이라는 제 역할을 하던 때야 광희문은 그 자체로 위치를 나타낼 수 있는 무언가지만, 지금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번 출구 앞이 광희문 위치를 설명한다.


명동으로 뻗어가는 뻥 뚫린 퇴계로 옆에서 한 방향으로만 팔을 겨우 뻗은 광희문이 새삼 안쓰럽다. 흔히 광희문을 서민의 애환과 연결 짓는데 이는 조선시대 광희문이 시체가 나가는 문이었단 설과 천주교 순교자나 전염병에 걸려 죽은 사람, 군인 시신이 광희문 일대에 놓였단 사실 때문이다. 시신의 혼을 달래는 무당집이 광희문 밖 신당동에 몰려있었다고 하니 괜히 광희문이 시구문(屍口門, 시체가 나가는 문)이 아니다.

자유롭게 광희문을 드나들 수 있다.


광희문도 원했을진 모르지만 시신들을 눕힐 자리를 주고 유족들의 울음소리를 묵묵히 들어준 세월이 꽤 길다. 임금도 못해준 일을 해 온 광희문이 퇴계로보다도 주목받지 못하는 위치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런데 한편으로 숭례문과 동대문 사이, 퇴계로 옆 한 켠에 웅크리고 있는 광희문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안정감 있다. 부각되지 않고 양철지붕 낮은 집들과 조용하게 어울리는 모습은 마치 광희문이 '그래도 내가 너희들 옆에 있어야지'라고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는 모양이다. 463번 버스를 타고 퇴계로를 달려 '광희문, 광희동 사거리' 정류장에 내렸을 때 카페 건물에 가려 살짝 고개를 내민 광희문 루를 보고 왠지 모르게 느껴졌던 안정감의 근원이다.


자식의, 부모의, 친구의 시신이 있을까 광희문 근처를 서성이던 사람들이 있었을 자리는 말끔하게 잔디가 깔려있고 성벽을 따라 소나무가 길게 늘어섰다. 꽤 키가 큰 소나무다. 시구문인 줄 모르고 왔다면 정말 운치 있는 성곽이라고 느껴졌을 만한 풍경이다. 새파란 하늘과 눈 덮인 잔디, 우뚝 솟은 소나무가 고요함을 더한다.

잔디밭은 출입 금지다.


광희문을 등지고 신당동을 바라보니 경사가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 보였다. 버스를 타고 퇴계로를 지나면서 본 높이 솟은 빌딩은 더 이상 시야에 없었다. 비교적 낮은 높이의 집들이 언덕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위에서 광희문을 내려다볼 겸 언덕을 올랐지만 언덕길이 광희문에서 살짝 틀어져 난 탓에 광희문이 생각보다 눈에 훤히 들어오지 않았다.


정면의 신축 빌라가 그나마 높은 건물이다.

다시 내려갈까 마음먹은 차에 하얀 벽돌집이 눈에 띄었다. 녹색 표지판이 붙어 있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노랫말이 쓰여있다.

그 아리랑 고개가..


높지 않아서 '이것도 언덕이냐' 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겐 돌아오지 못할 언덕이었다. 상여를 맨 누군가, 뒤 따라가는 유족들은 이 낮은 언덕을 오르는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었을 테다.


표지판을 본 골목에서 광희문 방향을 바라봤다. 내 앞에 가까이에는 개량 한옥들이 좁은 간격으로 오밀조밀 모여있고 저 멀리는 아파트도 보이고 호텔 빌딩도 보인다. 어떤 높은 건물에는 아디다스 마크가 찍혀있는 것을 보니 동대문 근처이지 않을까. 하얗게 칠한 듯 눈 덮인 양철 지붕들 위로 빌딩들이 보이니까 광희문이 보이지 않아도 어딨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키 큰 소나무가 보이긴 했다. 도성 밖에서 도성 안을 바라보는 느낌이 아주 조금 짐작이 갔다.





참고

김지은, 박은수 (2015). 역사,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한 광희문의 공간 활성화 방안 연구. 한국과학예술융합학회. 19. 243-257

한양도성박물관, 한양도성 아카이브

https://museum.seoul.go.kr/scwm/board/NR_boardView.do?bbsCd=1155&seq=2017102617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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