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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사] 첫 번째 글은 공동체가 중요한 원인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개별주의적 존재론과 관계적 존재론을 다뤘고 공정성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오늘은 같은 기사 마지막 단락에서 김정희원 교수가 소개한 뮤추얼 에이드(Mutual Aid)를 다뤄보려 합니다.
교수는 뮤추얼 에이드(Mutual Aid)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각자 힘들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즉 가족이나 친구, 사회복지사 등을 떠올려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걸 공통의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확대하는 것이다."
"간단하게는 '내가 오늘 빙판길에 넘어져서 나갈 수가 없는데, 누가 감기약 사다 줄 수 있어?' 하면 네트워크 안의 한 사람이 '퇴근길에 들러 사줄게' 하고 답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계속하다 보면 도움, 참여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이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주장이다."
'가족, 친구, 사회복지사 등'이라고 하지만 해외에서 뮤추얼 에이드가 운영되는 방식을 보면 협력하는 사람의 범위가 제시된 범위보다 더 넓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동네 이웃으로도 범위가 넓어집니다. 서울을 예로 들면 창천동에 사는 사람들, 신당동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네트워크란 페이스북 그룹, 오픈 카카오톡, 밴드 등을 활용해 서로 소통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코로나 19란 감염병이 지역사회에 깊이 침투하면서 영국엔 'Covid-19 Mutual Aid UK'가 생겼습니다. 정부기관은 아니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입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코로나 19라는 위기에 처해있지만 피해가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는 감염병에 더 취약하고 그래서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단체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위처럼 설명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가격리를 하고 있지만 노인, 장애인,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단체에 속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코로나 19를 이겨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그들에게 필요한 식량, 처방약 등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정부가 보살피지 못하는 영역을 지역사회가 공동체란 이름으로 채워나가는 셈입니다.
이 단체는 플랫폼에 가깝습니다. 단체가 책임지고 봉사 인력을 모집하거나 업무를 배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역사회에서 누가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위치 정보를 알려줄 뿐입니다. 이 과정 이후부터는 지역 사람들에게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갑니다. 같은 지역사회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왓츠앱을 활용해 소통할 공간을 만듭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이 네트워크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식량이 필요하다'라고 이 네트워크에 알리면 이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누군가 도움을 주게 됩니다.
허핑턴 포스트 UK의 기사는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전 영국 총리가 주장한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와 뮤추얼 에이드를 연결 짓습니다. 캐머런 전 총리는 "사람들이 중앙정부, 지방정부 관료에 의존하기보다 그들이 겪는 문제를 그들 스스로 그리고 그들만의 공동체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영국 지역사회에서 코로나 19를 이겨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뮤추얼 에이드가 캐머런 전 총리의 빅 소사이어티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같은 기사에서 영국 이즐링턴(Islington)에 거주하는 릴리(Lilly B)씨는 뮤추얼 에이드를 경험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저를 돕기 위해 사람들이 빨리 모이는 모습을 보면서 감명받았어요. 진짜 공동체임을 느꼈습니다. 런던과 같은 곳(도시)에서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도움과 참여의 감각이 '인간이 스스로를 관계적 존재로 생각하게 한다'는 기사 내용이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경쟁 사회에 매몰돼 있으면 내가 힘들 때 누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기 참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을 새롭게 만드는 일에 투자할 시간도 마땅치 않습니다. 당장 '내일 나는 어떤 능력을 증명해야 할까?' 고민하기도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내가 힘들 때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애인, 가족, 소수의 정말 친한 친구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처럼 힘든 상황에서 내가 생각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경험은 꽤 신선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내가 사는 동네가 인정 넘치는 곳이었구나'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경험이 꾸준히 반복된다면 '내가 사는 동네는 서로에게 항상 도움을 줘' 정도까지 발전하지 않을까요?
한국은 정부가 사회적 약자나 자가격리 대상자에게 비교적 지원을 잘해주는 덕분에 시민사회가, 지역사회가 끈끈해질 틈이 적긴 합니다. 하지만 튼튼한 정부 지원에도 사각지대는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라면을 끓여먹다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사례를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이후 아동 급식카드가 살 수 있는 품목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란 보도도 나왔던 걸로 기억납니다.
아이들 식사를 책임져주는 뮤추얼 에이드가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스마트폰과 SNS에 익숙한 아이들이 네트워크에 도움을 요청하면 지역사회 누군가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식입니다. 학부모가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결식아동을 지원하기 위한 봉사단체나 지원단체가 물론 많지만 뮤추얼 에이드도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 주변에도 뮤추얼 에이드가 잘 작동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서강대학교 캠퍼스에 사는 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거나 학교 인근에서 다친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주고 분양까지 이어주는 '서강고양이모임'입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를 발견하면 직접 구조하거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상황을 공유하고 다른 회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학교에 고양이 집을 마련해주고 식사도 챙겨줍니다. 일정과 규칙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카카오톡 단톡방을 이용해 조율합니다. 뮤추얼 에이드 운영방식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고양이에서 이웃으로 범위를 확대시켜보면 어떨까요. 사람들의 건강이 위협받는 등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주는 도움이 물론 중요하지만 함께 사는 이웃들이 가진 힘도 생각보다 크다는 점을 알게 된다면 사회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공동체란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언제든 도움을 주고받는 공간'이란 인식이 생기면 구성원들은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이 많아지고 공동체가 겪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보다 더 강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 범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회는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경향신문 기사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요약해보았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내가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이웃과 더불어 살다 보면 타인과 신뢰가 쌓인다.
신뢰는 타인이 겪는 어려움을 더욱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공감과 이해는 공동체가 겪고 있는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경향신문의 이 기사, 어떠셨나요..?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1202115005&code=940100
https://brunch.co.kr/@hiyoung2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