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다닐 때 살았던 집 베란다에 짙고 어두운 갈색의 서랍장이 하나 있었다. 한 손으로 들려면 힘을 꽉 주어야 할 정도로 한가득 묶인 편지봉투들이 나왔다, 받는 사람에 적힌 아빠의 이름. 엄마가 아빠에게 보냈던 편지다.
깔깔 웃으며 당사자에게 이 발견을 알렸다. 엄마가 했던 정확한 대답은 희미해져 기억이 나질 않지만 엄마는 분명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초등학교를 막 입학한 자식에게도 느껴지는 부끄러움. 한 사람을 위해 쓴 편지란 그만큼 사적이고 둘만 간직하고픈 내용이다.
딸과 아들. 동생과 누나. 형과 친구. 한 사람을 위해 쓴 편지를 빼곡히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읽는 이들이 있다. 모니터엔 자신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오고 스피커는 떨리는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다. 슬쩍 곁을 지나가는 사람도 보고 들을 수 있는 공간에서 한 사람을 위해 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있다.
불과 49일 전 구급차가 쉴 새 없이 오가던 거리. 소방서장이 나와 사고 브리핑을 하던 자리. 이젠 무대가 들어섰고 무대 앞엔 사람들이 앉아 너무도 사적인 대화를 듣는다.
“눈 내리는 걸 좋아하는 네가 너무 귀여워서 눈이 싫던 나도 눈이 좋아졌어” “과외비 내준다고 생색내지 말 걸. 싸울 시간에 한 번 더 안아줄 걸” “언니의 모든 모습은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이 없어”
이들이라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 아닐 텐데란 생각이 들 무렵 옆 사람이 울고 앞사람이 운다. 낯간지러운 말들로 포장하기 버거운 감정을 듣는 이가 확인하는 시간. 위로에 말이 필요 없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 ‘말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릴걸’
10월 30일 순천향대병원에서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 앞에 섰다.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주저앉아 머리를 감싼 그들 앞에 설 자신이 없어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 빌었다. “해드릴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하루가 더 지났다. 장례식장을 돌았다.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해드릴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유족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잊기 힘든 목소리로 들렸다.
49재가 왔다. ‘오늘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마이크를 들이밀지 않았지만 마이크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 옆 사람도 분명 들었을 거다. 눈치 없이 발만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