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 수현 Mar 27. 2019

내가 정규직 아나운서를 그만둔 이유 (1)

'퇴사' 권하는 시대

'떠남'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른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끌벅적한 도심에서 벗어나 주말에는 근교 카페 답사하기. 아이들과 주말농장 다녀오기. 반차와 주말 휴일을 껴서 가까운 나라라도 도깨비 관광 즐기고 오기. 처음 모양새는 온 데 간 데 없이 흩어져서 헝클어진 그 자태가 너무나도 참기 힘들 땐 '떠남' 버튼 하나 꾹 누르고 나를 내 주변을 '리셋'하고 그렇게 비워내고 새로운 기운을 비워내길 바란다. 방송 속 수많은 콘셉트의 여행 프로그램들도 그러한 본능을 대리 충족시켜주기에 떠나지 못하는 자, (혹은 떠나도 떠나도 그 여정을 또다시 갈구하는 자) 눈길 끌기에 충분했을 터, 그렇게 누구나가 일상을 벗어나 '떠남'의 주체가 되고 싶어 한다. 문제는 떠난다는 것의 대상어에 무엇이 놓이냐에 따라 내 마음속 부담감과 주변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나는 '회사'를 떠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규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던 '아나운서' 자리를 떠났다.



아나운서 '퇴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방송을 마쳤던 그 날. 23살에 방송사라는 곳에 문을 두드리고 34살에 졸업.


나를 놀랐게 했던 건,
"그러지 마"가 아닌
 "나도 실은" 네 글자였다.


퇴사 지향자들에게, 회사 싫증자들에게 조금은 편해진 세상이 된 것임은 분명하다. '퇴사'라는 단어를 꺼내는 예전처럼 조심스럽지는 않은 세상이니까. "회사 그만뒀어요", "저 이 직장 조만간 관둘 겁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엄청나게 걱정스러운 반응과 무수한 군더더기의 뒷이야기를 감당해야 했던 건 좀 옛날 얘기다. (물론 남들은 내 인생에 그리 오랜 시간 관심 갖지도 않을 거지만) 혹여 오지랖 지수가 높아 "너 그렇게 철없이 세상 살면 안 돼" "좀만 버텨. 회사 떠나서 뭘 어쩌려고"라고 누군가를 설득할 만큼 직장이라는 영역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아니 조직이 뭘 어찌했길래, 이렇게나 모두가 너란 존재 매력 없어라고 외치고 있는가) 내가 퇴사와 관련된 의향을 내비쳤을 때 나를 놀라게 했던 건, "그러지 마"가 아닌 "나도 실은..." 네 글자였다. 내 마음을 살짝 들여다 본 자들 중 열이면 아홉은 지금 자리하고 있는 이곳을 떠나 다른 토양을 향해 새로운 씨앗을 뿌리겠노라 꿈꾸고있었고, 그 언젠가의 희망까지 차곡차곡 담아 내 조심스러운 결정에 조용한 응원을 보탰다. 세상에. 누군가 사표를 가슴에 넣어두고 산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꿈꾸고 구체적인 준비를, 그 생각들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때론 나만 이런 게 아니었네 안심도 됐던 게 사실.

언제까지 하고
'떠나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본격화되던 시점이었다.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보스턴에 왔다. 이해하기 쉽게 근황 설명을 하자면 결혼해서 남편의 일터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온 셈이고, 조금 더 차근차근 부연설명을 보태자면 아나운서 그 이후, 내 안에 소진된 콘텐츠를 채우고 나란 사람-10여 년간 방송이라는 작업에 농렬히 뛰어들었던 자-가 내포하고 있는 가능성, 그 지대를 넓히기 위해 공부를 하러 왔다. 방송사 규모가 결코 크진 않았지만, 원한다면 회사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묵묵히 담담히 월급 받고 다닐 수 있는 내 자리를 스스로 떠났다. 잡 노마드 시대에 굉장히 고리타분한 단어가 되어버린지는 오래지만 '정규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던 아나운서 역할을, 그토록 갖고 싶어서 간절히 애태웠던 내 옷을 스스로 벗어낸다는 건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이왕 벗는 것, 깔끔하게 벗고 더 단단한 옷을 입고 떠나기 위해 또 많은 여정을 계획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니던 직장이 '파업'이라는 시기를 맞았을 때, 부끄럽게도 회사가 풀어야 하는 무수한 숙제들과 갈등의 본 지점에 집중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나란 직장인이 방송을 계속해야 할지, 한다면 언제까지 하고 '떠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본격화되었던 시점이었다. 매일매일 고3 수험생처럼 짜여 있던 방송 진행 시간표가 '덜렁' 비어버렸던 시간이었으니, 그 공백은 자연스레 '퇴사'에 대한 수많은 생각과 고민들로 채워져 갔다. 이젠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자극제 같았던 타임라인.


무수히 많은 날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정이었기에 3w 3단콤보를 완성하는 결정적 그날은 생각보다 담담했음을.


2010년에 입사해 2012년 정규직 사원으로 결혼(wedding)과 퇴사(without my company), 유학(way to school), 한 해에 하나 감당하기도 만만치 않을 미션들을 몇 달 사이에 연달아 경험하고 있으니 '3w 3단.콤보, 우여곡절의 최대치 삼종세트를 경험하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퇴사를 하기 위해 결혼한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기 위해 퇴사를 결정한 것도 아니었지만, (유학 가고 싶어서 결혼한 것은 더더욱이 아니고) 살다 보니 의도치 않게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궁합이 맞는 시점도 찾아오더라. 늘 "나는 타이밍이 안 좋아. 운도 없지."라고 볼멘소리를 했던 게 무색할 만큼! 운이 좋게도, 감사하게도 하고 싶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공부하려면 회사일은 어떻게 해?'라는 질문에 늘 극심한 압박을 느껴왔던 건 바이 바이. 그 물음표에 실린 두껍고 잔혹한 부담감을 시원스레 놓아둬도 될 지점이 비로소 찾아왔다. "결혼은 안 하고 이 나이에 공부하러 외국에 간다니"라는 잔소리가 옵션으로 따라붙기 마련인데, 다행히도 내 인생에 선물 같은 남자가 찾아왔으니 이 모든 결정과 꿈을 지지해 주고 있으니 잔소리 옵션 프리패스. 퇴사 is 뭔들.


90년생이 온다는데
난 어디로 도망가나 초조한
80년대 출생자들

어쩌면 대단히 '작은' 퇴사의 몸짓. 엄청난 연봉을 받는 대기업을 뛰어나온 것도 아니고, 한국에 거주하는 온 국민 누구나가 끄덕일 법한 방송 프로그램 속 스타급 아나운서로 활약했던 것도 아니었기에. 나의 회사 탈출은 퇴사라는 최근의 주된 흐름에 작은 파장을 더하는 수준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혹은 그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정되고 안정된 영역을 떠나기를 꿈꾸는 86 호랑이들, 90년생이 온다는데 난 어디로 도망가나 초조한 80년대 출생자들, (특히 국민학교 다니다가 중간에 초등학교로 명칭 바뀌어서 엄마한테 공책 새로 사달랐고 졸랐던 바로 그 세대!) 그 언저리에 놓인 서른 초중반 우리 세대를 위해 건배하는 심경으로 (아, 나 술은 안 마시는데) 소박하게 끄적끄적. 연재를 시작. <보스턴 새댁의 미국생활적응기>와 함께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2010년 입사해서 시작했던 <뉴스데스크 강원> 2019년까지 같은 자리에서 꼬박 9년. 그 사이 8명의 남자앵커가 바뀌었다.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국엔 10년의 세월을 토해내듯, 촉촉한 물기를 왈칵 뿜었다.  내가 갈 길, 내가 한 결정에 대한 뿌듯한 희열이라고 해석해두자.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정규직 아나운서를 그만둔 이유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