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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Mar 28. 2019

내가 정규직 아나운서를 그만둔 이유 (2)

반복이 주는 명암, 그 지독한 중독성에 대하여

두 가지 반복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약'이 되는 반복과 '독'이 되는 반복. 결국엔 서로 돌고 돌아서 쉽게 헤어 나오기 힘든 '중독'이 되고 마는 '반복'이라는 것의 무한 잠재력. 오늘도 무수히 많은 '반복'작업을 거쳐 어제와 유사한 일과를 꾸려내고 있으나, 때론 적당히 마음에 들어서 끄덕여지는 반복. 하지만 가끔은 "아, 똑같잖아. 달라진 게 없잖아. " 지겨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는 지지부진한 반복. 어제와 똑같이 '브런치' 홈페이지 창을 열고 나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으니, 이 역시 어제 글쓰기 작업의 연장선에 선, 나의 반복. 아! 하지만 어제와는 다른 창가 풍경을 앞두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 이것은 따분하지 않은 변형이 가미된 유연한 '반복' 이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비로소 하나하나 정리하는 시간들, 누려라 그대. 퇴사자의 특권 !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무렵, 읽고 있었던 책 한 권이 있다. <출판사 에디터가 알려주는 책 쓰기 기술> 이 책의 저자 봄쌀 에디터, 양춘미 작가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중복아 너 지겨워'라고.


"이어지는 문장의 서술어가
절대 중복되지 않도록 합니다.
이를 의도적으로 피하세요.

다른 서술어를 선택하고,
다른 표현을
고민해보는 것이
좋은 문장을 만드는 정석입니다"

 (p.155, 출판사 에디터가 알려주는
책 쓰기 기술)

지역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반복'이었다. 적당한 반복은 흥얼거리기 좋은 랩의 딱딱 맞아떨어지는 라임과도 같아서 건강한 활기를 안겨줄 테지만, 무엇이든 정도를 넘어서면 약에서 '독'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 적당한 에너지를 선물해줄 만한 반복을 넘어서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반복의 주체는 멍해지고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눈이 쾡해지고 다크서클이 내려오는 건 이 답답한 지점을 처절히 느끼고 있으면서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을 또 반복해야 할 때가 아닐까. 알면서도 반복이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써야 할 때가 아닐까. 도를 넘어선 지지부진한 반복은 에너지와 본연에 내재된 고유의 성향까지도 잃게 만드는 나쁜 힘을 가진다. "매일 반복하는 게 싫다"라고 부르짖기에는 스스로도 이미 너무나 빈번한 반복을 자행해 온 지라 그냥 그 반복의 늪을 '편안하니 됐다'라고 그 착한 힘을 우긴다.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생각은 하는 데 반복을 끊어낼 단단하고 의연한 칼은 없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나, 반복의 늪에 숨겨두는 것마저 너무나 '반복적으로' 훈련됐다. (그러고 보니 나도 '반복'이라는 단어를 무지 '반복'하고 있다) 반복이 이렇게나 무섭고 독하게 매료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라고 애교스럽게 밝혀두는 바.


회사카페에서 내다본 그림같은 풍경. 이쯤하면 꽤 괜찮은 워라밸. 하지만 제법 괜찮은 모양새때문에 끊어내야할 것마저 문제없다는 듯 속아들어서는 안되는 법이지.


워라밸 꽤나 괜찮은 일상.
근데 너 왜 그만뒀어?

요즘 잘 뽑지도 않는다는
아나운서 정규직을




12 to 9의 일상을 살았다. 남들이 대개 9 to 6의 공무원 시간표를 고수할 때 나는 3시간의 시차로 늦게 출발하고 조금 늦게 하루를 마감했다. '저녁이 없는 삶'이라며 다수의 지인들에게 반복적으로 위로받았지만, 대신 내게는 느지막이 일어나 나만의 브런치를 보낼 수 있는 '아침이 있는 삶'이 있었다. 아침이 없던 그들이 나의 여유를 놓친 것일 뿐, 소소한 재미가 넘쳤다. 남들이 아침잠 없이 출근할 때, 카페에 1등 출석하고 혼자만의 구석자리에서 베이글에 여유롭게 크림치즈를 바르기도 했으며 방송국 옆 도서관에 문 열기 전에 도착해 자기 계발의 욕구를 불태우며 입시 수험생들과 함께 해 뜰 녘, 도서관의 소위 '일등석'자리를 점찍으며 호기롭게 입장하기도 했다. 출근 전 나만의 공부시간을 확보하고 하루를 길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샐러던트 모드의 시절.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워라밸 꽤나 괜찮은 일상. 지역 방송국 아나운서 할 만하네. "근데 너 왜 그만뒀어? 요즘 잘 뽑지도 않는다는 아나운서 정규직을"



같은 일을 10년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했던가. 1만 시간의 법칙은 내 삶을 키우는 소중한 '약'이 된다. 감사한 시간들도 분명 많았다. 방송을 통해 자라났던 배움의 시간들.


하지만 나무 한 그루만 보고 숲을 판단할 수는 없다 했던가. 한 그루의 나무는 꾸준히 물도 잘 먹고, 영양제도 간헐적으로 잘 흡수해냈으며 조금 시들해진다 싶을 때마다 태양을 보기 위해 몸을 더 활짝 열었으나 그 어떤 몸부림에도 디디고 있던 숲의 모양새는 좀처럼 변할 줄을 몰랐다. 나무가 묘목이었을 때나 조금 더 자라났을 때나, 가지를 더 수직으로 길게 뻗어내서 성장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나 숲의 크기는 대단히 반복적으로 '표준치'만을 유지했다. 아니 더 몸의 크기를 줄였을지도 모르겠다. 때론 다른 수목원과 멋들어지고 풍성한 식물원들이 생겨나서 다른 숲과 몸을 비벼 합쳐야 한다고 설득받기도 했고 혹은 아예 우리 숲 본연의 면적까지도 다른 식물원에 위탁해야 할 상황이라고 돌연 근거 없는 비보가 찾아들기도 했다. 개개의 나무들은 힘없이 절망하는 듯했지만 조용히 일상을 반복했다. 아, 딱 한 가지 반복하지 않는 것이 있었구나. 새로운 나무, 아기나무들의 식재. 신입사원 채용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결코 반복되지 않았다. 조직이 살아 숨 쉬려면 '정년퇴직'과 '이직'으로 빠져나간 나무의 자리, 그 빈 공간을 다시 어린 묘목으로 하여금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반복해야 할 텐데, 반복이 필요한 곳엔 반복이 없었고, 수년째 유사한 틀과 진행방식을 갖춘 방송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파를 타고 무수히 많은 시간 뱅글뱅글 반복되었다. '개편'이 뭐죠. 고쳐서 새롭게 편성해 달리한다는 의미가 담긴 두 글자가 무색하리만큼 반복은 반복을 덧 입고 도돌이표를 찍고 있었다. 이쯤 하면 반복을 끊어내는 건 개인의 선택.


반복이 필요한 곳엔
반복이 없었고
이쯤 하면 반복을 끊어내는 건
개인의 선택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나는 입사한 바로 그다음 주부터 퇴사 직전까지 <뉴스데스크 강원>을 진행했다. 한 번쯤은 아침 뉴스를 진행해보고 싶기도 했는데, 이건 전편에서 밝힌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탓일지, 기회가 오질 않았다. 내가 있던 지역권역의 특성상 사실 맡기 어려운 뒷 사정이 있기도 했고. 입사 초기에는 저녁 9시 30분에 지역뉴스를 진행했는데 몇 년쯤인지부터 1시간 앞당겨 진행하기 시작했던 (당시에는 파격적인 듯했으나) 돌아보니 '작은 변화'를 제외하면 큰 변화 없이 일상은 반복되었다. 때때로 반복된 프레임에 색다른 느낌을 더해보고자 앉아서 진행하던 뉴스를 서서 진행해보기도, 남녀 앵커의 위치를 바꿔 진행해보기도, 카메라만 보지 않고 남녀 앵커가 자연스레 대화하며 뉴스를 진행해보기도 했으나, 큰 흐름을 바꿔내기에는 몇 차례 실험적인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2009년 전주MBC에서 뉴스데스크 지역방송을 시작했고 2010년부터 올해초까지 춘천MBC에서 뉴스데스크를 이어 진행했다.
야심한 시각, 밤 방송에 적합한 세포를 장착한 덕분일지, 보스턴에 온 뒤로도 밤늦게까지 때때로 하이퍼 상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같은 시간표를 가지고 학교 다닌 느낌.

입사 후 퇴사까지 같은 시간표를 손에 쥐고 학교 다니는 심정으로 회사를 등교하고 하교했다. 오후 12시에 출근하면, (정확히 말하면 12시 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오전 11시에 출근을 마치고) 지역 라디오 생방송을 2시간, 이어지는 시간 라디오 정시 뉴스 진행, 총총 내려가 분장실에서 방송용 메이크업, 의상 착장까지 마치고 오후 5시 텔레비전 뉴스, 빈틈 시간에 출연자 섭외, 라디오 원고 작성, 진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수집, 뉴스 스크랩, 오후 6시 주요 뉴스 녹음, 텔레비전 예능/교양 프로그램에 필요한 내레이션 원고를 받아 목소리 더빙, 다시 총총 분장실에 내려가 텔레비전 뉴스를 위한 준비. 원고를 받아 오늘의 뉴스를 확인하고, 리딩, 본격 뉴스 준비, 스탠바이, 생방송 메인 뉴스, 그리고 뉴스 모니터 후 퇴근. 이상, 지역 지상파 방송사 아나운서 사원의 아주 평범한 보통의 하루 일과. 땅땅. 학교 다닐 때도 분기별로 시간표가 바뀌곤 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같은 시간표를 가지고 학교 다닌 느낌이랄까. 물론 중간에 담임선생님은 바뀌고 교실 인테리어가 때때로 세련된 느낌으로 살짝씩 바뀌기는 했다. 때때로 교실은 소란스러웠고, 갑자기 매일 먹던 급식이 끊어진 느낌으로 월급이 끊어진 몇 개월이 있었으며, 타의로든 자의로든 교실 안에서 밖으로 나가야 할 때도 있었다. 옆에 앉는 내 짝꿍이 때때로 얼굴이 달라지기는 했고. 어쨌든!


지역 방송사, 그 내부의 분위기에 따라 프로그램 개편의 정도나 담당하게 되는 역할 변동 폭이 상당히 다채로울 수도 있을 테니, 모든 지역 방송사의 여자 아나운서의 일상이 이러하리라고 오해하지는 말기를 바라는 바. 하지만 바뀌지 않는 시간표를 쥔 채 똑같은 10년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 이건 솔직히 진짜 아니잖아. 상상만으로도 무서웠다. 내 나이 마흔셋이 되었을 때 또?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지고 있던 시간표를 대학원 석사생쯤의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 또. 바뀌지 않을 '반복'의 흐름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으니. 이제 선택은 나의 몫. 반복할 것인가. 반복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나의 의지를 '강독'할 것인가. 반복에 반발은 하고 싶지만, 마음속 이야기로 적당히 '묵독'하기만 할 것인가. 그렇게 나는 한 발을 떼기로 결정했다. 10년의 정규직 직장인 생활을 마감 짓기로 작정하고 '퇴사'했다. 내 생애 좀처럼 반복되지 않을 것만 같은 인상 깊은 결정 하나.  



지역 방송사 아나운서라면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라디오뉴스'를 진행한다. 매시 매분 매초 정확하게 똑똑 떨어져야 하는 중요한 일상 중 하나.



'반복'할 것인가.
마음속 이야기로 잠재워둔 채
의지를 '묵독'할 것인가.

반복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강독'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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