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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n 18. 2019

34살에 마주한 '백일의 기적'

[아나운서 그만두고 34가지 일상기록 - 10] 미국살이 백일단상

목욕을 하고나서 욕조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다. 물이 빨리 내려가버렸으면 좋겠는데 처음 30초 정도는 참 답답하리만큼 물이 안빠진다. 빠지긴 빠지는 건가, 어디가 막혔나, 뭔가가 잘못됐나 잠깐 사이 초조함에 이리저리 하수구 주변을 둘러봐도 크게 이상조짐은 없다. 그냥 느리게 물이 내려가고 있을 뿐. "이때다!" 외치고 싶을 만큼 유레카스러운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은 굵직한 '꿀꺽' 소리가 나면서부터다. 한번 하수구로 내려가는 물이 굵직한 소리로 “나 소화 다됐어요” 라는 신호를 보내고 나면 그때부터 신기하리만큼 꿀꺽 꿀꺽꺽 흐르는 물길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이렇게나 잘 내려갈 것을 왜 그리도 사람 애를 태웠대? 바라보고 있기가 무섭게 금새 욕조 바닥의 표면이 뽀얗게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속도가 붙고나면 망설일 필요도 초조해할 필요도 없다. 제 알아서 너무도 아무일 아니라는 듯이, 물이 회오리 춤을 추며 내려가버린다. 내가 왜 물이 안빠질까 걱정했나 야속하기까지 하리만큼 그 흐름은 빠르고 몸짓에는 거침이 없다.

익숙한 풍경, 자주 거니는 거리가 생긴다는 것. 백일의 기적이 곧 나타나리라는 조짐. 날개를 펼치려고 간질간질해지는 지점.


보스턴에 온지 이제 100일하고도 다섯날이 지난 날. 시간이 욕조에서 물 빠지듯 흐르고 있다. 미국에 도착하고 일이주일 간은 멀쩡하고 편안하다는 듯 코스프레를 했지만 사실 혼돈과 걱정을 덕지덕지 입고 있었던 건 분명하다. 그만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으니까. 내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그 무언가가 나를 공격하거나 해친 탓도 아니었다. 당연한 이치였겠지. 34년 만에 살던 나라가 바뀌었는데 감정과 컨디션에 아무 기복이 없으리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이상하고 기괴하다. 늘상 어떤 긴장감에 젖어있고 어느 정도의 ‘눈치’를 입고 하루하루를 적응해나가야했던 정착 (소박한 이사정도를 정착이라고 표현하는 게 좀 거창해보이지만?) 초기의 부대끼는 몇몇 일상은 어쩌면 내가 정상인이라는 증거, 딱 30대 초반의 평범한 여자정도라는 증거기도 했다. 이상하고 어색한 날들을 켜켜이 지나오고 버텨내야만 제법 괜찮은 일상들이 물감처럼 번져올 거라는 사실, 그거 참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그러다가도 한번씩은 답답한 날들이 있었다. 아직은 내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물이 더디내려가는 것만큼이나 고구마스러웠다. 감정이 꽉 막혀서 그 언젠가 폭발해버리면 어쩌나. 괜찮게 내 일상이 잘 흐르고 있는 건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싶어했다.


걷다보면 백일이 지나긴 지나갈까 답답할 때도 있었다. 이방인 특유의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을 한껏 담아내며 하루하루를 느리게 살았다.


100일. 욕조에서 물이 꿀러덩 하는 소리와 함께 한번 숨통이 확 트이고 콸콸콸 내려가 주는 순간. 보스턴에서의 생활에서 나는 막연히 그 결정적 지점을 100일로 잡아뒀었다. 아기를 키워보거나 최측근에서 그 신성한 일상을 지켜본 적은 없지만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덕분에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던 터, 비슷하게나마 그건 아이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리라 늘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힘들거나 예측치 못했던 어떤 변수에 ‘우여곡절’이라는 이름표를 갖다 붙여했던 지점. 나는 늘 100일쯤 지나면 괜찮아지더라…하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네. 겨울에 슬럼프를 타기 시작했다면 벚꽃이 피어날 때쯤 기분이 상승곡선을 그려내기 시작했고, 늦여름 늦더위와 함께 찾아온 그 어떤 끈덕진 상처나 공격에 기분이 침참해있을 때면 감쪽같이 찬 바람이 불어올 때쯤엔 괜찮아지곤 했으니. 나라도 바뀌고 시간차도 바뀌고 사는 곳의 기후도 바뀌고 어느하나 멀쩡하게 똑같은 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일의 원칙, 백일이라는 시간이 빚어내는 기적 같은 마성의 힘은 비슷하게나마 적용되리라고 예외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적중했다.

신기했던 풍경들이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된다면. 그런 날들이 켜켜이 백일을 쌓아올린다면.


물론! 어마어마하게 스펙터클한 일상의 변화는 없다. 있을리도 없고 있다고 우겨도 그건 허풍이나 허세에 가까울 소설같은 이야기다. 그 누구라도 예측했겠지만 석달 남짓이 지난다고 해서 영어발음과 유창함의 정도가 원어민수준을 따라잡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리운 것들에 대한 마음의 강도가 흔적없이 지워져버리지도 않는다.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그리운 건 그립다. 다만 어색함과 낯섦의 색채가 흐려지고 스스로 ‘익숙하게 반복하는 일상의 몸짓’이 더해지면서 편안해졌을 뿐이다. 매일 반복하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길이 외워지고 헤매는 일이 줄다보니 의도치 않아도 몸에 자신감이나 당당함이 배었으려나. 부쩍 길을 묻거나 교통수단 이용법을 묻는 사람들이 늘었다. 때론 이곳 관광지에 대해 묻는 사람도 꽤나 많아졌다. 그말은 즉, 나는 뭔가 낯선 영역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 같지 않아보였다는 반증이려나. 그러니까 쉽게말해 이곳에 살고있는 사람, 익숙한 거주민 같아보였다는 말인가 싶어 머쓱하면서도 뿌듯해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또내가 제법 내동네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있네. 아, 나도 적응이라는 걸 하긴 했나보네.


자주가는 공간, 좋아하는 자리를 찜하게 된다는 것 역시 어딘가를 익숙하게 느낀다는 징표. 보스턴은 던킨의 발원지인만큼이나 너무너무 많아서 이또한 익숙하게 무심히 소비하며



낯선 곳에서 적응을 한다는 것은 언어와 얼마나 친해졌는지에 대한 부분도 팔할은 품는 법. 오기전부터 남편도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언어는 컨디션을 많이 탄다. 워낙에 학습에 의해 습득한 언어이다보니, 피곤하거나 잠을 잘 못 잔 날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영어가 꼬인다. 잠을 못자도 방송은 똑같이 해내고 아무리 바이오리듬이 최악이어도 라디오든 텔레비전이든 티내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발음하고 말해야하는 직업을 10년째 가져왔던 나에게 이런 상황은 그야말로 ‘속상함’의 영역. 때론 모른척하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짜증나는 순간이다. 세상사 모든 게 실수를 해야 단련되고  는다는 걸 알면서도 ‘버벅거린다’는 행동은 한국어도로 영어로도 싫은 건 마찬가지. 아나운서라는 옷을 수 년간 입으며 빚어온 직업병덕분에 언어구사에 좀더 엄격할 진대 영어가꼬이면 마음도 몸도 배배 꼬인다. 방송할 때도 그날따라 이상하게 발음도 발성도 안되던 날은 집에와서 곧장 이불킥부터 하지 않았던가. 어느 날은 말이 잘 풀려서 신이 나서 수다수다하고, 나 좀 괜찮은데? 싶었다가도 또 어느날은 말도 하기 싫고 말도 안나오는 날이 찾아올 때가 있다. (한국어로도 말하기 싫은 날이 있을진대 하물며 영어는 당연히) 생각없이 툭툭 내뱉는 언어의 경지에 이른 자들을 여전히 부러워하는 날들은 백일이 지났다고 사라지지않았다. (아아, 근데 이건 100일이 지나도 1000일 10000일이 지나도 유사한 자괴감일 것만 같다.)


자주는 아니지만 힘들 때가려고 아껴둔 공간들. 에너지가 바닥일 때 날 회복시켜주는 힐링포인트를 쉽게 알아챈다는 것 역시, 이 또한 백일 생존자의 살아내기 노하우.


100일이 넘어도 여전하다. 아직은 본능적으로 영어가 툭툭 튀어나오는 경지는 결코 못된다. 무조건 뇌를 한번은 거쳐 언어가 나올 수밖에 없는 훈련자의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기에. 매순간 마음의 준비는 필수. 그럼에도 백일남짓을 하루종일 모국어아닌 세상에서 살다보니 한국에서 하루에 16시간씩 채워서 엉덩이 딱 붙이고 독하게 공부할 때보다 오히려 영어를 더 편안하게 친근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면. . . 이거 너무 오만한 걸까. 기분탓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1의 언어가 아닌 세상에서 살아본다는 게 나름대로 참 재밌어졌다. 점점 더 재밌어지네. 어려울 땐 또 막연히 어렵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국어학전공자인 나도 한국어는 늘 어려웠으니 결국엔 이 세상 쉬운 언어라는 건 결코 없다고 맘편히 결론지어본다. 방송 일을 해오면서 가진 모국어에 대한 애정, 모국어만큼의 유창함을 영어에까지 적용하는 건 이번 생엔 힘들겠으나 영어로 사는 일상이 더 이상 피곤해지지 않은 건 또 하나의 백일효과. 머리로만 달달 외우고있던 표현들로 한껏 수다를 떨고나면 어찌나 신이나던지.


백일이라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진 못하지만 연착륙을 끌어내는 지점임은 분명하다. 처음 바리바리 짐을 보내고 이곳에 올 때부터 불안했던 경기가 안정화되듯, 나 역시 경착륙에 버거워하지 않고 온전히 서서히 연착륙했으면 좋겠다고 남편에게 강조했었다. 경제기사에서나 자주 등장할 법한 용어지만 부드러운 정거와 안착은 그만큼 내게 중요했기에, 맥락에 적확하든 어색하든 나는 이 표현을 자주 썼다. 연착륙을 위해 정해진 일련의 미션과 요소요소가 딱딱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단히 말해서 백일뒤쯤엔 내가 한국에서 익숙하게 드나들던 그 자태와 그 몸짓으로 이곳에서도 살아숨쉬고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하루하루 걷다보니 백일의 하루를 걷고있었다.



피곤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자주 가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 생겼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어로 살아야 하니 (영어실력에 대한 정밀한 고려와 평가와는 별개로) 그냥 영어라는 언어를 말하고 듣는 하루가 하나의 미션이나 도전으로 느껴지지 않게 된 것. 그냥 그 모든 과정이 하루 안에서 편안해진 것. 새 도시에서의 교통수단 통근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다른 외국인들을 되려 도와주게 된 것,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다른 외국인 학생들과 서로서로 짐 봐주며 자리 지켜주는 동지애를 느끼게 된 것 등등. 뿌리까진 내리지 못해도 (아니 애초에 뿌리깊게 내려 살아보자고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정도면 어리바리 헤매던 ‘미국 생활초보자’의 터널에서는 겨우 빠져나온 게 아닐까. 배시시 쓱 미소짓게 되는 순간들.


이쯤하면 언제 이 물 다 빠져나가나 욕조앞에 우두커니 서서 답답해하던 시간들은 드디어! 기어코! 지난 거겠지. 물이 ‘꿀렁’ 한번 큰 소리를 낸 뒤 출렁출렁 꺽꺽 몸을 비틀면서 본격적으로 소화를 시작한 순간쯤이 찾아온 것임은 분명할 테다. 물이 완전히 다 빠져나가려면 멀었고 그 어떤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깨끗한 욕조 표면만 보여주기까지도 백일, 그 두배 이상의 시간과 더 까다로운 과정들이 필요할 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신호탄이 있었다는 것, 그로인해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긍정적이다. 기분이 좀 낫다.


백일간 마음의 키는 조금 더 자랐을 거야


그리하여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이렇듯 백일의 기적. 백일의 효과는 잘 작동하는 법이었다. “신생아에게만 나타나는 법칙이 아니었어” 34살 어른이에게도 보란듯이 찾아와준 너라는 기적. 이 기묘한 힘을 또 한번 믿어버리게 된다. 그 어떤 심각한 슬럼프의 상황도 백일이 지나면 흐려지고 말 것이며, 자존감이 한없이 바닥까지 내려간 순간에 힘겹던 날들이 혹여 있다할지라도 백일 지나면 그 누구라도 괜찮아질 거라 또 한번 신뢰하게 되었다. 모든 상황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혹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우여곡절과 굴곡의 흐름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져서. 그러면서 역류룰 타고 파도를 제어해나갈 난데없는 힘이 조금이라도 빚어지는 법이어서. 그래서 백일이라는 시간은 소소하면서도 위대하다. 한 가지 사실만 더 살포시 보태자면, 본인이 변하지 않을지라도 그 시간 사이 아주 작게나마 나를 둘러싼 공기는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명쾌한 사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공간이라해도 기후상황은 끊임없이 적잖이 변화하고 있다. 아무리 난방을 빵빵하게 해도 추워서 몸을 새우처럼 비틀고 있던 날들은 지나고 여름 빗소리에 젖어서 테라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날이 찾아왔음에 감사하며 던지는 이야기.

내가 변하지않았어도 적어도 계절을 둘러싼 공기는 바뀌었을테니


지금으로부터 또 100일 뒤, 또 그다음의 100일 뒤는 또다른 느낌과 반전을 선물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먼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년 뒤, 또 3년 뒤쯤에는 어떤 변화의 굴곡이 나에게 그 무언가의 영감을 주게 될 는지 궁금하다. 그 사이사이 작고, 소소한 또다른 백일의 기적들을 기대하고 마주하며 그 기적점들을 연결연결해 살아가고 있겠지.


흐릿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강도와 농도의 달라짐이 미미해서 큰 감동을 못주게 되더라도 그 어찌됐든 ‘변화’는 할 것이라는 점. 지금 당장은 어제나 오늘이나 아무 감동도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더라도 100일 뒤엔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순간과 변수가 내 인생을 쥐고 흔들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너무나 굴곡많은 변화지점에서 힘겨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될 법한 이야기. 강요하거나 충고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적응했는데 그 누군들 적응못하겠어요?”라는 투의 진부하고도 필요한 조언으로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다. 손꼽아 보니 오늘로부터 100일 뒤는 9월 말엽 지점쯤이더라. 초가을쯤의 보스턴, 이곳에서는 또 무슨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나있을까.


상상할 수 있든, 그렇지 않든 또 다른 백일의 기적은 눈치채기도 전에기다렸다는 듯이 마법같이 찾아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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