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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n 21. 2019

[보스턴 밑줄긋기] 쓸데없음의 가치

문유석 판사 <쾌락독서>에서 한 단락 '쏙'  


여백을 못 견디는 타입이다. 한 마디로 '멍 때리는 시간'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 편이다. 아니 싫어한다. 75분간 수업이 이어지다가 사이사이 15분씩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그 틈에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쉽게 떠오르지 않아서 짜증이 솟구칠 것 같은 아주아주 생소한 단어 하나라도 더 보든지, 신문기사에서 인상적인 문장표현 하나라도 건져서 곱씹어 질겅질겅 외우기라도 하든지, 뭐든지 의미있어보이는 그 무언가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턱을 괴고 딴 생각을 하거나 별 거 아닌 이야기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건 정말이지 못 견디겠다. "우와, 너 진짜 열심히 살고 있구나. ", "이토록 한시도 쉬지 않고 열정적이라니!' ... 라는 칭찬을 기대하고 자랑하듯 늘어놓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 이건 분명히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한 콤플렉스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으므로. (삭제는 불가능할 것 같고!) 분명히 밝히건대, 이건 잘산다고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지 싶다. 안달복달하다가 '생산성'도 '행복지수'도, 이도저도 건지지 못할 때도 잦다.


당충전 용 끼니가 준비되었다면 '몰입'이 필수. 잠깐이라도 딴짓하는 스스로가 싫어서 한 자리에 참 오래도 잘 앉아있는 편



쉬는시간이 주어져도 제대로 쉴 지 모른다는 건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충분히 빈 공간이 있어야 그 위에 창조적인 밑그림 작업을 시작할수 있을진대 스스로에게 여백을 잘 허락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쉬는 시간은 쉴 줄 알아야 하고 집중해야 할 시간에는 바짝 몰두할 수 있어야 하루를 살아내는 힘도 순환이라는 걸 하는 법인데, '쓸모 있는 것'에만 시간을 들여야만 할 것 같은, 그러지 않으면 잠깐이라도 내 하루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 걱정에 걱정을 덧대는 일상. 이건 마치 소화능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늘 무언가를 흡입하려 애쓰며 위와 장은 늘 가득차 있어서 포만감이 사라지진 않는데 늘 너무 '배부르다'. 가끔은 넣는 게 없어서 허기진 시간도 필요하다. 쓸데 없이 소비하는 시간 덕분에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갈구하게 되는 느낌도 필요하다. 나는 정말이지 너무 '쓸모' 있는 것만 흡수하려고 안달이 나있는 상태.


현재 쓸모있어 보이는
몇 가지에만 올인하는 강박증이야말로
진정 쓸데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고
미래에 무엇이 어떻게 쓸모있으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문유석 <쾌락독서>


문유석 판사 <쾌락 독서>. 구구절절이 가슴에 콕 박히는 이야기가 많아서 순간순간 '찔림'의 연속



방송을 하면서도 늘 그랬다. 협업해야하는 작업들이 대다수이다보니 의도치 않아도 '스탠바이' 해야하는 상황은 언제든 흔하게 주어졌다. 라디오 음악 방송을 진행할 때든, TV 특집 방송을 때때로 진행할 때든 누군가의 역할을 기다리고, 무언가의 작업이 처리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순간들. 사이사이 빈틈이 주어지는 시간, 명확한 지점을 모르고 무한대기를 해야할 것만 같은 분위기. 그 속에서 한 없이 무력해지는 그 느낌이 싫어서 항상 짐을 한 꾸러미씩 이고지고 다녔다. 대충 옆 사람과 수다를 주고받다가 시간이 쓱 지나가는 걸 견딜 수가 없는 별난 성미탓에 때론 전자책을 잔뜩 구매해 작은 핸드폰 안에 '치덕치덕' 쟁여두기도 했고, 업무 외 일상을 영어공부에만 쏟아붓고 있던 날들에는 유료 단어장 앱마저 큰 맘먹고 구매해 끈질기게 스크린을 노려보기도 했다. 1분1초라도 '생산성'있게 써야 한다고 지독스럽게 고집부렸던 날들.


예상들 하셨겠지만 집착한다고 해서 그 모든날들의 집중력과 공부효과가 최고점을 찍을리는 없었다. 하물며 기계도 쉬어줘야 하는 거니까. 컴퓨터도 리셋이 필요한 거고. 단어장이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 있고 전자책 속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어도 제자리 걸음일 때도 있었던 게 결정적인 함정이다. 나란 사람은 어찌하여 그 어떤 '쓸모'만을 잡으려 애태우고 있는 건지. 이야말로 문유석 판사가 언급한 '쓸데없는' 짓이었다. 나 스스로를 빈틈없는 '작업'의 공간으로 몰아세워도 집중이 안 될 땐 오히려 더 엉망진창 되어버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럴 바엔 아무 '쓸모있어 보이는' 시도도 하지말 걸 소심하게 후회했던 순간들이 자주 스쳐갔다. "차라리 하고 싶은 거 하며 실컷 놀기라도 할 걸."


예쁜 구두 신고 사뿐사뿐 걸어만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양손에는 잔뜩 공부꾸러미. 매일매일이 짐꾼의 일상. 제대로 헤비패커

미국에 올 준비를 하면서부터 이렇게 쓸데없는 쓸모만 고집하는 '쓸모+어빌리티(ability)' 증상은 더더욱이 심해졌다. 늘 그 어떤 종류의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점점 몸집을 불렸다. 편안히 무언가를 즐길 시간이 적어도 내겐 없다는 강박. 웃고 떠드는 그 언젠가의 풍경을 마주하면 '내 세상 일이 아니라는 듯' 외면하기 일쑤였다. 조금이라도 '즐긴다'는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죄책감. 그리하여 어찌할 도리 없이 유쾌하거나 차오르는 유희의 느낌을 반드시 벗어내야 한다는 책임감. 우리의 언어로 쓰인 책 한권을 유유자적 읽는 것마저도 사치일 것만 같아서 읽어두려고 사둔 수필집과 한국소설을 고이고이 책상 뒤로 치워두곤 했다. 상대적으로 편안한 내 언어로 편안하게 그 어떤 이야기를 즐기고 생각에 차 있기보다는 불편한 언어로 부담감 팍팍 얹혀진 공부를 해야만 '쓸모있게 살아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영화를 봐도 비슷했다. 90분 동안 외화를 봐야 조금이라도 내 '리스닝' 실력에 도움이 되겠거니 싶어 영화관에 가서 고르는 영화의 취향까지 나 스스로에게 야박하게 제한을 두곤 했다. 놀듯이 영화를 보면 정말 '노는 것 같아서' 어느 하나 불편한 지점을 만들어 '쓸모'라는 이름표를 붙이려 애썼다. 이쯤하면 열심히 살았다기보단 '쓸 데 있는' 생물을 찾아 허덕거리며 아마존을 헤매는 전사라도 된 것 같다. 그 아마존을 거칠고 헤치고 나면 도대체 어떤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거니.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미. 잠깐은 '쓸데없음의 가치'에 근거해 햇살을 바라봐야 해


그 날 오후는 조금 달랐다. 어떤 바람이 문득 불었던 걸까. 평소의 엄격한 기준에 근거하면 하지 않아야 했을 사소한 여유 한 가닥을 허락했다. 의지와 목적을 갖고 명쾌하게 허락한 건 아니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과 발이 움직여준 것에 가깝겠다. 미국에서까지 보조가방 한 가득, 여전히 영어기사와 정기간행물 꾸러미들과 청취해야할 자료들과 읽어야할 원서와 단어정리자료가 어지럽게 구겨 넣어져 있었으나!!! 웬일로 그날은 두 눈 꾹 감고 외면했다. 정말로 몽땅, 애써 '쓸모있게 해야할 의무감 덩어리'를 피해내고야 만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읽고 싶어서 몸이 배배꼬였던' 그 책을 향해 손을 쭉 뻗었고, 도서관에 하루종일 셀프 감금하려던 의지는 두 발이 꾹꾹 눌러 납작하게 무너뜨렸다. 빗소리 가득 담긴 집 안 테라스로 총총걸음. 의자에 고동빛 담요한 장까지 착 깔아두고 따뜻하고 포근하게 착지 완료. "이래도 되나" 싶어서 마음은 울퉁불퉁 자갈밭이 되어가는 듯했으나 책에 빠져들 수록 마음 속 자갈들이 곱게 갈리는 듯 착각이 불현듯 들더라. 공부할 시간에 책읽고 노는가 싶어서 온통 불안함 투성이었던 마음을 그 무언가의 힘이 고운 가루로 빻아내는 듯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화'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그게 진짜로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도리가 없다.

문유석 <쾌락독서>



'진정 쓸데없는 짓'과 '쓸데 없어도 괜찮은 짓'. '쓸데 있다고 믿었는데 쓸데 없어질 짓' 당신은 지금 어떤 짓을 하고있는가


도서관 '셀프감금'을 사랑하지만, (혹은 사랑해야할 것만 같지만) 때로는 발길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 법


"영어 공부 할 것도 많은데. 하루라도 빨리 영어 더 잘해야하는데. 한국어로 유유자적할 시간 줄이고 낯설고 심각하게 어려운 문장 하나라도 더 보고 외어야하는데" 유학생의 구차한 핑계에는 끝이 없었다. 치사한 변명탓에 완독하지 못했던 책을 한 자리에 앉아 올곧이 읽어내고 나니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이 빗방울에 번지듯 탁탁 튀어오르더라.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비만 내렸던 날씨도 제대로 한 역할 한 것 같네. (독서에 대한 집중도에 기후도 한몫 하는 법이니까) 늘 편안함과 익숙함을 억제하고 해야할 일들을 꾹 참고 해야만 무언가 '성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상들. 그 무엇이 정확히 '쓸 데 있음'이고 '쓸 데 없음'인지, 쓸모에 있어서의 그 경계는 명확히 규정할 수 없지만, 어쨌든 조금이라도 편안한 상태, 아주 살짝이라도 '멍하게' 나를 내버려 두기가 초조했던 시간들이 참 쓸모없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이토록 내 상태를 정확하게 콕 찝어내는 작가의 에필로그라니. 혹시라도 내가 너무 '즐기는 걸까봐' 에세이 한 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참 쑥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판사 님, 이렇게 정확하게 제 강박증을 꼬집으시면 자꾸자꾸 딴짓이 하고싶어지잖아요."



현재 쓸모있어 보이는
몇 가지에만 올인하는 강박증이야말로
진정 쓸데없는 것이다.



아직 완벽하게 강박을 벗어낼 자신은 없다. 여전히 헬스장에 갈 땐 또 영어잡지를 꼬박꼬박 챙겨야 하고, '라디오스타'나 '나혼자산다' 예능 프로그램을 잠시 재생했다가도, "나 놀 시간 없는데!" 싶어서 괜한 죄책감에 WGBH 보스턴 로컬라디오를 재생하려 화면을 전환한다. 표현 하나, 발음 하나에라도 더 익숙해져야지, 조급한 욕심은 여전하군. 아, 아까 외국인 친구가 한국 이슈 하나를 물어봤는데 좀 더 명쾌하게 설명해주려면 '아리랑 뉴스' 기사에서 표현 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내 또 앱을 바꾼다. 잠깐이라도 '웃을' 시간, 놓아두는 시간을 허락하는 게 불안한 나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롤러코스터가 부릅니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손과 발의 움직임, 그 본능을 자연스레 따라갔던 날. 쓸모있는 일은 따로 있다고 믿었는데 피해왔던 행동이 또 하나의 '쓸모'가 되어 영혼을 배불렸던 그런 날.


 '쓸데 없음의 가치'를 빗방울처럼 주루룩 쓱, 읽어내린 그날의 분위기를 자꾸자꾸 되뇌어보려고 한다. 잠깐 내려둔 너댓시간의 여백덕분에 이유를 알 수 없게 배가 불렀더랬다. 내가 예정해두었던 '그 공부'로 그 시간이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뻗은 손과 가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둔 발의 움직임을 존중한 결과였다. 오랜만에 본능을 좇아 읽어내린 친숙한 활자가 포만감 비슷한 감정을 채워 넣은 덕분이려나. '오늘 마쳐야할 공부 진도' 그 미션완수 목록에 한 줄 덧대지는 못했지만 마음과 습관이 변하려는 중요지점에 한 줄 살짝 덧댔다면 그마저라도 의미있는 거라고 토닥토닥. (앗, 이것마저 '성취 지향형' 못된 습관이 나타난 거려나) 문유석 판사 님께서 쯧쯧, 피식 어디에선가 웃고계실 것만 같다. 판사 님이 콕 찝어 발사하신 '쓸데없음의 가치'에 생각 하나 덧댈 수 있었던 그 '쓸데 있었던 하루'를 회상하며. 오늘의 '쓸데있는' 브런치 글쓰기는 여기에서 끝!  


<쾌락 독서> 또 와 닿았던 문장들.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면 그건 반박하든 해명하든 싸우든 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 취향의 사람들도 아니고 내 인생에 아무 상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내게 관심이 있으니 험담이든 뭐든 하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나를 에워싸고 그들의 언어로 떠들어대는 릴리퍼트 소인들일 뿐인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니 나만의 '험담에 대처하기' 솔루션이 절로 생겼다. 내가 찾은 마법의 단어는 이거다. "그러게(싱긋 미소지으며)." 상대가 손위인 경우게는 "그러게요(싱긋)." 핵심은 산들바람같이 상쾌해야 한다는 것. 진심으로. 말은 저 한마디 '매직워드'로 족하다.


그 어느날의 '쓸데없는' 혹은 '쓸데있는' 독서 (feat. 미국북동부지역의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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