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 수현 Jun 22. 2019

퇴사자도 주말을 기다리죠

[아나운서 그만두고 34가지 일상기록 -12] 보스턴에서 보내는 주말단상


불금이 간절했던 날들이 있었다. 5일, 매일 같은 시간 꼬박꼬박 생방송을  건씩 치러내고 나면 피곤을 넘어서서 탈진하기 일쑤. 회복하려면 '생방송' 하지 않는 날들이 필요했다. 한치의 삐끗함도 없어야하는 상황, 매번 닮은 긴장감으로 몸을 곧게 세워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많이 쓴다. 친애하는 부장님, 국장님들께서 괴롭히지 않아도, 혹은 꼴보기 싫은 동료가  버티고 있지 않아도 회사원에게 '회사' 그냥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출근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 되곤 하지 않던가. 그러다보니 토요일과 일요일을 하루 앞둔 불금부터 마냥 신나기 시작하는 건 당연지사. 안 가도 되는 거니까!  거창한 이벤트나 기분좋은 약속이 있어서 빨간 날을 기다리는  아니다. ", 주말에  좋은  있나본데?"라는 질문을 받기라도 하면 어찌나 난감하던지. 어떤 계획이 없음에도 '그냥' 좋은  어떡하나. 너의 존재를 곁눈질로 마주하기만 해도 좋다. "주말은 사랑입니다."


 

"너도 주말을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하구나!"



"It's almost Friday!"

목요일 아침, 한결같이 들려오는 인삿말 하나가 있었으니, 보스턴 도심으로 향하는 Commuter rail 타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틈에서 줄을 서고 있을 때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싱긋 웃으며 같은 말을 주고 받는다. '꺄오' 덩달아  역시,    마디만 들어도 숨통이 트이는 같았다. "그래 맞아! 주말이 다가오고 있네" 아직 진짜 불금이 되려면 자그마치 스무시간 정도나  남았고, 당장 내일부터 토요일 시작도 아닌 거고, 그렇기에 여전히 누군가의 가방 안에   산더미, 공부할거리  가득일지라도 이미 벌써부터 마음은 좋다. 가까워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리 좋을 일인가.  주의 중간 지점을 넘어 허걱허걱 거리고 있는데, 겨우  짧은  마디에 버틸 힘이 솟아나는 것만 같다. 주말 좋아하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국적과 인종과 성별과 연령을 넘어서서  똑같은 일이군. 일이나 공부에 (아직은) 목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작은 꼬마까지 설레는 목소리로 같은 말을 울림 있게 외치는  보니, 세상 사람들 모두 얼마나 불금, 불토를 열망하는지 알겠다. 덩달아 '일요일  가는 소리' 실망하는 표정들도 시무룩하니 닮은꼴일  분명하다. 아아! 그리고 드디어 "T.G.I.F!"

 

라테와 피스타치오 타르트의 꿀조합. 하지만 그 무엇이 따라잡을 수있을까. 주말은 꿀맛. 금토일 세 녀석이 완성하는 환상의 콜라보


보스턴에서 머문   달째. 오늘로 16번째 주말을 마주하고 있다. 빗방울이 퉁명스럽게 스치는 오늘의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토요일을 기다리는 기분은 빗방울 본연의 성질과 닮았다. 기분에도 결이 있다면 알알이 맑고 투명하니까. 햇살 잔뜩 머금은 날씨가 주말을 환히 감싸주지 않아도 드디어 '자유인'  느낌, 주말 맞은 환희는 절대 반감되지 않는다. 아마 허리케인이 몰려오든 폭설이 쏟아지든, 찌는 듯한 무더위가 찾아오든, 전혀 상관없을 거라 예측한다. 주말은  어떤 조건 아래서도 '주말'이기에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 이쯤에서  가지 품고있던 그 질문을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겠다. "아니, 퇴사자가  그렇게나 주말을 기다리는 거죠? 어차피 평일도 다를  없는 거 아닙니까?"

 

어허, 미스터리. 출근하지 않는 자도 주말을 기다리는 이유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 퇴사자는 평일에도 '출근'하지 않는다. 주말이나 평일이나 맘 먹기에 따라 양껏 조절할 수 있다는 거. 물론 수업도 출석해야 도서관에 가서 미리 짜둔 공부계획표에 따라 열공모드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모든 움직임이 회사만큼 야박하고 딱딱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간혹 의지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아도 아주 ' ' 생기진 않으며  굳이 쉬고 싶다면 '주말' 아니어도 너그러이 하루쯤은 쉬어도 되는 '자유가 보장된 신분' 것이다. 스스로 책임만   있다면 평일을 주말처럼 보내도 된다는 이야기. 10  조직에서 길들여진 '습관 '일까. 아니면 남들이 들뜨니 나도 덩달아 '주말이 좋다' 자동 전염돼 있는 것일까. 회사원이 아닌 자가 주말을 이토록 기다리는 이유, 왠지 한국보다는 조금 더자유로울 것만 같은 이곳 미국에서까지 이토록 주말 지향자가 되어 애타게 달력을 들여다 보는 이유. 나는  여전히 주말에 목이 마른 걸까.

 

공짜신문 주말판 들여다보는 소소한 재미

 

먼저, 귀여운 이유 하나 발견! "이제  금요일이잖아요! 버텨요. 버텨”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유쾌한 미소를 확인해내고 전철을 갈아탈 때면 바로 이것과 마주치고야 만다.   아닌  같은데 16번째 마주하다보니 정들었다. 바로 매주 목요일에 나오는 메트로 신문의 '주말 섹션'. 한국에서 지하철   종종 마주했던  앞의 그 공짜 신문과도 비슷하다. 전직 미디어 업계 종사자였다는 데서 오는 어느 정도의 '의무감' 영어공부도 덩달아 해야겠다는 '욕심' 겹쳐져 영자신문을 핸드폰으로 모바일구독하고 있는 요즘. '뉴욕타임스' '보스턴글로브'.   말해 무엇하리.  좋은 기사들과 실시간 올라오는 속보들이 깨알같이  짜여져 있어서 유료구독을  망설였나 싶을 정도로 만족. (물론 모든 문장과 표현을 잘근잘근 소화해내지는 못할지라도) 허나!

 

  내고 구독하고 있는 모바일 신문이 있을 진대 굳이 지하철 공짜 종이 신문을 기다리는 이유는? 정답은  '이거 참 은근히 재미져서'. 고퀄 영자신문이 블루보틀 고급진 라테쯤 된다면 목요일마다 기다렸다는 듯 냅다 집어드는 요 아이는 그 어떤 커피전문점 커피가 아무리 맛나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서랍 안에 고이고이 쟁여둔 믹스커피'쯤 된달까? 잡지를 펼쳤을 때 들어있을 만한 재미삼아 참고하기 좋은 기사들이   풍부하게 실린다. 주말에는 조금 두툼하게 읽을거리가 짜여지니 신문을 집는 촉감에서부터 '주말이구나' 실감케 한다.


깨알정보 챙기는 재미, 누군가가 건네는 수다와도 같아서


 "이번 주말 보스턴에서  해야할 다섯 가지 액티비티", "Mother's day 엄마와 해야할 일들", "보스턴에서 여름을  보내기 위한 기가막힌 계획들". 구글링으로 정보를 알아내는 데는 불편함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친절하게 제안하며 '수다' 건네는  같은 기사류의 신문, 나름 중독성이 있다. 금요일엔 지하철 신문이 발간되지 않기 때문에 목요일 아침 주말섹션을 챙겨두고 오며가며 두고두고 읽어낸다. 한번은 목요일에 전철을 타지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주말섹션 픽업까지 덩달아 거르고 나니 괜히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다행히  다음날 남아있는 섹션을 챙겼다) 벌써 중독된 건가. 주말이 되어 '주말섹션' 마주했는데, 이젠 '주말섹션' 빨리 보고 싶어서 '불목' 기다리고 주말을 바라보는나라는 여자.

WKND. 주말판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던 그 어떤 목요일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바. 평일보다 통통한 두께감에 이미 배부른 아침.

 

보스턴 커먼에서는 댄스 파티가 들썩들썩


관광객에게나 현지인에게나  사랑  가득 받고 있는 공간. 보스턴 커먼 공원 (Boston Common Park). 한국에서도 집근처 올림픽 공원과 석촌호수를 깊이 애정했던지라, 이곳 역시 사랑하게 되리라 확신했었다. 작년 여름, 처음 보스턴 여행을 왔을  미리 콕콕 찜해둔 공간, 바로 여기. 보스턴을 관광하려 한다면 '프리덤 트레일' 시작 지점이기도 한 이곳부터 스치게 되는  무언의 원칙이다보니  사람들로 가득. 느낌탓일 수도 있겠으나 , , 일에는  '왁자지껄' 느낌이 한적한 공원에 더더 입혀지는 .


두말하면 잔소리. 커먼공원은 사랑입니다.

 

 북적거림을 사랑하기라도 하듯, 주말이 다가오면 금요일 대낮부터 댄서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공원 초입에서 열혈 댄스 퍼포먼스를 펼친다. 춤이나 노래에 소질도, 관심도 없는 나지만 주말맞이  ''돋아내는 분위기가 그리 소란스럽거나 싫게만 느껴지지는 않더라. 가끔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 일이래.  시작했나보군"  친구랑 볼멘소리로 중얼중얼 거릴 때도 있는데 사실 이건 그들을 은근히 반가워하는 리액션이기도 한 걸. 툴툴거리는 '불만' 잠깐. 춤에 곁들여진 음악이 요란한 만큼 주말을 기다렸던 너와 나의 설렘도 증폭되는 모양이다. 워낙에 소리에 민감한 나인데도 주말에 만나는 이들은 신기하게도 얄밉지가 않다. 오늘같이  내리는 금요일엔 거리공연자들도 작업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걸까. 배달음식 먹으며 그들만의 주말을 즐기고 있으려나. 여느 때와 다르게 고요한 공원 분위기가 되려 생경하다. 시끌시끌한 움직임에 덩실덩실 따라추진 못해도 슬쩍 '주말 맞은 기분'만큼은 그들의 웨이브에 실어보고 싶은 소박한 욕심. 다음주말에는 가능할는지!

 

잔뜩 흐린 날에도 비가 스치는 날에도 파크스트릿 근처는 댄스댄스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잔뜩 숨어있는 듯.



내가 먼저 볼거야. 개봉작 선점하는 재미

 

주말엔 개봉작 부지런히 챙기는 재미. 두번이나 챙겨본 알라딘은 들어가기 전에 한번 더 챙겨볼 지도 모름. 디즈니 최애캐릭터 중 하나.

.

한국에서는 주로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개봉작을 만날  있었더랬다. 목요일 오전, 따끈따끈  개봉한 영화 한 편을 조조시간에 맞춰 감상하고 출근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종종 혼자서만 볼 때도 많아서 진짜 나만의 신성한 의식을 치러내는 느낌이었다는 뒷이야기) 미국은 하루 늦은 금요일에 개봉작을 올린다. 하루전날인 목요일 저녁에 조금 일찍 풀 때도 있고. 덕분에 영화를 즐겼던 한국에서의 패턴이 하루 늦어졌을 뿐, 치러내던 의식의 행태는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는 . 주로 찾는 AMC에서 영화 멤버십을 끊어  덕분에  주에도 3편까지는 자유로이 영화를 골라볼  있다. ( 달에  편만 챙겨봐도 본전을 찾을  있으니 꽤나 혜택 좋은 멤버십...이라고 아직까지는 믿어보고 있는 ) 예매만 하면 화요일이든, 수요일이든 시간 맞춰 영화를  수야 있지만 왠지 모르게 영화가  처음 선보인다고 공식적으로 ‘선언’이라는 걸  , 개봉작을 소화해내는 건, 이건 마치 별다방에서 신상 음료나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딱 그날,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맛보고 즐기는 것 같잖아! (별다방덕후라서 나만 설레는 걸 수도 있을 것 같아 찔림 주의) 어쨌든 아직 많이 공유되지 않은 유흥을 먼저 선점하는 재미. 주말에 획득하는 싱싱한(?) 자유시간.

 

따끈따끈한 영화를 먼저 달려가 찜콩하는 것도 중독
한국과 비슷한 시점에 개봉했던 로켓맨도 출석도장 쾅


춘천에서 근무할 때도 CGV 메가박스를 바지런히 드나들며 혼영을 즐겼던 한 주 한 주. 보스턴에서마저 멀티플렉스를 향해 이렇게나 자주 발자국을 찍게될 줄이야. 한국영화에 대한 목마름도 때때로 등장하고 특히나 요즘 다들  것만 같은 ‘기생충 가을에나 개봉한다고 해서 무한정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야 하지만 미국 영화관에서 한국에서는   영화를 챙겨보는 재미도 참으로 쏠쏠하다. 무자막 상태이기에 2시간가량 귀를 아주 격하게 쫑긋 곤두세워야 한다는 치명적인 난제가 기다리고는 있지만 모든 예술장르는 아주 명쾌한 언어로 해독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있다는 장점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이런 어려움쯤은 패스. 놓치는 부분이 있어도 재미있는 건 신기하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힘인 것인가. 이번주에는 무슨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나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몸짓엔 이미 내가 바로 '주말 지향자'라는 이야기가 깊이 배어있다. '토이스토리4’ 문을 여는 이번 주말이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벌써부터 씬남 씬남. (애니메이션은 자막없이 보는 과제가   수월한 법이어서 헤헤)

따끈따끈 토이스토리4를 챙겨보는 6월 말엽의 주말

 

더이상 안 보고 싶을  알았는데, 퇴사 전과 퇴사 후, 너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닮은 . 애타는 마음으로 너란 존재를 기다리고 꿈꾸고 막연히 상상하는 날들. 드디어 금요일 저녁이구나. 그렇게 토요일과 일요일과의 숨막히는 만남.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고, 영원히 머물렀으면 좋겠으나, 야속하게 "다음주에  올게"라는 약속만 남겨두고 떠나갈 게 분명한 때때로 칼같은 . 이번 주말도 그러니까 아깝지 않게 1분1초 사랑하고 아껴줄게. 그러니까 조금은 천천한 속도로 게으르게 흘러주라. 이번 , 나의 주말. “Finally, It’s Friday!”


똑같은 카페도 주말이 다가오면 더 동화같아 보이는 마법
커피를 아껴마시는 것과도 비슷해. "주말아, 천천히 소비되어주겠니"

룰루랄라. 주말을 기다리는 건 남녀노소, 사람과 장난감을 불문하고 모두가 마찬가지. 퇴사자마저도 다함께 기다려요
매거진의 이전글 '토이'라 우기지 않아도 괜찮은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