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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n 23. 2019

'토이'라 우기지 않아도 괜찮은 시대

보스턴에서 영화보기 (1) - <토이스토리4> 포키의 본능에서 건진 생각

<토이스토리 4>에 새로운 장난감이 합류했다. 생김새가 괴상한 듯도 하면서 또 세상에 없을 깜찍함을 동시 탑재하고 있는 캐릭터. 그 이름 바로 포키_Forky. 이젠 어른이나 아이할 것 없이 '크리에이티브'가 된 시대인 건 분명한 것 같다. 포키야말로, 장난감들의 주인, 아이 보니_Bonnie가 직접 빚어낸 창작물이므로. 유치원 쓰레기통에서 건진 스포크와 갖가지 버려져있던 일회용 장식품들이 주재료로 사용됐다. 이쯤하면 영화 초반부터 친환경적인 메시지까지 잘 담아낸 디즈니픽사, 살짝 박수 한번 보내주고 지나가야겠다. "아아, 에코프렌들리 (Eco-friendly) 하기도 하지!" 핸드메이드, 수공예의 매력은 공장의 대량생산의 효율과 완성도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보니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탄생시킨 재활용품 장난감, 포키를 아끼고 아끼며 사랑해 마지 않는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It's my only one Forky!"


<토이스토리4> 개봉한 주말. 새로운 캐릭터 '포키'에게 마음이 끌린 30대 감성이란!


난 그저... 그냥 쓰레기일 뿐이야
장난감? 그게 뭔데?



엄청나게 사랑받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얼마나 귀하게 여겨지고 있는지 모르는 캐릭터는 때론 괘씸하다. 어른들(?)의 세계, 드라마에서도 종종 그렇지 아니하던가. 인기많은 캐릭터는 꼭 자기가 인기많은 존재라는 걸 모른다. (알면서 아닌 척하는거야? 진짜로 몰라서 저러는 거야) "가진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 걸. 난 이 세상에 혼자야." 눈물 뚝 떨어질 것 같은 비련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있어도 사실 그 곁엔 지켜주고자 결의에 차 기다리는 환상 캐릭터들이 늘 그득그득하더라. 야, 너만 모르지, 사랑받고 있는 거라고. 감사한 줄을 알아야해. <토이스토리4> 포키도 마찬가지. 주인이 신성한 손놀림으로 시간들여 탄생시킨 너란 존재. 대단히 잘난척해도 되는 위치란 말이야. 겸손한 건지, 대단히 바보같은 건지, 포키는 내내 본인을 'Trash'라고만 규정해두고 장난감이기를 거부한다. "난 그냥 쓰레기일 뿐이야. 장난감? 그게 뭔데."


두근두근. 새로운 장난감 친구를 보여줄게. 짜자잔.

내가 포키였다면 위풍당당했을거다. 생김새가 좀 뜨악하긴 해도 일단 그런 약점쯤은 모른 척해야지. 아닌 척해야지. 보니가 매고 온 가방에서 빠져나와 잘난척 하면서 외쳤을 게 분명함. "난 핸드메이드야. 너네 일반 장난감들과는 다르다고!" 주인 사랑 듬뿍받으며 그 고고한 가치를 있는 그대로 뽐내고, 보니의 방에서 최대한 높은 자리에 앉아 자유의 여신상마냥 철사로 만들어진 한쪽 팔을 천장 조명을 향해 쳐들고 보란듯이 서있을 거다. 마치 당장 행진이라도 할 기세로 자리해있었을 것 같다. 물론 그걸 지켜보는 장난감들은 대단히도 짜증났겠지. 핸드 메이드 장난감 vs 공장 박음질 장난감. 자, 보니의 방안에서 이제부터 전쟁 시작이 시작되겠군!


"안녕. 난 Trash라고 해" (<토이스토리4> 공식 트레일러에서 캡처)


이런 유치한 대결구도를 초반부터 상상했던 서른 넷 어른의 단순한 상상력은 대단히도 고리타분한 것으로 판정났다. 아이코, 옛날 사람 같으니라고. '장난감끼리도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려 애쓰겠지.', '한 자리 차지해서 뽐내려고 고군분투하겠지.'라는 발상은 90년대 어린이시절을 보냈던 나의 한계인 게 분명했다. 2020년에 가까워진 어린이 감성은 그 어떤 '성취'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인정과 억지스러운 욕구 탈피, 기대에 부응하려는 그 어떤 서열동참에의 거부에 기초해있었다. 늘 성취해내고 뭔가 드러내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했던 80년대생의 마인드가 찌릿찌릿 부끄러워지는 순간. 내가 만약 어딘가로의 입사지원을 포키의 마인드로 했다면? 회사생활, 직장인 일상을 포키스럽게 보냈다면? 성취는 좀 더 늦었졌을까. 그러나 더 햄볶았을까. 편안했을까. 그래서 오히려 더 매순간 매력적이었을까.


저 녀석 '캐릭터' 참 독특하네
스스로 못났다잖아.
좀 더 지켜봐줄까?



"내가 도대체 왜 장난감이 되어야 하는 거지? 난 그냥 쓰레기통 스포크잖아."  (<토이스토리4> 공식 트레일러에서 캡처)


'포키'는 무언가를 성취하려 애쓰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를 그냥 '쓰레기'라고 반복해 말할 뿐. 핸드메이드라고 포장해 칭하지 않고 "내가 왜 장난감이냐"고 따져묻는다. 난 있는 그대로 한번 쓰고 버려진, 스포크일 뿐이라고. 스펙 하나라도 더 부풀리고 포장해서 '자소설' 써나가는 같은 세대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스포키는 서류 탈락감인데? 단점도 장점처럼 싹 바꿔치기하는 기술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근데 아이러니 하게 이게 또 매력포인트. 만약 포키가 이렇게 먼저 이야기 했다면 어땠을까. "전 쓰레기같지만 알고보면 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누군가의 only one이랍니다." 본인 입으로 내뱉었으면 그 또한 3차 실무면접쯤에서는 탈락했을 것 같다. 자신감 강한 건 좋은데 잘보이려고 애가 탄 모습이 상당히 덜 매력적이어서. 비호감까진 아닌데 덜호감이다. (운좋아서 최종까지가도 딱 최종탈락감. 잘난거인정은 하겠는데 그 포장능력자와는 함께하고 싶지않다...의 느낌)


조금의 위험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차라리 자기 못났다고 부르짓는 편이 타인으로부터 호감과 호기심을 얻어내기에 수월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포키가 마냥 못나보이지만은 않는 걸 보니. 잘났다고 잘난 척하는 거나 못났는데 잘난 척하는 거보다야 좀 더 봐줄만 하지 않는가. 못났는데 못났다고 부르지으면 도와주고 싶고, 심지어 잘났다고 해도 될 것 같은데 별 거 없다고 낮추면 때때론 친해지고 싶기까지 하던 걸? "아시겠어요? 대단한 녀석이 아니에요. 전 쓰레기라고요. T.r.a.s.h. TRASH!" 이렇게 말하면 왠지 어딘가에서 이런 메아리가 돌아올 것 같다. "허허, 저녀석 캐릭터 참 독특하네. 저 스스로 못났다는데? 좀 더 지켜봐 줄까?"


잘난척하지 않으니 거참 더 봐주고 싶군. 아이러니한데 매력있어 "쓰레기라는데 중독성 있어"


먄약 포키가 공들여
잘난척하려 애썼다면?
쓰레기통으로 다시 드러누워도 괜찮다는
'내려놓음'이라는 무기

'Trash'이지만 'Toy'라고 우기지 않아도 될 시대에 살고 있다. 스스로의 가치에 힘을 주고 목에 핏대를 세워야 하던 시절은 종료되어 가는 듯하다. 못난 본성은 못났다고 인정하는 편이 더 매력있어 보인다. 만약 '포키'가 '우디'나 '버즈'보다 더 가치있는 장난감인 척 공들여서 잘난척을 하려 애썼다면? 아, 상상만 해도 고개를 돌리고 싶다.  "난 버즈보다 날씬하잖아? 나처럼 가녀리게 다이어트해볼 생각은 없어?", "헤이 우디, 보니가 너보단 나를 더 만져준다고. 쉐리프의 시대는 떠나간거라고 " 어우. 빈정상해. 아마 주변 장난감들마저 "너 얼마나 웃기게 생겼는지 보고나 말하지 그래?"라며 거울 먼저 들이밀었을지 모를 일이다. 아마 포키는 이렇게 말하겠지.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났다'고 말한 장금이처럼 '그냥 진짜 쓰레기통에 있던 쓰레기라서 쓰레기 한 것뿐'이라고. 대단히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그 어떤 겉껍질로도 덮어내려 시도하지 않은 건 어쩌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포키는 그 용기를 타고났다. 자기가 쓰레기여서 쓰레기라고 주저없이 내보일 수 있는 솔직함. 쓰레기통 나락으로 다시 드러누워버려도 나쁠 것 없다고 판단하는 '내려놓음'이라는 무기.


굳이 스펙포장하려고 애쓰지 않는 너. 있는 그대로의 초라함을 당당히 인정할 줄 아는 모습이 요즘 세대 감성이려나.이상 86년생 옛날 사람 생각.


"Toy가 아니라 Trash야"


난 누군가의 장난감이 아니라 쓰레기일 뿐이라고, 그래서 보니의 일상에 머물 장난감이 되길 끈질기게 거부하는 포키. 처음엔 짜증이 샘솟을 만큼 답답하기도 했다. 저렇게까지 자기를 낮출 필요가 있을까. 친애하는 장난감으로 거듭날 '기회'를 얻은건데, 왜 그 기회를 잘난척하며 잡지를 못할까. 저럴 땐 좀 세상 다 가진 자의 분위기를 덧입고 뽐낼 필요도 있는 거잖아. (살면서 저런 기회가 얼마나 자주 찾아온다고!!! 아주 배가 불렀네.) "쓰레기야, 쓰레기야" 자신의 처지를 너무 비관하는 것만 같아서 한 대 톡 때려주고 싶었던 포키의 등장 씬들. 그러다가 이내 내 머리를 콩 때리며 내 마음을 고쳐먹고야 말았다. 남들이 생각하는 고귀한 대열, 이를테면 누군가의 장난감 무리에 굳이 합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포키는 있는 그 자체의 타고난 지점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 Trash인 자기 본연의 정체성과 상황을 인정하고 만족할 줄 안다는 이야기이기도 할테니.


요즘 애들 참 좋겠다
'토이'라고 우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들어선 거니까.


때론 '토이'라고 우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완벽한 '토이'의 대열에 들어서기에 부족함이 많았던 시절, 얼마나 자주 '토이'가 될 수 있는 척, 모자람이 없는 척 포장이라는 걸 해왔던가. "이런 단점이 있지만, 이런 단점은 제게 곧 장점이기도 합니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러이러한 노력을 해왔기에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흔하게 써먹곤 했던 단점의 커버전략들. 진부한 포장과 수식은 부자연스럽고 불편하다. 진짜 장난감인 척하지 않아도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면 남들이 먼저 봐주고 꺼내 줄 수 있다. 때론 애쓰지 않고 내버려둘 줄 아는 '포키'의 될대로 대라식의 마인드도 필요한 거였군. Toy라고 굳이 힘주어 표현하지 않아도 저절로 Toy임을 알아봐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생각보다 주변에 자주 나타나 주는거라서. 물론 Trash라고 자꾸자꾸 낮추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님 주의!


요즘 애들 참 좋겠다. Toy라고 우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들어선 거니까. '장난감'임을 인정받기 위해 안달복달 성취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테니까. 한 25년만 늦게 태어날 걸 그랬지? 아아, 이쯤에서 필요한 건 내려놓기의 달인 '포키'의 마인드! 굳이 '젊은 세대'가 되려 애쓰진 말아야겠다. 90년생, 2000년 감성을 덧입으려 애쓰지 말자. "난 30대 중반이야. 그저 86년생에 불과할 뿐이야." 포키가 스스로를 억지 포장하지 않으려 하듯, 그래 그렇게.


누군가의 장난감이라고 애써 '척'라지 않아도 그 고귀한 가치는 때로  자연히 알아봐지는 법이어서



주인공과 메인스토리에 집중하지 않아도 '포키'가 취한 삶의 자세는 영화관 팝콘 그 이상의 것. 중독성있어. 맛있게 흡수했어. 너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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