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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l 09. 2019

[식食] 미국에서 그리운 '한국의 맛'5

보스턴에서 먹고 살아요 (4)

음식의 맛은 때때로 공간이 가진 분위기까지도 껴입는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공간, 어떤 느낌의 장소에서 먹었느냐에 따라 맛이 주는 기억이 좀 더 특별해지기도 한다. '맛있네' 라는 감탄사 이상의 환희를 꾹꾹 눌러담아 채워주는 거다. 닭갈비를 신촌에서도 즐길 수 있지만 '춘천'에서 즐기면 단순히 '배부르다'는 감정 그 이상을 체험할 수 있다. 내가 먹는 건 양념된 고기뿐만이 아니다. 함께 동행한 사람과 수다를 맛깔스럽게 뒤범벅해내고 그러면서 새로운 추억을 새콤하게 달콤하게 양념해낼 수 있으므로. 각각의 터전을 품고 있는 로컬음식들이 모두 비슷할 것 같다. 떡갈비는 담양 죽녹원 먹는 맛이 일품일테고 전복김밥은 아무리 서울 도심 고급집 푸드코트에 팝업스토어가 들어선다고 해도 제주도 바다의 푸른빛깔을 바라보며 바위에 털썩 앉아서 먹는 맛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


수박. 너는 어디에서 먹어야 내 미각을 만족스럽게 채워주겠니


특정 공간 안에서 미각을 채울 때 특별한 기분을 느꼈던 경험들이 있다. '이 음식은 여기에서 먹어야 제맛'인데 하는 생각들은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아왔던 것만 같다. 가족구성원들의 영향도 있을테고 가까운 친구들의 영향도 많이 받은 덕분에 수많은 경험치가 생겨서일 거다. 늘 입이 짧다보니 어차피 많이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이걸 먹으나 저걸 먹으나 그리 까다롭게 굴지 않던 나였음에도 종종 '지금 이건 딱 그 자리에서 먹었어야 해' 하는 아쉬움이 살금살금 떠오를 때가 있다. 미국에서 지낸 지 벌써 5개월차, 한국의 특정 공간과 어떤 맛이 잘 콜라보레이션됐던 순간들이 본격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한인마트에서 재료를 사다 해먹을 수도 있고, 보스턴 이곳저곳 꽤나 많이 자리잡고 있는 한식당에 방문해도 된다. 한국에서 먹던 그것을 재현해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이미 짐작하고 있다. '그맛'과 그맛은 분명 다르다


길거리 포장마차에 웅크리고 앉아먹는 김.떡.순


미국에 오고나서 한국의 맛을 떠올리며 가장 자주 해먹었던 건, 다름 아닌 떡볶이. 그리고 쫄면과 비빔면도 그 곁에 짝꿍처럼 등장하곤 했다. 한국에서 보내온 이삿짐에도 혹시나 그리울 순간을 대비해 인스턴트 조리용 떡볶이들을 미리 넣어뒀었는데, 굳이챙겨넣지 않아도 될 걸 그랬다. 보스턴에 있는 한인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조리재료를 살 수가 있다. 한인마트에 발을 들이고 난 뒤, 일요일에 끓여먹기 좋은 짜0게티부터 여름만 되면 골뱅이와 비벼줘야 할 것 같은 팔도비0면, 즉석조리가 가능한 떡볶이 제품까지 정기적으로 찜해두고 구매를 해왔다. 너무 매운맛은 때떄로 혀가 아플 정도로 고생고생해야하는 후폭풍을 불러들이지만 그럼에도 스크램블에그나 프렌치 토스트, 베이글에 커피류, 이런 아메리칸 스타일의 브런치가 살짝 지겨워지면 어김없이 찾게되는 최고 애정메뉴.


집에서 남편이 만들어주는 떡볶이도 최고. 하지만 그 특유의 좁은 틈, 불편하게 서서, 혹은 사람틈에 껴서 먹는 한 입도 그리워라.

해먹기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래도 허전하다. '공간'의 맛을 채우지 못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큰 프라이팬 한 가득 계란과 라면 사리까지 듬뿍넣었는데도 길에서 서서 호호불며 먹던 기억이 자꾸만 머리 위를 스쳐가는 걸. 종종 아파트 근처에 매주말마다 머물던 순대트럭도 생각나고 잠실역 인근에 즐비하게 서있던 떡볶이 포장마자에서의 요란하게 '매웠던 맛'도 그립다. 너무 매워서 허덕거릴 때면 바로 옆에서 빵빵하게 부푼 버블호떡을 얼른 사서 바삭바삭한 표면을 깨먹어나가는 재미를 즐겼다. 김밥과 떡볶이를 두루두루 즐길 수 있었던 작은 평수 분식집 안의 답답하리만큼 좁은 의자도 앉고 싶다. 식당에서 즐기던 김떡순이 그리워 보스턴에서의 한국분식집을 방문해볼까 했는데 김떡순 세트 조합에 자그마치 50달러쯤 들었다는 어느 분의 포스팅을 보고 떠오른 마음을 꼬깃꼬깃 접어넣었다. 정갈한 차림새에 맛도 있어보였으나 분식에 5만 원이상을 들이며 소화되는 것조차 너무 아까울 것 같잖아. 억울해서 잠을 못이룰 것만 같은 소심한 심성의 소유자. 한국에 가면 최대한 무심하게 툭 차려진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한접시, 김밥, 순대 정도를 곁들여 먹어봐야지. 머나먼 땅 보스턴에서도 이 맛이 너무 그리워서 찾아왔다고 말하면 주인아주머니께서 김말이 하나쯤 얹어주시지 않으시려나.


떡볶이 영원한 짝꿍, 쫄깃쫄깃 쫄면에 삶은 계란 톡톡. 한국에서 잘나가는 쫄면맛집도 제보 기다립니다.


사계절 흔한 빙수전문점, 시그니처 빙수의 맛


한국은 34도를 넘나드는 날씨라고 들었다. 지금 있는 보스턴은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훈훈한 공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들이 '드디어' 생겨났다. 5월까지도 차가운 공기가 떠날 줄을 몰라서 이곳에 여름이라는 게 오기는 올는지 의심스러워지던 순간들이 물러나게 된 거다. 날씨가 더워지니 자연히 시원한 여름별미 이것저것을 떠올리게 되는데 얼마 전 남편에게도 자꾸 이야기하게 된 공간이 있었으니 바로 다름아닌 '빙수 전문점'. 여긴 근처에 Shaved ice 파는 곳 없나. 찾아보면 차이나타운에도 몇 곳 있을 거고, 일식 전문점에 가면 빙수 비스무레한 아이스디저트가 있기는 있을 것 같다. 아, 그러고보니 한인마트 각각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 대표 빵집 양대산맥 P빵집과 T빵집에서도 여름시즌 한철 판매하기는 하겠다.


아.아.메도 좋지만 자꾸자꾸 빙수 생각나는 계절, 여름

하지만 내가 떠올렸던 건 옥0몽이나 설0과 같은 '진짜' 리얼 빙수전문점.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창 대학교 캠퍼스를 누리고 다니던 시절 유행했던 아이0베리나 레드0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망고빙수, 팥빙수, 멜론빙수, 딸기빙수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그 어떤 디저트집이 있다면 칼로리 신경쓰지 않고 눈 딱감고 방문해 줄 의향이 있다. 빙수 전문점 메뉴가 너무 다양해서 종이메뉴판만 들여다봐도 재미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빙수전문점의 시그니처 빙수들이 자꾸만 생각난다. 때때로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미국 디저트 숍들이 서울 도심부 곳곳에 혹은 백화점에 팝업을 열 때면 사람들이 2시간씩도 줄을 선다. 호기심에 그 줄이 좀 덜할 땐 나도 맛보겠다고 기꺼이 나서 대열에 동참했었지. 하지만 도리어 미국에선 한국의 흔한 프랜차이즈를 그리워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래도 먹고싶은 건 먹고싶은 거다. 다행인 건 사계절 흥행하는 빙수전문점이니 여름이 아닌 때 한국을 방문해도 어쨌든 샤샤샤 녹는 얼음의 맛을 언제든 즐길 수 있으리라는 것. 아쉽지만 한인마트 안, 대표빵집이라도 방문해서 2%부족할 Shaved ice라도 시도는 해보아야겠다. 여름이니까.

그 어떤 토핑도 환영. 달짝지근 팥빙수도 새콤 과일빙수도 보고싶은 날




뜨거운 곳, 시원한 맛,

찜질방에서 들이켜는 식혜 (feat. 맥반석 계란)


먹는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같겠지만, 요즘 자꾸 찜질방이 가고 싶다. 대중목욕탕, 온천탕 같은 게 있을리 만무한 이곳 보스턴에서 그 후텁지근한 열감에 헉헉 거렸던 순간을 그려보고 있다니. 커다란 욕조에 물 한 가득 담아서 반신욕도 해보고 그렇게 일련의 '힐링' 작업에 돌입해보건대, 물의 온도를 아무리 높여도 찜질방 분위기의 힐링은 못 따라잡는다. 더더욱이 찜질방 표 먹거리마저 눈 앞에 아른거리잖아. 그렇다. 찜질방과 목욕탕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꼭 함께 생각해야할 것만 같은 아이들. 뜨거운 탕에서 나온 직후 맛봤던 맥반석 계란과 살얼름 동동 얹힌 식혜. 마음 먹으면 집에서 비스무레하게 상황재현은 할 수 있겠는데 분위기가 영 안 살 게 뻔하다. 아쉬운 마음에 계란 두 개 삶아봤는데 한국에 가지 못하는 마음에 아쉬움만 더 격해졌다. 텁텁하다.


그 어떤 맛있는 음료 옵션이 가득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찜질방에서라면 당연히 살얼음동동 식혜를 고르겠어요.


스크램블에그, 써니사이드업, 오믈렛 등등 계란을 조리해먹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호텔조식이라도 먹을 기회가 있다면 갓 내린 커피 한 잔에 두부처럼 야들야들한 촉감이 잘 살아있는 오믈렛 먹는 걸 좋아했다. 나이가 차차 들어가면서 취향과 식성이 고새 달라진 걸까. 요즘은 동글동글한 모양새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만지작거리다가 톡 깨먹는 '삶은 계란'을 향한 애정이 조금 더 두터워졌다. 자연스럽게 삶은 계란들에 얽힌 추억의 장면들도 같이 섭취하는 효과가 있다. 앞서 언급한 찜질방 계란은 물론이고 기차 안에서 재미삼아 먹던 계란, 소풍도시락 안에 몇 알 같이 곁들여 넣었던 계란, 동그란 추억들이 영양가 있게 마음을 불린다. 이왕이면 그 음식은 그곳에서 그 사람들과 먹는 게 좋겠다. 한 개 먹고, 두 개먹고 허한 심정 때문일지 몇 개를 삼켜도 배부른 느낌이 없다.


목욕마치고 냠냠 먹는 맥반석 계란만큼은 아니지만

식혜도 마찬가지. 평소 즐겨마시던 음료가 아니었음에도 둥둥떠다니던 쌀알에 이런저런 기억들이 같이 얹혀있다. 최애 음료수도 아닌데 자꾸 맛이 그리워진다는 건 그걸 마셨을 떄의 장면들을 흡수하고 싶은 욕구인 듯싶다. 한인마트에 가면 특정 회사 브랜드의 이것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음을 알지만, 그래서 사지 않는다. 내가 먹고싶은 건 식혜가 아니라 맑고고운 흰 자태에 얹힌 기억조각들일테니. 입안에 오물오물 거리면서 씹어삼키면 식혜를 먹던 공간, 함께 살얼음을 나누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그리움만 보태는 꼴이 될 것 같다. 한국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옆친구에게 식혜를 영어로 설명해주게 됐는데 쌀 음료라는 말에 눈이 동그래지는 표정이 재밌다. "두말말고 먹어봐. 한국가면 '찜질방' + '식혜'를 꼭 시도해봐야 한다고"


한옥 카페에서의 아이스 커피 한 잔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하는 풍경에 고즈넉한 한국멋이 녹아 있다면


주말, 평소 좋아라 따르던 여행작가님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마음을 간지럽히는 포스팅 하나를 만났다. 몇 년 전 허니문 여행지에 대한 단상을 맛깔스럽게 담아낸 책의 저자 고서령 작가의 sns계정이었다. 한옥카페에서의 독서, 일요일 아침 힐링의 순간을 담은 업데이트였다. 짤막한 글과 함께 담긴 한옥의 고즈넉한 풍경. 그 옆에는 아이스 커피 한 잔. 좋아라하는 스타벅스의 본 고장,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만큼은 작가님이 담아둔 저곳에서의 저 커피 맛을 빈틈없이 읽어내고 싶었다. 얼마나 꿀맛일까. 그 어떤 고급진 원두를 쓴다했을지라도 미국에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커피의 맛일테다.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하게 기운을 뽐내는 한옥의 정갈한 정취, 그 멋까지 아이스커피 위에 토핑처럼 담겨서 더 꿀맛이었을 게 그려진다.

미국 이곳도 너도나도 추천하는 카페맛집 가득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한국 카페 감성이 그리워지는 걸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한국에서처럼 미국에서도 다양한 커피맛집에 발도장을 찍고 있다. 한국에 블루보틀이 입성하기보다 조금 일찍 블루보틀의 라떼 고소한 맛에 푹 반해있었고, 한국에는 아직 들어가지 않은 프랜차이즈들에서 색다른 맛을 느끼며 하루하루 맛정복의 쾌감을 느끼고 있던 시간들. 커피 맛보기에 전혀 무료하지 않고 아쉬울 게 없는 풍경들이 거리마다 펼쳐진, 바로 이곳 별다방의 본토 미국임에도!! 아아 '한옥카페'의 단아한 정서는 이겨낼 도리가 없다. 전주mbc에 근무하던 시절, 한옥마을과 한옥펜션, 한옥에서 즐기는 한상차림 한식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왜그리도 감탄하고 좋아라 열광하는 기색을 보였었던지 이제서야 슬그머니 끄덕여진다. 은은하게 이어지는 적당한 곡선의 멋이 과하지는 않은 담담한 라떼의 맛과 닮았고, 1시간 2시간 가만가만 앉아서 바라봐도 질리지 않을 한옥 곳곳에 깃든 문양들은 토핑이나 휘핑크림 과하게 얹지 않아서 내내 마셔도 어지럽게 달지 않은 커피 한 모금스럽다. 그런 곳에 둘러쌓여 마시는 커피도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겠지 싶다.


보스턴 인기많은 빵카페 중 한 곳. 한옥 카페였다면 현대판 양갱이나 경단. 무늬 곱게 수놓아진 화과자와 곁들였을 거라고
그러고보면 예쁘고 아기자기한 디저트는 한국에 더 많았던 것 같잖아?


마음이 이미 콩밭으로 갔으니 보스턴 애정장소들에서의 커피 한잔 보스턴 공공도서관의 정원카페에서 분수 물줄기를 바라보며 시원하게 들이키는 아아메, 보스턴 파인아트 뮤지엄의 탁트인 로비에서 부드럽게 입술을 축이는 카푸치노?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버리고야 말았다. 지금 마시고 싶은 커피는 말이지, 샷이 잔뜩 더해 진해진 커피도 아니요, 유명 브랜드의 그 파란색 물방울 커피도 아니요, 소문난 그 원두로 만들어낸 커피도 아니다. 매일 별모으는 재미로 사먹는 별다방 커피도 오늘만큼은 단단한 각오로 거부하겠다.


커피가 다 같은 커피는 아니라는 거죠

삼청동이나 인사동 등지의 한옥카페에 얌전한 자태로 앉아서 늘어지게 즐기는 커피도 좋겠고, 덕수궁 돌담길 땀 송골송골 맺힌 채 걷다가 만나는 조용한 카페에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지금 막 구매한 신간 한 권을 끼고 즐기는 커피도 좋겠다. 곁들일 수 있는 한국 간식이 있다면 양갱이든, 화과자든 가격 개의치 않고 꼭 곁들여줘야지. 스콘이나 마들렌에 깃든 입맛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몸소 체험해주겠다. 한국적인 정서까지 휘휘저어 카페인과 함께 섭취할 수 있으니그 커피맛, 더 부드러울 수 없겠다. 편안해지는 풍경도 바리스타의 실력에 바지런히 한몫을 더해내고 있는 거였다.


"여기 잔디밭인데요?" 배달음식의 최고봉 짜장면

미국에서 짜장면? 먹을 수 있다. 차이나타운 어딘가를 찾아도 비슷한 누들메뉴가 있을 거고, 한식당에 가도 짜장면 메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스턴을 둘러싼 미동북부 지역의 한국인 거주 숫자만 생각해도 짜장면 메뉴를 개발하고 탕수육이나 짬뽕과 결합해 판매해나갈 수요가 충분히 된다. 그러고보니 몇 주 전 갑자기 짜장면이 당겼던 남편은 한인마트에 장을 보러간 김에 옆에 붙어있는 작은 푸드코트에서 아쉬운 대로 '급' 짜장면 식사를 즐기기도 헀다. 맛은 다소 심심했으나 그럭저럭 급히 욕구를 채우기에는 무난한 맛이었던 듯 싶다. 지극히 평범한 짜장면인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 기준가로 비싼 게 흠이긴 했지만.


짜장면은 배달용 그릇에 먹어야 제맛인데요
그 어느날 한인마트 한 켠에서의 짜장 먹방

남편이 한국만 들어오면 '짜장면'을 꼭 한번씩 먹곤했다는 에피소드를 이젠 '정말'로 공감하겠다. 짐작했겠지만 그 '짜장면'은 절대 그 짜장면이 아니다. 나는 남편의 욕구에 한 가지 옵션을 더해서 곁들이고 싶다. 일명 '잔디밭' 옵션. 배달의 천국, 한국에서는 한강둔치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든, 신촌캠퍼스 문과대나 중도 근처 잔디밭 벤치에서 동아리 모임,  과 모임을 즐기고 있든 (2009년 졸업자의 시선임을 주의하라. 요즘엔 캠퍼스가 많이 달라졌더라. 시켜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서울 숲 공원에서든, 올림픽 공원에서든 '잔디밭' 어느 지점에서도 짜장을 범벅해낼 수 있는 엄청난 매력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 않던가. 보스턴 커먼 공원을 지나다가 오늘도 생각했다. 여기 보스턴 글로브 다 본 신문을 사뿐히 내려두고 짜장면 비비면 최고겠는 걸? 군만두 서비스도 있으면 더 좋고.

여기 잔디밭인데요. 배달되죠? 퍼블릭 가든에도 철가방이 등장한다면!
특별한 날엔 이런 것도 같이 배달시키면 딱인데 말이지요


특유의 공간 멋을 얹어낸 '맛'을 꿈꾸고 그려본다. 괜찮다고 소문난 아시안 레스토랑이나 가격대가 생각보다 높아서 종종 입이 벌어지고야마는 한식당에서의 '그 음식'이 아니라 한국에서 그 음식이 버무려지던 공간의 기운까지 흡수해내고픈 욕심이다. 한국에서 수십년을 살아올 땐, 허름하고 종종 소박하게 느껴지던 별 것 아닌 인테리어 하나하나까지도 이토록 음식에 깃든 향수를 불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을 줄이야. 모든 걸 구해먹을 수 있는 시대, 의지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고국의 메뉴를 맛볼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나 여전히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뻥튀기는 뻥이야. 아저씨 옆에서 귀틀어막고 공포에 질려있다가 냉큼 죽부인만한 크기의 큰 봉지에 담긴 걸 들고와야 제맛
나 역시 자주 경험해 본 세대는 아니지만 수박도 원두막에 올라앉아서 먹던 이유가 있는 거겠지. 시원하고 달큰한 맛이 극대화 되는 장소


푸드트럭에서 서서먹는 김.떡.순 (이왕이면 10달러도 안들이고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한국판 빙수 프랜차이즈집에서 사먹는 엄청 큰 빙수 한 그릇 (이왕이면 2000년대 초중반 거리거리 많았던 아이0베리나 레드0고가 부활하면 더 좋겠고). 찜질방에서 먹는 살얼음 식혜 (식혜한병 사면 맥반석 계란 하나씩 쥐어주는 프로모션은 없을까나요. 날도 더운데 단백질 보충겸). 한옥카페에서 마시는 아이스커피 (한국판 곁들임 디저트가 꼭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잔디밭 그 어딘가 모호한 지점에서 즐기는 짜장면 한 그릇 (앞에도 말했듯,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군만두 서비스는 감사히 잘 받을 자신 있어요). 다섯 가지의 '그 자리 그 맛'을 즐길 날이 그 언젠가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미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이 리스트가 5개에서 10개로, 15개로, 자꾸만 늘어날 것만 같아서 살짝 두렵기는 하지만. 상상만 해도 마음이 배부른, '먹고 사는' 이야기. 더 하면 한없이 배고플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에서 종료.


스윗홈 말고, 고급진 한식집 말고 좁고 초라한 곳에서 널 만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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