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라는 말이 있던가. 그 좋은 가을 햇볕이라지만 단풍이 지는 나뭇잎을 통과해 내 눈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그저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다. 쌀쌀한 바람은 덤으로 불어오는 가을 날씨는 내 마음을 이유 없이 살짝 멜랑콜리하게 만든다. 이럴 땐 침대에서 눈을 떠도 곧바로 출근 준비를 하기가 어렵다. 그럴 땐 속으로 나를 깨우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출근은 하기 싫지만 그래도 아이들 보러 가야지.'
참고로 나는 미혼인 데다 아이는 없다. 그런데도 이 말을 되뇌며 출근을 재촉하는 이유는 나는 어린이 및 청소년을 매번 마주 대하는 초중등 독서논술강사이기 때문이다.
마음 가짐만 보면 누가 봤을 때 경력이 상당한 독서논술전문지도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사실 2025년 10월이 돼서야 1년을 갓 넘긴 초보 강사다. 내 나이 만으로 35세. 나이 대비 경력은 짧다. 그럴 수밖에. 나는 그전까지 회사만 다닌 회사원이었으니까.
내 직업적 커리어 기간 동안 잠시 나의 전공(국어국문학과)을 살려 보겠다고 입시 학원에 국어 강사로 1년 재직하기는 했다. 그 입시학원은 수학과학 전문학원이었는데 곁다리로 국어 과목까지 진행했다. 그것은 이과 아이들의 발목을 잡는 국어 성적을 올리기 위한 보조적 장치가 아니었을지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그런 구조의 학원의 국어과에서 근무하다 보니 이과 과목들에 비해 존재감이 미비한 국어 과목의 강사로서 재직하는데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 이리저리 수학과목에 치일뿐더러 강사 수도 압도적으로 다른 과목에 비해 국어과가 작았고(수학과학은 강사 수가 합치면 15명도 넘는데 국어과는 겨우 나 포함 2명이었다.) 강사로서의 대우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가 이러려고 전공 따라 여기에 왔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1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이었다. 특히나 중1이나 고1같이 새로운 학교 생활에 들떠 이것저것 쫑알쫑알 얘기하고 신기한 게 많은 아이들은 독고다이 국어과 강사 근무를 할 당시 내게 활력을 주는 존재였다. 퇴사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업이 저녁 시간이라 지칠 만도 한데 신나서 학교 얘기를 하고 작년과 달라진 수업 내용에 힘들어죽겠다고 푸념하면서 별일 아닌 일에도 웃는 아이들이. 여전히 생각난다. 사무직을 하던 당시에 파티션에만 갇혀 일하는 내가 너무 싫었고 예전에 학원에서 근무하며 아이들과 소통하고 웃으며 수업하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곤 했다. 그래서 나는 사무일을 하던 직장인을 그만두고 다시 학원가로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저번처럼 학원 시스템 때문에 퇴사하지 않기 위해 국어 혹은 독서글쓰기에만 특화된 학원을 가기로 마음먹고 이번 학원에 오게 되었고 결국 독서논술 학원에 정착하게 되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학생의 나이대가 다르다는 것. 그전에는 중고생을 가르쳤고 이 번에는 초중등(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어린이라고는 명절날에 잠시 보는 친척 아이들이 다인 나인데 과연 잘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네가 어린애들을 가르친다고? 그것도 초등학생을?"
네, 그렇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네요. 주변인들은 처음에 초등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고 했다. 물론 책을 좋아하고 평소에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나라는 건 나랑 친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었지만 그걸 가르치는 대상이 어린이라면 흠, 글쎄 라고 말하거나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고 음, 그래하며 말없이 웃음을 지었던 친구들이 몇 있었다. 사실 나조차도 조금은 의문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아주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중고등과는 체격도 마음의 결도 달라서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건 머리만 굴려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아이들을 대하고 실전으로 부딪혀 가면서 얻어내야 하는 실전 지식이었기 때문이었다.(대부분의 업무가 그러하겠지만 교육 업계는 특히나.)
그리고 막상 어린이들을 대하고 지도하다 보니 중고등학생보다 오히려 내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학원에서는 중1과 고1이 그나마 활기찼지만 나머지 학년들은 수업 시간에 말 한마디 없이 내 수업에 반응 하나 없이 목석처럼 있다가 종이 울리면 조용히 가방을 챙기고 사라지곤 했었다. 그때 수업을 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나 혼자 원맨쇼를 펼치는 기분이랄까. 가끔은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한 게 아니라 광대 짓을 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무얼 하든 반응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착했지만 그렇다고 그 점이 내 심장을 움직이게 하지는 않았다. 내가 수업할 때 아이들도 나도 좋은 기운을 나눠 받은 건 활기찬 아이들이 많았던 반이었다.(그게 대체로 중1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지금처럼 더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들과 수업을 하면 오히려 내가 에너지를 더 받으면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출근은 언제나 힘들다. 눈을 뜬 다음,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어딘가로 몸을 향해 나갈 준비를 하는 건 귀찮고 고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러 간다는 생각을 하면 그 싫던 출근도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대중교통으로 3-40분이 걸리는, 직장인이었을 시절에는 시간 낭비 마냥 여겨지는 출근길도 오늘 수업 전에는 이런 걸 준비해야 하고 애들은 누가 올 것이고, 그럴 때 어떤 마음 가짐으로 맞이하면 좋을지 구상을 하면 그 시간도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이럴 때면 다음과 생각이 들곤 한다.
'그냥 사무업무 하기보다는 아이들 대하는 일 하기를 잘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