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땐 무작정 걸어보자

by jobsori

아파서 회사 일을 쉬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내 머릿 속은 오리무중이었다. 회사 때문에 힘들었던 나는 단순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하는 생각으로 미친듯이 이직을 준비했었으니까. '내가 나가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회사라는 조직 자체에서 조금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더 이상 하기가 싫었다. 과거의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은 싫어도 일은 좋아했기에,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공고를 찾아 헤맸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할 지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은 사춘기였을까. 무서웠다.



그 동안의 내 삶을 되돌아보자면, 해답을 보고 문제집을 푸는 것 같은 삶이었다. 학교에 다니고,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하고. 취직해서 출퇴근을 반복하고. 취미생활하면서 돈을 벌어 노후를 준비하는 삶. 어쩌면 나를 비롯한 직장인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회사에서 일련의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아파서 회사를 쉬게 되면서, 나는 부적응자이고, 아웃라이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동기 한 명은 내가 힘들게 갈등을 겪고 있는 걸 지켜보면서, "모두가 회사를 때려치고 싶어하지만, 다들 현실에 수긍하면서 산다"고들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첨언했다.


"넌 정말 특이해."


그 얘기를 들으며, 엄마가 나에게 하던 말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버틸 수 없어 참다가 말하면,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가르키며 "너희 둘은 참 특이하고, 모났다."라는 말을 하셨다.

동기의 말도, 엄마의 말도, 모두 나를 긁는 말이었지만,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현실에 수긍하지 못하는 건지, 특이한건지, 아직 나를 잘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이 숨 막히고, 재미도 없는 곳에서 버티고 싶지 않았다. 이 곳은 나에게 쉽지도 않은 곳이며, 그렇다고 즐거움을 주는 곳도 아니었다.



그래서 쉬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하루종일 해도 질리지 않고 지치지 않아서 멈출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책을 발견했다. 난 항상 힘들때마다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보통 현실에서 동떨어진 판타지 소설을 읽고는 했는데, 그것도 책은 책이니까. 이 사실을 깨닫고 시기별로 작성해두었던 독서기록을 꺼내보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시기에는 나는 전혀 책을 읽지 않았고, 그 시기를 무사히 넘기면 독서량이 현저하게 늘어나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였기에 책을 읽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힘든 시기에서 벗어나 행복해서 책을 다시 가까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책과 함께 했기에 행복했고, 책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더 힘들었다고 믿고 싶어졌다.


어렸을 적부터 다독가는 아니었으나,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정말 멋있게 여겨졌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

고 싶던 사람 중 하나였고, 비로소 내가 내 밥벌이를 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니,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졌다. 물론 책과 관련하여 머릿속에 떠오르는 직업들은 많지 않았다. 작가, 출판업계 종사자들.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막막했다. 내가 당장 작가가 될 수 있나? 출판업계로 이직을 할 수 있나, 경력도 없는데?


그러다 북스타그램을 알게 되었다. 북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서 책 관련 피드를 업로드하는 걸 말한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북스타그램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인스타 광고글을 보면서,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수익을 창출하는 북스타그램의 공식을 아직도 난 잘 모른다.




나만의 책과 관련된 일을 창출해보고 싶었기에 무작정 북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보통 북스타그램 계정은 책의 표지를 멋스럽게 촬영하고 피드에 올려, 책에 대한 감상평을 길게 적는 것 같다. 나는 거부했다. 그렇게 꾸준히 쓸 자신도 없고. 한두번은 할 수 있을 테지만, 어느 순간 지쳐 나가떨어져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 있는 분야는 있었다. 한 번에 여러 권을 읽는 병렬적 독서 습관을 가진 자로서 좋은 점은, 여러 권의 책들이 머릿 속의 여러 부분을 자극하면서 책을 적절하게 큐레이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의외로 같이 읽게 되니 좋은 책들을 발견하기도 했고, 같이 읽으면 좋을 책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살려 피드를 업로드 하기 시작했다. 벌써 19개의 피드가 쌓였다.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핫한 반응이 바로 입질 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잔잔한 게 아닌가 싶긴 한데..


난 길을 잃은 사람이니까. 우선 정처 없이 걸어봐야겠다. 꾸준히 걷다보면, 어느샌가 몇 갈래 길이 나오긴 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