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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Jan 05. 2022

밥만 먹고 가라면서요?

술 한 잔 마셨습니다.. 진심을 다해 씁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어째서 먹고 싶은 사람끼리만 먹으면 안 되나요?"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퇴근 후에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음주 후 취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하루 일과를 마감할 수 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술과 음식을 나누며 즐거울 수 있다.. 


많은 이유들을 나열해보며 애주가의 심리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리 공감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3가지가 있습니다.


1) '밥만 먹고 가라'더니, 막상 식당에 가면 "카스하고 처X처럼이요!"라고 외치는 이유가 뭔가요?


2) 집에 가서도 할 일이 많은데 왜 앉으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요?


3) 어째서 같이 술 마시면 '상대방도 즐겼다'라고 생각하고 전보다 친해졌다고 착각하는 걸까요?


음주는 개인의 자유라지만, 한국의 술 문화 안에서는 집단적 의무가 됩니다. 술은 잘못이 없습니다. 거절하기 껄끄러운 위치에서 타인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한 잔 하고 가자고 하면 어지간해서 빼지 못하니 술 마시는 게 좋은 줄 압니다. 전혀요. 그저 사회생활해야 해서 마시는 것뿐입니다. 


저는 알콜쓰레기(알쓰)입니다. 술 마신 당일 밤부터 머리가 아파서 잠을 못 잡니다. 다음날도 숙취로 괴롭습니다. 그다음 날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알콜 과다 섭취로 고장이 난 셈이죠. 일상에서 산업재해를 겪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 중에 30%는 알데하이드 분해효소의 유전적 결핍을 타고난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접니다. 이런 저에게 사람들은 "술은 진짜로 마시면 는다."라고 말합니다. 만성적인 음주로 인한 착각일 뿐, 암 발생 위험은 증가한다고 하지요.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에게 음주를 권하는 사람들이 저 같은 알콜쓰레기가 겪는 심신의 고통을 알까요?


제 자신에게도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째서 단칼에 술 약속을 거절하지 못하나요?"


구차하지만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경험해본 적 없는 불이익이 두렵습니다. '감히 거절을?' 이렇게 낙인이 찍히고 평판이 나빠지면 어쩌죠?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뭐 이렇게 쫄보처럼 사느냐는 말을 들어도 별수 없습니다. 직장인이잖아요?


2)  제가 거절하면 혹시나 후배한테 차례가 넘어갈까 봐 따라갈 때도 있습니다. 맨손으로 구멍 난 제방을 막는 네덜란드 소년 한스의 심정으로요. 결국 한스는 마을을 구하고 숨지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죽습니다.


3) '미혼에 남자'인 게 죄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술 마시러 가자는 말을 들을 때는 '란마 1/2'처럼 물을 끼얹은 다음 "뿅!" 하고 여자가 되고 싶습니다. 부르지 않아서 부럽습니다. 때로는 아이를 입양하고 싶습니다. 미혼에 남자인, 그저 고양이 집사일 뿐인 저와 저희 집 고양이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술은 잘못이 없습니다. 술을 권하는 사람이 문제이지요.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도 똑같이 문제입니다. 저는 싫어하고 애주가들은 좋아하는 소주처럼 투명했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했으면 좋겠습니다. 


"밥 먹고 갈래?"라고 묻는 대신 "술 마시러 간다."라고 당당히 이야기해주세요. 그리고 싫은 티 내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말아 주세요. 아니면 같이 가더라도 혼자만 드세요. 마시고 싶은 만큼만 마시게 해주시든지요.(건배 극혐)


우리 하루 8시간 동안 같이 있었잖아요? 술을 마셔야만 진심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일과 시간에도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미혼은 서럽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라고 술자리에서 말하면서 좋은 사람 만날 시간을 뺏지 말아 주세요. 기혼이라면, 집에서 가족과 마셔도 좋지 않나요?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 위의 글은 알콜쓰레기의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느낀 점을 애주가 분들께서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정리해 본 글입니다. 혹시나 회사 분들이 이 글을 발견하시더라도, 저는 회사에 아무 불만이 없음을 밝힙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실장님, 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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