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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각쟁이 May 15. 2019

카레를 끓이며...

자꾸 못생긴 감자라고 놀리면 다친다.


"엄마의 사랑을 카레에 담았습니다. 요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엄마의 시간을 아이에게 나눠주세요. 영양만점 카레는 정성입니다. 3분 카레."


방학 때면 우리 집엔 늘 삼식이가 살고 있다. 매끼마다 다른 메뉴를 고민하고 직접 해 먹이는 일은 방학숙제 중 가장 까다로일이었. 긴긴 방학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 밥하기에는 늘 대책이 없었다. 먹고살기 위한 밥벌이가 계속되듯 엄마의 주방 생활은 반복되었.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오늘은 카레 요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 은유에겐 좀비처럼 무시무시한 변비가 따라붙었다.  아이가 낯선 유치원 화장실과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가 보다. 야채들의 모습을 감춘 채 잔뜩 투하할 수 있는 카레를 처방해야겠다. 평소에는 잘 안 먹던 가지와 브로콜리까지 자잘하다져 넣으면 카레는 오묘한 색을 띈다. 기다란 국자로 휘휘~ 저으며 무시무시한 마녀가 되어보는 거다.



'아니, 왜~??  내가 만든 카레가 뭐가 어때서~!!'


카레를  끓인 날이면 퇴근 후 남편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 자주 먹던 형광빛  깡통 카레가 자꾸만 떠오른다며 수저 들기를 주저한다. 반면에 은유는 카레를 좋아한다. 강렬한 맛 보다는 실은  간편해서다. 유치원생 입맛인지라 미식보단 아직 후딱 먹고 노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한 그릇에 모조리 담아서 수저 하나만 들고 쓱싹 비벼먹고는 쏜살같이 다시 장난감에게 돌아간다.



[ illustrated by Hyunhee Kim ]

"카레는 땅속에서 함께 나고 자란 야채들이 다시 모이는 아나스포라(귀향)의 현장이다."



한 편 내가 카레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누구나 서점 한켠에서 맛깔난 사진에 혹해 구입하는 요리책 몇 권이 우리 집 책장에도 꽂혀있었다. 주방에서 사용한다면 으레 기름 좀 튀고 고추장도 묻어있어야겠지만 이 친구는 왠지 너무 순결하다. 한글깨쳤고 딱히 난독증도 없는 나에게...요리를 글로 배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나리 한 줌은 대체 얼만큼이며 소금 한 꼬집의 적정량은 얼마일까... ' 


요리책의 지휘 하에 오랜 시간 정성쏟아 완성한 요리들은 아쉽게도 그 맛과 행색이  남루했다. 책 속의 화려한 식탁 위 잘 차려진 완성사진과 도리질하며 번갈아보다 이내 밀가루를 뒤집어쓴 내 두 손이 초라해졌다.


계속되는요리 방랑의 날들  카레를 만났다. 누가 어디서 요리하더라도 노란 마법의 가루만 넣으면 영양 만점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뜨끈한 위안이었다. 까칠하지 않고 어딜 가도 성격 잘 맞는 서글서글한 이 친구 덕분에 든든했다.  뻔한 실패를 거듭하 내 요리 인생의 멍에를 벗어던졌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요리는 기본은 재료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 시작된. 재료를 열심히 씻고 자르고 쪼개고 익히고 으깨어 새롭게 한다. 가끔 바쁘다는 핑계로 이 과정들을 압축시키기도 한다. 반조리식품으로 조리해 먹거나, 사다 먹거나, 나가 먹는다.  동안 유행처럼 사다 나르기를 반복했던 조리도구들은 점차 갈 곳을 잃어갔다. UFO를 닮은 레몬즙 짜는 도구나 칼날 별로 대기 중인 슬라이서들이 싱크대 하부장에서 날 좀 그만 내보내 달라고 ~~ 아우성친다. 무심코 칼을 꺼내들던 찰나에 야채를 올려둔 채반에서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illustrated by Hyunhee Kim ]

<<감자의 수다>>


"요즘  인간들은 말이야. 감사함은 모기 눈곱만큼도 없는 속 좁은 종자인 것 같아. 못생긴 사람을 보곤 꼭 우리 감자에 비유하다니 너무 치사하지 않나. 사람들이 전쟁이나 기근으로 결핍에 시달릴 때마다 우리 조상님들이 몸소 구황작물로 활약한 덕분살릴 수 있었다고...사람을 살리는 작물이던 우리 집안의 시대가 흘러가고 이제 먹을게 많아졌다고 푸대접을 받고 살아야하다니. 인간들은 정말 싹수가 노랗군. 내가 앙심을 품으면 싹에 숨겨둔 독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다시 앗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게야.  더욱 슬픈건 말이지...요리에서 내가 주인공이었던 적은 별로 없다는 거야. 내 자리는 늘 냄비 밑에 눌어붙어있거나 으깨어진 채로 올려진 접시 모서리 뿐이더군. 심지어 감자탕에서 조차 내가 주인공이 아닌 걸 보고 뒷골이 당기더군. 이번 요리도 카레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다시 어둡고 습한 땅속으로 돌아가버릴까..."



'저 거만하고 말 많은 투덜이 감자부터 처리해볼까... 싹이 난 자리를 칼 끝으로 도려낸 감자의  껍질을 벗겨내니 정말 못 봐주게 생겼군.'


칼자루를 쥔 손목에 살들의 하중을 실어 누른다. 이내 야채들의 비명소리로 가득  주방은 살육의 현장으로 뒤바뀌었다. 


오늘도 자식을 먹이기 위해 맹렬히 사냥하는 어미의 눈빛으로 주방 곳곳에 서치라이트를 비춘다...



(김훈 작가님의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감명받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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