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라라쏭짱 Apr 19. 2022

9편 별이 된 불쌍한 길고양이 애꾸눈 '짹'

널 언제나 기억할께! 사랑해!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생명체가 있었어. 마당을 나가면 어딘가에 엎어져 자고 있던 ‘짹’.  그 세상 편하고 다 놔버린 무장해제의 모습은 항상 번잡하고 시끄러운 내 생각들을 다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어. '너도 그냥 한숨 자렴.'이라고.      

"짹 오늘은 싸움하러 안 나가니?"라고 시시껄렁한 내 말에 짹은 항상 "야옹"이라고 대답해 주었어. 아! 누가 내 말을 이렇게 유심히 듣고 꼬박꼬박 대답해줄까?  다들 바쁜 척 정신없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심란한 마음 한 가득 가지고 앉아 있으면 슬그머니 다가와 꼬리로 나를 싹 훑어주는 짹. 누가 심통 난 나에게 먼저 다가와 스킨십을 청할까?  너는 그런 친구를 가진 적 있었니?     


   우린 모두 각자의 삶의 재봉틀이 있어.  짜깁기한 바느질거리로 인생을 꿰매는 거지. 어느 날은 너무 쉽다가도 도대체 바늘이 안 나가는 날도 있어. 언제는 천이 너무 두껍고 또 언제는 바늘이 얇고 아니면 바늘귀 자체가 완전히 막혀버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겨우 박았는데 뜯겨버리기도 하고ㅡ그렇게 무겁고 찢기고 짓눌리고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꿰매고 살아.  길 고양이 애꾸눈 짹의 그 삶도 분명 가볍지 않았을 텐데 아니 늘 생존 자체의 문제였을 텐데 나까지 그리 챙겨줄 여유가 어디서 나왔을까? 날 있는 그대로 대해주는 한결같이 삐치지 않는 친구.      


먹는 것은 절대 양보하는 법이 없었는데. 난 그것도 좋았어. 우린 싫어도 겸손한 척. 아니어도 빼는 경우가 있잖아.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꽉 움켜쥐고 있어야 되는 거잖아! 짹은 언제나 직진이야. 무법자 옆동네 ‘번개’에게 절대 물러서질 않았지. 다치고 절뚝거려도 길고양이는 열심히 살아간다! 이런 좌우명이었을까!. 비겁하게 속 다르고 겉 다르게 살 때가 많은 나.


     어느 날. 난 이런 어느 날이 싫어. 무슨 일이 어느 날 일어나는 거라서 싫어. 일어나고 난 다음에 그랬다고 말하는 것도 싫어. 시간의 어느 시점을 돌리면 그 사건 이전으로 가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가능하대. 그래서 그런 영화도 싫어. 마음대로 되돌리는 무책임한 영화들     


     식구들이 다 같이 외식을 하러 나가는 길이였어. 저녁 해가 아직 떨어지기 전이여서 휜 했어.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는데 하얀 덩어리가 길 가장자리에 보였어. 짹이다!라고 인지하는 순간 비명이 나왔어. 짹! 안돼! 하며 달려가 들어 올렸는데 이미 몸은 굳어 있었어. 바닥에는 핏자국이 선연했고 입에도 피가 묻어 있었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어. 짹! 안돼. 짹! 일어나. 짹! 제발. 어쩌면 좋아!.     

   나중에 cctv를 돌려보니까 짝궁 ‘새애기’가 먼저 길을 건너 폐가 방앗간으로 들어갔고 뒤이어서 짹이 뒤쫓다가 지나가는 하얀색 SUV 차량  앞 오른쪽 바퀴에 치였어. 자동차는 잠깐 멈칫하는 것 같더니 그대로 가버리고 그 뒤엔 짹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어. 왜 짹을 못 봤을까? 하느님은 왜 그 순간을 놔두셨을까? 짹은 좀 더 빨리 가던지. 늦게 가던지 하지 않았을까? 새애기는 왜 짹이 쫓아가도록 도망을 갔을까? 폐가 방앗간은 왜 만날 저 자리에 있는 걸까? 집을 새로 짓던지. 허물어 버리던지. 뭘 해야 되는지. 원망스럽기만 했어. 혼동된 쓸데없는 생각들이 울부짖는 내 머릿속에 맴돌았어.     

    어느덧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어. 여전히 감기지 않는 한쪽 눈을 뜨고 잠자듯이 짹은 멈춰 있었어. 그 눈을 감겨주면서 말해주었어. "이 한 눈으로 세상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니? 짹. 이제 편안히 두 눈을 다 감고 있어도 된단다". 앞 산 낮은 언덕에 구멍을 팠어. 짹을 가만히 누워놓고 덮어주었지. 가슴에서 나오는 울음소리가 목이 쉬어 녹이 슨 쇳소리가 되어 꺽꺽 밀려 나오고 있었어. 마지막 흙을 덮고 집 쪽을 바라보았어. 활발하게 뛰어놀던 모든 마당냥이들이 부동자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어. 그 장면이 너무나 이상해서 잊혀지지 않아. 마치 짹이 가는 길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듯.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듯. 슬픔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라는 듯.

매거진의 이전글 8편 누구나 한가지쯤은 잘하는 것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