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책방지기의 서평 #4
예전에 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를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서점에 갔다 김훈 작가의 신작 <허송세월>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데려와 읽었다.
처음에는 가난과 빈곤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작가에게 다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나름 유력 언론사들의 고위직을 거쳤고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가난과 빈곤을 논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심 '저 세대 특유의 가난타령이구만, 내 어렸을 때는 사흘에 피죽도 못 먹고.... ' 나의 부모님들도 40년대생인지라 산업화 세대 특유의 '라떼는 굶어 죽을 만큼 배가 고파서...'가 듣기에 지겹기도 하고 반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화 세대는 어릴 때 거의 모두가 굶어 죽을 만큼 배가 고팠지만 청장년기에 대한민국이 엄청난 고도성장을 하면서 은행에 저축만 해도 1년에 이자가 10% 이상 나오던 시절이라, 평생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 번 돈을 저축만 하셨던 할머님들도 돌아가시기 전에 엄청난 돈을 대학에 기부하시며 "나처럼 공부 못해 고생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장학금으로 쓰라"라고 유언을 남기시는 것을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즉 산업화 세대는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했고, 젊은 시절 말도 안 되게 힘든 노동으로 엄청나게 고생을 했지만, 직업이 무엇이든 일하고 저축만 해도 충분히 부를 이룰 수 있었던 시절을 살아오셨는데, 이미 여유로워진 지 수십 년이 지났것만 아직도 계속 가난 타령을 하는 것이 고착화된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세대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에 대한 북클럽 발제문을 준비하면서, 작가의 생각을 그간의 인터뷰 등을 통해 직접 들어보니, 내가 괜한 선입견으로 섣부른 판단을 했구나... 나의 생각이 한참 짧았구나 느끼게 되었다.
김훈 작가는 유신 정권이 들어선 다음 해인 1974년 오로지 밥벌이를 위해 신문사 기자로 취직한다. 엄혹했던 80년대 군사 정권 치하에서 숨겨진 진실을 적기보다는 밥벌이를 위해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가 어쩌고 저쩌고 류의 기사를 썼다. "빌어먹을 80년대가 끝났으므로 굶어 죽더라도 기자를 하지 않겠다"라고 89년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나온다. 하지만 쌀이 떨어져서 94년 다시 신문사로 돌아간다. 그놈의 밥 때문에.
어느 인터뷰에서 김훈 작가는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과 군사정권의 폭압에서 벗어나는 것", 그 두 가지가 자신 세대의 두 가지 당면 과제였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가 보기에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밥이 남아도는 나라로 발전하는 동안, 너무 많은 모순과 불합리와 악행이 자행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산업재해에 대한 최근의 행보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제 밥이 남아도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제는 남을 희생시켜서 내 밥그릇을 챙기는 일은 최소한 멈춰야 한다고...'
동시대 작가이다 보니, 영상을 통해 작가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글을 읽는 것보다, 사람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생각을 이해하는데 백만 배 효과적이라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