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환자라니!
이모에 대한 첫 기억은 뭘까. 잠자리에 누웠다가 문득 궁금해져 머릿속을 헤집었다. 내 키와 엇비슷한 식탁에 엄마와 마주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이모를 볼 때였나? 여름휴가 일정 속에서 늘 총무를 맡아하던 이모에게 휴게소 핫도그를 먹고 싶다 쭈뼛거릴 때였나? 공책에 연필로 힘주어 적은 내 글을 읽는 독서지도 선생님으로서의 이모의 얼굴이었나? 잘 모르겠다. 분명 확실한 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삶 모든 순간 한구석에 이모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모가 병마와 싸우기 시작한 것도 벌써 2년 째다. 숱하게 여러 고비들을 지내오고, 가슴 철렁하게 큰 고비도 몇 차례 지나왔다. 암을 등에 업고 비틀비틀 걷는 다리에 힘은 없을지언정 주저앉지 않는 이모는 그 어떤 때보다 강해 보였다. 그런 이모를 똑 닮은 딸에게서 새벽에 받은 전화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전화 한 통이 되었다. 눈물로 질척해진 목소리의 동생은 언니, 하면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암에 걸려 죽는 것 같죠? 폐렴으로 죽는 거예요. "
섬뜩한 의사의 말과 함께 이모가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폐에 물이 너무 많이 차서 잠깐 움찔하면 정신을 잃을 정도의 숨가쁨이었다. 의사 파업으로 인해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와, 이모의 폐 속 물이 쉬 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이유로 이모는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러 순간들에도 중환자실의 문턱은 밟지도 않았던 이모였는데, 어쩐지 이게 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 와중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 나는 그래도 엄마가 아니라는 어색한 거리감인 걸까, 종종 섬뜩하게 상상했던 이모의 마지막이 결국 이렇게 도래하는 것인가 하는 덤덤함인 걸까 하며 여러 번 뒤척였다.
다행히도 이모는 생각보다 금세 좋아지고 있었다. 의사는 수치가 좋아도 환자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걱정이 큰데, 수치가 눈에 띄게 좋지 않아도 환자의 컨디션이 좋으니 다행이라는 긍정적인 소식을 듣기도 했다. 소식만 전해 들으며 맘을 졸이다가 며칠 뒤에 나에게도 면회 순서가 돌아왔다. 중환자실에는 누구나 쉽게 들어가서 환자 얼굴을 볼 수 없다. 일주일에 두 번, 20분 간 만 면회가 가능하다. 한 번의 면회에는 최대 두 명만 들어갈 수 있는데, 그것도 동시에 가 아니라 10분으로 쪼개어 한 명씩 들어가야 한다. 아무래도 중환자니까.
하얀 일회용 가운을 걸치고 장갑과 마스크도 꼈다. 중환자실 앞에서는 호탕한 아저씨들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는 곳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안 울 줄 알았다. 나는 인생 처음 들어가 보는 중환자실 앞에서 쭈뼛거리며 이모를 찾았다. 의식 없이 누워있는 많은 사람들과 알 수 없는 커다란 기계들, 엄숙하기까지 한 무거운 분위기 속에 이모는 병원 침대에 앉아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폐에 가득 찬 물 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워 얇은 산소호흡기 줄 대신 파랗고 굵은 산소호흡기를 코에 단 이모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물풍선 터지듯 뻥, 눈물이 터져버렸다. 말도 잇지 못하고 울고 있는 나의 손을 이모는 꼭 잡으며 와줘서 고맙다, 라는 말을 숨차게 천천히 전했다.
그런 이모의 얼굴을 보고 난 뒤에 나는 터져버린 눈물을 수습하느라 애썼다. 면회가 끝나고 나와 화장실에서 나 정말 안 울 줄 알았는데… 하며 휴지를 한 움큼 뜯어 끅끅대는 숨을 달래야 했다. 그렇게 눈물이 한참을 훑고 지나간 마음에 남는 건 걱정뿐이었다. 이모의 몸도 몸이지만 마음의 건강도 크게 걱정되었다.
의식이 없는 채로 중환자실에 가는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도 마음도 당장 뛰어다닐 만큼 건강한데 숨은 잘 쉬어지지 않는 이모에게 중환자실에서 하루종일 앉아있기란 고역이었다. 낮인지 밤인지 모르게 환한 조명과 내내 돌아가는 기계들, 잠을 자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쉽게 흐르지 않는 시간과 핸드폰을 포함한 어떤 전자기기도 가지고 있을 수 없는 곳. 시간이 몇 배나 느리게 흐르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내내 생사를 오가며 결국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하루종일 보고 있자니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종이책은 안되나?”
정말 순수한 물음이었다. 전자기기가 안된다면, 종이책은? 엄마와 이모, 나, 이모의 딸까지 우리는 독서라는 같은 애정 어린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서로에게 책을 추천하고 책 한 권을 두고 이런저런 감상평을 이야기하는 것도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밥 먹다가 문득 든 생각에 동생은 바로 중환자실 담당자에게 전화해 허락을 받고 우리 집에 있는 책을 바로 다음 면회에 이모에게 전달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좋은 책으로 시간 보내기를 성공한 이모는 다시금 씩씩하게 중환자실에서 나와 퇴원까지 했다. 중환자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이모가 너무 신기해 간호사들이 다정하게 말도 걸어왔단다. 그 뒤로도 몇 권의 책을 더 읽기는 했지만 내가 추천했던 책들이 가장 좋았다는 이모의 말에 이모 제 취향은 고급지다니까요 하는 농담으로 받아칠 수 있을 만큼의 시간도 지났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이모와는 콩국수를 먹으며 어느새 더워진 날씨와 또 책들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이모가 나의 취향과 아이디어를 칭찬하는 말보다 짱짱한 목소리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같은 취미로 위로되는 순간들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이모가 나에게도 책을 빌려주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 부러 시간을 내 책을 읽으며 자꾸만 이모와의 추억을, 앞으로 함께 할 시간들을 상상했다. 취미의 가치란 얼마나 귀할까.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문득문득 책을 읽을 때 이모의 병원 침대가 생각나곤 한다. 현실의 괴로움과 권태, 어쩌면 아픔까지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들.
이모는 지금 코로나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망가진 면역체계는 이모를 병원침대에서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 나의 글을 애정하는 독자 중 한 명으로서 이모에게 이 글이 꼭 닿기를 바라며, 응원도 함께 보내본다. 부디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또 콩국수를 한사바리 들이키며 함께 이야기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