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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Nov 21. 2018

고양이의 하루치 목숨은 얼마인가요?

반려동물의 입양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솜솜이가 토를 했다.


  우리집에 온 지 19일째 되는 날 일어난 일이었다.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아기고양이가 아픈 것 같아 보일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호다닥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 뿐이었다. 병원에 가면서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하자 고양이의 구토에는 정말 급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솜솜이는 사료를 몇 알씩 두어번 토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숨 돌렸다. 의사 선생님은 솜솜이가 식욕이 있다는 점 (솜솜이는 그날 토하고도 손바닥 위에 사료를 올려주면 다시 챱챱 먹었다.)을 보아 크게 위험한 건 아닐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식욕을 돋구는 주사를 맞고 잔뜩 심통이 난 솜솜이에게 종알종알 말을 걸며 집으로 돌아왔다. 솜솜이는 병원에 갈 때면 으레 그랬듯이 먀아악, 먀아악, 울었고 나는 "그러길래 누가 아프래? 너 이동장도 엄청 무거워! 내가 고생하는데 왜 니가 화를 내니, 이 바보 고양이야!" 하며 걸었다.


  솜솜이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 유독 나른하게 늘어져 잠을 잤다. 처음으로 주사를 맞아봤으니 피곤하겠지. 잘 자라고 콧잔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어주었다. 다음날 나는 친구의 졸업식 때문에 아침 일찍 외출했고, 오후 3시쯤 집에 돌아왔다. 그때 본 솜솜이의 몰골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제 이후 더 이상 토하지는 않았으나 그건 먹은 게 없기 때문이었다. 솜솜이는 하루가 다 되도록 사료를 입에 대지 않았고, 무엇보다 베란다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다. 당장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녀석을 들어올리자 몸이 젖어있었다. 지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소변이었다.


  솜솜이는 우리 집에 처음 온 날부터 화장실을 잘 가렸다. 아직 어려 변을 본 이후에 털에 묻은 뒤처리를 잘 못하긴 했어도, 화장실이 아닌 곳에  볼일을 본 적은 없었다. 잔뜩 불안한 마음으로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렸다. 솜솜이는 몸무게가 줄어 있었고, 힘이 없어 누가봐도 늘어져 있었지만, 결국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솜솜이는 앞다리에 링겔을 꽂은 채 이동장으로 숨어들었다.


  괜찮아지겠지, 괜찮을 거야. 그날 아르바이트를 하는 3시간 내내 솜솜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엄마의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 있었다.


  "큰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 오늘을 못 넘길 것 같아..."


  입이 바짝 마르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부모님이 몰고온 차에 타자마자 나는 이동장을 품에 안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식빵도 틀지 못하고 그저 축 늘어져 있는 솜솜이가 있었다. 아주 조용히 솜솜아, 하자 솜솜이는 그제야 가느다란 목소리로 먀아아악, 했다. 살아있었다.


  병원에 가는 내내 나는 연신 솜솜이의 이름을 부르며 오른손을 아가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오늘을 넘길 확률을 50% 이하로 보셨다는 엄마의 말이 아득했다. 아직 이렇게 따뜻한데, 아직 이렇게나 작은데, 아가, 솜솜아. 목이 메이고 눈물이 고여서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24시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당장이라도 솜솜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널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스무날, 스무날을 함께 있었다. 이십년을 넘게 산 나의 삶에 고작 스무날을 알고 지냈는데 이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진료를 받는 동안 의사선생님의 말은 하나하나 다 절망적이기만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다, 너무 작고 말라서 검사를 진행하기도 어렵다, 우선 하루 입원시키는 게 좋겠다, 혹시라도 상태에 변화가 있다면 새벽에라도 연락을 드리겠지만 전화가 간다면 사망했을 확률이 높다. 모든 말이 끝나고 남은 건 종이 한 장이었다. 입원 동의서, 혹시라도 아이의 생명이 경각에 달리는 때가 온다면 심폐소생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라는 그 종이를 두고 나는 사인을 했다. 솜솜이는 여전히 죽은 듯이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솜솜이의 병실은 아주 작은 칸 하나였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 이 앞에 서서 솜솜이를 보고 있고 싶었다. 아가의 눈 속 동공이 가느다랗게 변하며 초점이 흐려졌다. 솜솜아, 솜솜아. 이름을 부르자 조금은 둥글어진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움직이는 건 눈 뿐이었다.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누가 봐도 죽기 일보 직전의 작은 고양이. 엄마는 그런 사진을 왜 찍냐고 했지만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솜솜이가 없을지도 몰랐다. 이게 이 아이의 마지막 사진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이 사진을 오늘 이전에 아무에게도 보여준 일이 없다. 그랬었다.


  솜솜이의 하루치 목숨, 그것도 확신할 수 없는, 목숨의 가능성 값은 대략 30만원 정도였다. 검진 비용과 입원 비용, 링겔 등을 합쳐 나온 금액이었다. 엄마가 카드를 긁었다. 나는 차마 내가 내겠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고양이를 키울 거라고, 금전적이든 물리적이든 모든 케어를 내가 하겠다던 그 말은 얼마나 가벼웠는지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돈이 없으면 동물을 키우면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 돈은 한 두 푼의 가벼운 돈이 아니었다.


  입도 발도 떨어지지 않는 내 옆에서 엄마는 조심스럽게 의사 분께 솜솜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병원에서는 데려가서 개인적으로 장례를 치뤄주거나, 혹은 병원 측에서 단체 화장을 한다고 말했다. 단체 화장이라고는 하지만 의료 폐기물로 치부되어 소각된다고 덧붙였다. 의료 폐기물. 그 말이 가슴에 깊게 박혔다. 폐기물, 소각, 태워져서, 쓰레기 봉투에 담겨서, 그렇게. 그렇게 갈 수도 있는 거구나.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내 눈치를 살피는 엄마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인양 굴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날 밤은 아마 솜솜이한테도, 그리고 내게도 무척이나 험난했다. 이대로 잠들었다가 다음날 일어났을 때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을까봐 무서웠다. 부재중 (1), 이라는 글자를 읽는 순간 나를 용서할 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잠은 오지 않았고 영상을 보다가 강아지가 짖길래 급하게 영상의 소리를 줄였다. 혹시라도 네가 놀라지는 않았을까 살피려다가 깨달았다. 네가 없다. 다리에 뭔가 스친 것 같아 번쩍 고개를 들었다. 방 안에는 나 뿐이었다. 분명 그랬으나 너의 물건이 하나 가득이었다. 너의 화장실, 집, 이동장, 장난감, 사료, 밥그릇, 물그릇…. 눈길이 닿는 곳마다 솜솜이의 흔적 투성이었다. 오늘 새벽에 전화가 온다면, 그러면 나는 이 물건들을 다 어떻게 하면 좋으니. 그 생각에 한참을 울었다. 한참을 울고, 울다가, 생각했다.


  이동장 무겁다고 화내서 미안해. 미안해, 솜솜아.

  그렇게 펑펑 울었다.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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