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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의 일이다. 같은 직군의 사람들 모임이었는데, 거기서 한 선배와 친해졌다.
나: 선배, 나 일에 흥미가 없어. 인생의 1/3을 일하며 지내는데 그 시간이 재미가 없다면 어떡해야 해? 내 친구는 자기 일이 너무 좋대. 재밌대. 근데 난 아냐. 잘 모르겠어.
선배: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봐.
대화는 대략 이랬다. 선배는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군대 다녀와 사회생활한지는 6년 차, 자기 사업 두 개 그리고 무엇보다 멋있는 점은 자기 일을 즐겼다.
그날로부터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 흠 커피 마시는 거?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면 주말에 바리스타를 배워볼까? 음… 근데 금요일에 과음하면 주말엔 늦잠도 자고 해장 러닝도 해야 하는데. 아님 향수?? 그럼 조향을 배워 봐야 하나?? 아 맞아 폼 포드 자스민루즈 향 좋던데, 복직 기념으로 자신을 위한 셀프 선물해볼까…? 넘 비싸지 않나? 아 맞아, 저번에 받은 상품권이 있었지. 어디 보자 그게 무슨 백화점 상품권이었지? … (중략) 사고의 흐름은 이런 식으로 이어졌고, 당최 집중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거 찾기는 잠정 중단. 삼십 대 초반,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모르다니.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없는 게 아닐까. 나라는 인간은 정말!!
어제도 목 끝까지 이불을 덮고 내가 좋아하는 거 찾기 연구에 돌입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면 이미 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 그게…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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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기
독서 영화 음악 감상
인테리어
운동
침대에서 폭소가 터졌다. 아니 맨날 하면서 이걸 이제 생각해냈다고? 그리고 곧이어 엄청난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물론 이게 일, 즉 돈이 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애초부터 돈벌이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게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벌이가 될 만큼의 능력이라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리고 앞서서 한 좋아하는 거 찾는 고민도 결국엔 러닝으로 끝났지 않던가.
제대로 된 글은 작년 12월을 끝으로 한 반년 간 안 썼다. 안 썼다기보단 못 썼다. 변명이지만 시험 준비하고, 취직하고, 이사하고, 이직하고 또 이직하고… 그러느라. 8개월 동안 제법 험난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글을 쓰려고 한 게 메모장에 남아 있기는 하다. 이걸 손볼까 하다 이전 직장에서 마음고생한 것도 같이 떠올라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신문사의 문학상을 받은 친구에게 그런 적이 있다. 글 쓰는 거 힘들지 않냐고. 그 친구는 우울증을 앓았었는데, 글을 안 쓰면 죽을 거 같다더라. 그래도 살려고, 다만 살려고 쓴다 그랬다. 내 경우는 음… 일종의 살풀이다. 나를 위한 굿판. 내 영혼이 춤추고 뛰놀게 하고파 글을 쓴다. 내 한을 풀어주고, 대화로 충족되지 못 한 아쉬움도 상처도 글로 써 내려간다. 친구와 나 모두 살(生, 煞) 때문에 글 쓴다.
실은 올해 2분기까지 무지 힘들었다. 이주 전엔가? 사주를 보러 갔더니 점쟁이 말이 올 해는 이별 사주란다. 직장에서 불화가 생기고, 친구, 가족이랑 멀어지고, 남자 친구랑 헤어지고…. 내년이 되면 남자 친구도 생기고, 사업도(?) 할 거니까 4개월을 마저 더 버텨보라고. 그리고 러닝이나 하라길래, 이미 하고 있다고 하니 잘 했단다. 잘 했다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것도 점쟁이한테.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남은 4개월을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하며 보낼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려한다. 그 첫번째가 글 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