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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도니 Sep 05. 2022

도망친다고 생각했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서

태풍 예보다. ‘힌남노’가 북상 중이라고 한다. 출근할 때만 해도 가랑비가 내렸는데, 저녁 즈음되자 빗발이 점차 굵어졌다. 토요일 밤 러닝은 굿 초이스였다. 어제(일요일)에는 뭘 할까 하다 아이패드랑 책을 주섬주섬 챙겨 좋아하는 카페로 왔다. 아이스커피를 한 잔 주문해 콘센트가 있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실은 어제 볼 영화도 미리 정해 뒀다. 포레스트 검프. 이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러닝 타임(2시간 20분) 긴 영화를 잘 안 보다 보니 계속 미뤄두기만 했다. 그런데 왜인지 그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오프닝 장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일생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버스 정류장에서 포레스트가 정류장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걸로 시작한다. 배경은 60-70년대 미국, 포레스트는 앨라바마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포레스트에게는 약간의 자폐가 있는데,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는 걸 보아 요즘 말하는 경계성 지능으로 보인다. 그는 유년기에 구루병으로 진단받아 다리에 보조 장치를 다는데 이 때문인지 포레스트가 첫 등교하던 날 스쿨버스에서 아이들은 경계를 하며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제니 빼고는. 유일하게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준 사람이자 그의 첫 친구 그리고 포레스트의 영원한 사랑이 될 그녀. 학교에서 아이들은 그의 보조 장치와 ‘낮은 지능’을 가지고 괴롭힌다. 그럴 때면 제니는 외쳤다. “달려 포레스트, 달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의 괴롭힘으로부터 도망치던 포레스트, 보조장치를 다리에 부착한 채 어색하게 달리다 아이들의 돌팔매질이 가까워진다. 포레스트는 점차 더 빠르게 달리고 그 속력을 못 이긴 보조장치가 다리에서 떨어져 나온다. 포레스트는 보조 장치 없이도 달릴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날쌔게.

출처 : 영화 <포레스트 검프>

포레스트는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도망쳤고, 아니 달렸고 그렇게 달리다 미식축구 감독에 눈에 띄어 미식축구로 대학교에 입학한다. 졸업 후엔 베트남전에 참전에 무공훈장을 받고, 전역 중엔 탁구 국가 대표가 된다. 전역 후엔 새우잡이로 크게 성공해 사업가로, 사업에서 은퇴하고는 러닝으로 미국을 횡단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영화상 40대에 은퇴한 걸로 보이는데, 이게 요샛말로 파이어족이 아닌가? ) 영화 속 그의 마지막 커리어는 정원사로 제니와 재회해 결혼한다.


포레스트는 누군가 자신에게 바보라고 하면 “엄마가 그러는데 바보란 그냥 지능이 좀 낮은 것뿐이에요.”라 답한다. (물론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로 시작하는 말을 반박하면 영락없이 탈룰라가 되니까, 말에 토 달지 못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 포레스트의 엄마에게 아들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았다. 그래서 포레스트가 다리 보조장치를 하던 날에는 이런 말을 한다. “ 신이 사람들을 똑같이 만드셨다면 모두에게 보조 장치를 달게 하셨을 거다.”

좌:<포레스트 검프> 속 포레스트 검프, 우:<말아톤> 속 윤초원

비슷하게 지적 장애가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말아톤, 2005>에서 초원이(주인공, 조승우 역)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에겐 장애가 있어요.” 초원이는 혼자서 일상생활이 힘들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초원이의 엄마는 자녀가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 때를 염두해 초원이에게 ‘아이에게 장애가 있음’을 스스로 말하게 했다. 사람들이 초원이를 좀 배려해주고 그 상황을 부디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거다. 반면 포레스트는 혼자서 생활하는데 무리가 없기에, 포레스트의 엄마는 아들에게 너는 남과 다르지 않은 사람 그러니까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라 가르친다. 포레스트의 지능을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게 함으로써 되려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데도 바보라 말하는 당신을 문제 삼는 셈.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는 것도, 그걸 극복시키는 것도 부모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그러나 포레스트와 초원이가 반복적으로 되네이던 말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재밌는 점은 포레스트와 초원, 한 명은 숲이고 다른 한 명은 들판이다. 그리고 둘 다 러닝을 한다. )


나는 포레스트의 삶을 수용하는 자세가 인상 깊었다. 문제 상황을 지나치게 해석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주어진 일에 순수하게 집중하는 모습. (그는  미식축구를 할 때면 앞뒤 안 보고 그냥 뛰기만 했고, 복무 중 총기를 조립해야 하는 상황이면 총기 조립에만 몰입해 부대에서 최단 시간 기록을 냈다!) 물론 이런 성향이 그의 자페성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진실된 모습은 순수했고 그 순수함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달리고 싶어서 그냥 달리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그랬다. 달리고 싶었다. 두어 달 전에 개봉한 <탑 건 : 매버릭 (Top Gun : Maverick, 2022)>을 볼 때였다. 영화 보는 도중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길로 나이키에서 러닝화를 한 켤레 사다가 그날 밤부터 달렸다. (포레스트는 나이키 코르테즈를 신고 달린다. 나는 줌 베이퍼플라이! )

좌 나이키 코르테즈, 우 크록스 너머로 보이는 줌 베이퍼플라이 넥스트

페이스가 얼마고 몇 키로 뛰고 이런 게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뛰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밤낮으로 달렸다. 달리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지금이야 러닝 하는 크루들이랑 뛰면서 서울 구경 재미가 솔솔하지만 처음엔 그냥 달리는 게 좋았다. 가끔은 달리고 있는 건지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우원재는 노래 울타리(2018)에서 ‘날 가두고 있는 건 나’라 했다. 나도 그런 것 같다. 타인의 직장과 연봉을 끊임없이 비교하지만 아닌 척하고 그런 동시에 사람들과 진실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그런 이율배반적인 모습. 동쪽으로 가다 막힌 울타리 때문에 반대편으로 가다 또 울타리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 안에서 맴돌았다. 꽤 피곤하게 살았구나 싶다.

<울타리>가 수록된 EP, 앨범명 Af(2018).

그러다 울타리 안 어딘가에서 (이 안에도 나름 언덕과 시원한 나무 그늘 같은 게 있다. 그러니 울타리 안에서도 생존했지. 그러니 못 벗어났지…) 울타리 너머를 보는데 그냥 담백하게 사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아마 원래부터도 주위에 있었을 거고, 그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살았을 거다. 그게 눈에 띈 게 최근일 뿐.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달려서, 계속 달려서 이 울타리를 넘으려 한다. 울타리를 넘어 서면 나도 그런 담백한 사람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일단 계속 달려보겠다. 이제 생각 따윈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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