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점심, 고요가 들리는 시간이다. 벽 너머로 버스와 오토바이 소리가 문득 들리고, 조제실 안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기계들의 백색 소음이 들린다.
약국은 아침부터 몰려드는 환자로 분주하다. 꽃밭에선 꿀벌이 붕붕 거리는 소리가 들리겠지만, 분주한 약국에서 나는 소리란…. 약사님들의 복약지도, 환자들의 질문, 자동화 조제기에서 약이 떨어지는 소리, 전화벨 그리고 중간중간 주문한 약의 장끼에 도장 찍는 소리 등등 실로 엄청나게 시끄럽다. 그렇게 일하다 퇴근한 집에서 어항의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잔다. 그리고 반복!
차우람, <원탁>,(2022)지난주 일요일에 서울 국립 현대미술관을 방문했다. 실은 저녁에 경복궁 야간 러닝을 할 참이었는데, 간 김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전 날 밤에 한 결정이었다. 현재 <이건희컬렉션 : 이중섭> 전도 하고 있는데, 이건 4월 중순까지니 우선은 기획전을 감상하기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최우람 작가의 <원탁>(2022)과 천장의 <검은 새>(2002)가 가장 먼저 보이고, 그 작품을 지나 왼편 전시실로 입장하면 엄청난 크기의 얼굴이 감상객을 압도한다.
임옥상, <흙의 소리> (2022)임옥상 작가의 <흙의 소리>(2022). 거대한 얼굴 형상이 왼쪽 귀를 땅에 대고 있다. 전시실에서는 시종 이름 모를 짐승의 헐떡임 같은 게 들리는데, 이 소리는 작품 안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이 작품은 감상객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여기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땅의 소리, 그러니까 얼굴이 듣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차우람 작가의 <원탁>의 오른편 전시실은 차우람 작가의 전시실이다. 작품 <하나>(2022)를 지나서 더 넓은 전시공간으로 들어가면 <작은 방주>(2022)가 눈에 띈다. 이 작품은 키네틱 작품으로 정해진 운영 시간이 되면 작동한다. 갑판이 움직이고, 등대의 불이 회전하고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차우람, <작은 방주> (2022)현대차가 후원하는 작품 전이라 그런 걸까 <작은 방주>에서는 전기차 소리 같은 게 났다. 전기차는 배기음이 없다 보니, 보행자를 위한 음향 작업을 한다고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기차의 소리는 종전의 내연기관에서 가솔린이 연소하면서 나던 소리와 달리, 완벽히 인위적인 사운드다. 반면 <흙의 소리>에서 표현하려는 소리는 날 것이다. 짐승의 헐떡임과 땅의 웅웅 거리는 소리 같은 것들. <작은 방주>에서는 작품이 직접 움직이며 역동성이 표현되나, <흙의 소리>은 흙을 소재로 한 작품의 생명력과 청각적 효과로 활력이 느껴졌다.
경복궁 둘레 세 바퀴!그렇게 작품을 감상하고, 경복궁 러닝을 했다. 경복궁 둘레는 약 2.5km. 원래는 친구들과 두 바퀴를 뛰려고 했는데, 왠지 컨디션이 좋아서 뛰다 보니 한 바퀴 더 뛸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그러지 말아야 했다. 두 바퀴 째 돌 때만 해도 친구랑 농담하면서 웃고 뛰었는데, 마지막 업힐에서는 심박수가 190 bpm을 찍으며 말 그대로 죽을 뻔했다! 심장소리가 귀에 들리는 거 같았다. 야 이거야말로 생명력, 그 자체의 소리가 아닐까. 비록 내 심장박동 소리는 예술이 아니지만.
월요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시 익숙한 소리가 있는 공간으로. 그곳은 전기차 소리도 들짐승의 소리도 내 심장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도 분명 어떤 역동성이 있다. 내 심장은 고요히 뛰면서 내 몫의 일을 꿋꿋하게 해낼 것이다.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
-주소 :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전시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
22.08.12 ~ 23.04.23
<현대차 시리즈 2022 : 최우람 - 작은 방주>
2022.09.09 ~ 23.02.26
<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
22.10.21 ~ 23.03.12
<올해의 작가상 10년의 기록>
22.10.28 ~ 23.03.26
<프로젝트 해시 태그 2022>
22.11.06 ~ 23.04.09
<페터 바이벨 :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22.02.03 ~ 23.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