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영화처럼
문명의 사람들이라면 으레 하는 것들이 있다. 만나서 반가워라든가 그래 다음에 봐하는 그런 인사말 같은 거. 그러나 당최 한국의 계절은 그런 걸 잘 모른다. 지구라는 게 있은 이래로 태양을 돌면서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하는 게 뭐 어제오늘일인가. 아무튼 지난 몇 개월 전보다 조금 멀어졌다. 갑자기 말이다. 아니 그보다는 계속 멀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뒤늦게 알아차린 게 맞겠지. 그 말은 어제까지 에어컨을 켜던 나는 오늘 긴팔 긴바지 파자마를 꺼냈고, 어제는 흰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출근하다가 오늘은 그 위에 긴팔 스웻셔츠를 껴입었다는 뜻이다. 공기가 차가워지고 해가 짧아졌다. 가을이 왔고 올 해가 얼마 안 남았다. 시간이 착실히 가고 있다. 10월은 휴일이 많았다. 나는 책을 읽고 하늘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아름다운 날들이다. 이 글은 아름다움에 대한 헌사다.
되도록이면 하늘을 최대한 보려고 한다. 집이 김포공항 근처라 비행기가 아파트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데 이게 꽤 재미있다. 예를 들면 베란다에서 하늘을 볼 때 이륙하는 비행기는 벌써 아주 높이 있고 착륙하는 비행기는 항공사 도장이 보일 정도로 고도가 낮다. (이륙할 때는 빠르게 고도를 높이고 착륙할 때는 고도를 서서히 낮추나 싶다. ) 또 오후 6시 전후면 김포공항으로 퇴근하는 비행기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말 그대로 줄지어! 베란다로 보면 공중의 불빛들이 일렬로 간격을 두고 다가온다. 그리고 베란다에선 인천공항발 이착륙 비행기도 보인다. 아무리 봐도 재미있는 광경이다. 물론 그 비행기가 있는 곳이 하늘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는 말해야 한다. 그것들이 있는 곳이 비가 내리고 구름이 끼고 노을이 지는 그런 곳이니까.
무엇보다 노을 지는 게 좋다. 노을은 언제나 다른 빛깔이고 그 시간은 짧다. 노을을 기다리면서 베란다에서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놓칠뻔한 적도 있다. 유튜브를 보는 게 현대인의 지혜일 테지만 아무렴 어떤가. 유튜브는 내일도 똑같은데 오늘의 하늘은 내일과 다른 걸. 실은 이렇게 현학적일 필요도 없다. 면으로 둘러싸여 고개를 쳐들면 천장이 보이는 공간에서 일하는 데 어떻게 하늘이 안 궁금하겠나.
그러나 하늘은 대도시인만이 즐길 거리는 아니다. 교외로 갈수록 시골일수록 아니면 비문명 지역일수록 좋다. 비행기는 없겠지만 저녁에 공항으로 들어오는 여객기의 불빛 대신 별자리가 보일 테니. 아무튼 하늘로 따지자면 그쪽이 더 낫다. (비행기 소리도 안 들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하늘을 가르는 서울의 산타클로스들이다.
내가 자는 동안 문 앞에 놓여 있는 물건들. 마켓컬리와 쿠팡의 새벽배송, 어니스트플라워와 꾸까의 아침 꽃배송, 알라딘의 양탄자 배송. 나의 편리를 돕는 그 분주한 산타클로스들. 혹자는 우리의 관계는 재화와 서비스이고 이게 그렇게 감상적일 것까지 있냐고 그럼 너는 매번 감동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나는 거의 매번 감동한다! 그 산타클로스들 덕에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 있는, 피고 지는, 곧 죽겠지만 죽음은 당연한 것이므로 현재 살아있는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 산타들덕에 침실에서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읽다 잠든다. 나는 산타들이 아니면 퇴근하고 연어에 차즈기 소스를 만드는 조합을 떠올리지 못했다. 산타는 내게 작은 물건과 큰 생활을 선물했다. 이럴진대 내가 아침에 현관문을 열면 감동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죄스러운 마음도 있다. 한 번은 몇 가지 물건을 사는 걸 깜빡해 두 번에 나눠서 주문을 한 적이 있었다. 얼음과 탄산수를 다른 물건들과 같이 산적도 있었다. 무겁지 않은 걸 최대한 한 번에 사기. 문 앞에 배송된 물건들을 들어보며 다짐한다. 이러다 허리 다치겠는 걸. 약국에 파스와 근육통약을 사러 오시는 산타들이 떠올랐다.
https://youtu.be/DZGrH1Hz7J4?feature=shared
중학교 어느 여름 방학 때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면서 카블로 카잘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한 생각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선풍기로 머리를 말리며 윙윙거리를 소리 너머로 첼로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태어나길 잘했다. 아마 이랬던 것 같다. 다분히 감상적이지만 나는 당시 아토피가 심해서 학교를 중퇴하니 휴학을 해야하나 고민했던 시기였다.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어른인 지금 칭찬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상황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과 감사함을 느끼는 자세였다. 존심양성(存心養性)이라고 했다. 하늘이 주신 성품을 잘 지켜내는 것. 어린 나는 그때의 마음을 살피며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