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을 끝까지 듣기는 지루한데 또 그 노래들을 들으며 살아가는 하루는 지난한데 그런 날들이 살뜰히 모였다. 커피를 마시며 프랑스 팝을 듣는데 옆 가게 사장님과 여자의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삶이 그렇다. 하늘은 말갛고 한쪽에서는 싸우고 배경음악으로는 프랑스 음악이 흐르는 것. 배가 조금은 부글거린다. 샐러드가 매웠는데 그것 때문일까. 심심한 하루다. 내 위장만 바쁜 그런 오후. 전에 친구 집들이를 갔을 때 친구에게 태동이 느껴지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그렇다고 음식을 먹은 뒤의 위장이 움직이듯이 그렇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 내 샐러드의 태동을 느끼며 친구가 생각났다. 물론 아직도 내 위장 속 샐러드는 움직인다. 오후의 해가 흰색 전봇대에 새로로 길게 걸려있다. 오늘은 아이들이 안 오네.
나는 작은 약국을 경영한다. 반복적인 일과들을 하고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받고 반복적으로 아이들이 약을 처방받아 온다. 그러나 아이들의 론도는 즐겁다. 아이들은 내 가운에 묻은 커피자국을 물어보기도 하고, 크림빵을 주는 아이도 있고 또 목 아프지 말라고 정수기에서 직접 물을 떠주는 아이도 있다. 작은 약국의 좋은 점은 아이들이 몇 명만 있어도 작은 사람들의 활력으로 가득 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미국영화처럼 코에 분이 묻게 일하더라도 재미있다.
싱글로 살며 이래저래 살고 있다. 주위에는 결혼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더니 아이들도 생기고. 교복 입을 때 만났던 친구가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는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멋진 일이다. 특히 그 사람이 친구이고 아이를 곧 낳고 아기방을 꾸미는 걸 보는 건. 그리고 태어날 아이들을 (예를 들면 뜬봉이와 아보) 생각해 본다. 엄마를 닮아서 권투를 좋아한다거나 묵은지참치 김밥을 잘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엄마를 생각하는 건 가슴 벅차다. 아이를 낳기로 한 결정한 어머니. 당신의 자녀로서 온전히 그들의 인생을 지켜보기를 결정한 어머니. 나는 내 한 몸 건사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 터프한 세상에서 하나의 인생을 세상에 선물하고 그들과 함께 할 당신을 존중한다. 애석한 게 있다면 다만 그렇게 있다면 세상이 좀 험난하다는 거다. 그래 그럼 나는 어쩌면 좋을까.
곧 태어날 사람을 위한, 앞으로 살아갈 사람을 위해 이미 태어난 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 질문이 오랫동안 마음을 괴롭혔다. 일하고 장보고 책 읽는 삶.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인간이고자 함은 가능할 것도 같다. 어떤 행위로의 직렬성은 떨어지지만 그 또한 내 삶의 은유로 행위로 드러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상냥하고, 인내심 있는 사람 그래서 내 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아이들의 어머니를 존경하는 사람. 그 아이들의 어머니랑 피자를 먹으며 일상 이야기를 즐겁게 듣는 사람. 그런 세상에 큰 보탬은 안 되겠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약을 잘 먹을 수도 있고 그럼 아픈 아이들의 어머니가 스트레스 덜 받는.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는 나랑 즐겁게 웃다가 돌아가고. 그래 이 글은 내가 어떤 인간이고자 함이며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의지이다. 뜬봉이와 아보를 위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날 인간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