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마케팅팀 일 아닌가요?(1/2)

1. 지속가능성이 브랜드 전략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

by 진담대표컨설턴트

"ESG 담당자 채용합니다. 우대사항: 마케팅 경험..."


이런 채용공고를 볼 때마다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ESG를 여전히 '홍보할 거리'로만 보는 기업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브랜딩 회의 테이블에서 ESG가 빠지고, 경영 전략 회의에서도 '나중에' 처리할 항목으로 밀려나는 광경을 보면, 이 기업들이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2024년 국내에서만 그린워싱 적발 건수가 2,528건에 달했는데, 이는 2020년(110건)과 비교하면 무려 23배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국내뿐만이 아닙니다. EU는 2024년 1월 그린워싱 방지 지침을 법제화했고, 2025년부터는 EU로 수출하는 기업의 협력사까지 ESG 수준을 평가받게 되면서 규제의 칼날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변화는 규제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태도입니다. IBM 연구 결과를 보면 소비자의 70%가 지속가능한 제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2025년 한경 ESG 브랜드 조사에서도 소비자들은 '기후변화 대응', '친환경 제품 개발', '소비자 보호 노력'을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꼽았습니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이미 투표를 시작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봐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ESG를 하고 있나요?"가 아니라,

"ESG가 우리 브랜드의 DNA인가요?"라고.




왜 ESG는 더 이상 '부서 업무'가 아닌가


소비자는 이미 투표를 시작했다

맥도날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한때 정크푸드의 상징이었던 이 브랜드가 어떻게 신뢰를 되찾았을까요? 흥미롭게도 영국에서 진행된 패스트푸드 브랜드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여전히 '음식의 맛'(37%)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신뢰'(23%)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Change A Little, Change A Lot"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작지만 구체적인 변화들을 실천했습니다. 빨대 없는 음료 컵 뚜껑 도입부터 포장재 재활용, 지역사회와의 상생까지 하나하나는 작아 보이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행동들이었죠. 이런 일관된 노력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특히 ESG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소비자(Responsibles)' 그룹이 다시 맥도날드를 선택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들은 단순히 햄버거 한 개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브랜드에 투표하듯 지갑을 열었습니다.


규제는 선택이 아닌 생존 이슈다

소비자의 선택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2025년 글로벌 ESG 규제 지형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EU는 2024년 1월 그린워싱 방지 지침을 법제화하면서 근거 없는 '친환경', '에코', '탄소중립' 표기를 전면 금지했고, 미국에서는 SEC가 상장기업의 기후 관련 공개를 표준화하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한발 더 나아가 그린워싱 방지 법률을 시행하기 시작했죠. 영국은 2025년까지 모든 기업에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계획을 밝혔고, 우리나라도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2030년까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공시를 의무화할 예정입니다.


이런 규제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실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월마트는 합성 섬유로 만든 제품을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제품'이라고 광고했다가 그린워싱 사상 최고 벌금인 300만 달러(약 41억 원)를 물어야 했습니다. 이제 ESG는 '하면 좋은 것'에서 '안 하면 망하는 것'으로 그 위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투자자들의 지갑이 말한다

금융시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DWS(도이치뱅크 계열 운용사)는 전체 운용자산의 50%가 ESG 관련 자산이라고 당당하게 발표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니 기준에 부적합한 펀드를 ESG 상품으로 둔갑시킨 것이었습니다. 그 대가는 가혹했죠. 2023년 합의금으로 1,900만 달러(약 260억 원)를 토해내야 했으니까요. 비슷한 시기 호주의 Vanguard도 "화석연료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면서 뒤에서는 석유·가스 탐사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붓다가 2024년 1,290만 달러(AUS)의 벌금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뚜렷합니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ESG 워싱을 용납하지 않으며,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눈을 가졌고, 진짜에만 돈을 투자한다는 것이죠.




진정성의 힘 - 성공 사례들


LG생활건강: 소비자가 직접 뽑은 1위

2025년 한경 ESG 브랜드 조사에서 소비재 부문 1위를 차지한 LG생활건강의 전략은 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먼저 지속가능 포장재와 친환경 원료를 실제 제품 라인업 전반에 적용했습니다. 동시에 소비자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생활 밀착형 건강식품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일상의 경험으로 만들어냈죠.


여기서 중요한 건 투명성이었습니다. LG생활건강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솔직하게 공개했고, 그 결과 '기후변화 대응', '친환경 제품 개발', '소비자 보호 노력' 모든 항목에서 독보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ESG가 마케팅 캠페인이 아니라 브랜드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았을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아모레퍼시픽: 리필스테이션의 혁신

2020년 10월,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매우 빠른 선구자적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리필스테이션'이었죠. 샴푸와 바디워시 15개 제품을 소비자가 직접 용기에 담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플라스틱이 아닌 코코넛 껍질로 만든 친환경 용기까지 제공했습니다. 이건 그저 플라스틱을 줄이는 환경 캠페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쇼핑 경험, 친환경 가치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수준 높은 서비스가 결합된 브랜드 경험의 완전한 재설계였으니까요.


같은 접근을 유니레버도 시도했습니다. '러브뷰티앤플래닛'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하면서 2025년까지 플라스틱 사용량 50% 감소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고, 실제로 10만 톤의 플라스틱을 줄이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건 명확합니다. ESG를 진정성 있게 실천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브랜드 차별화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SK그룹: 사회적 가치를 숫자로 증명하다

SK그룹의 접근은 또 다릅니다. 이들은 "착한 일 했어요"라고 말하는 대신,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숫자로 공개합니다. SK텔레콤의 AI 기반 발달장애인 돌봄 서비스나 다회용기 사용 캠페인,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및 친환경 소재 사업 집중 같은 활동들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낸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정량화해서 보여주는 거죠. 숫자로 말하고 행동으로 증명하니까, 신뢰가 생기는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가짜의 대가 - 그린워싱의 잔혹한 현실


무신사, ZARA, 탑텐: 2024년 공정위 적발

성공 사례만큼이나 실패 사례에서 배울 점도 많습니다. 2024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자라(ZARA), 무신사, 이랜드월드(스파오), 신성통상(탑텐) 등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브랜드들을 '에코·지속가능' 표기 근거 부족으로 경고했습니다. 특히 패션업계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유엔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럽 패션 브랜드가 내세우는 지속가능성 주장 중 무려 60%가 입증되지 않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한 번 잃은 신뢰는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소비자들은 한 번 속았다고 느끼면 그 브랜드를 다시 신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의 교훈

그린워싱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보여주는 사례로 폭스바겐만 한 게 없을 겁니다. '친환경 디젤'을 외치며 유럽과 미국 시장을 공략하던 이 거대 기업은 실제로는 배출가스 저감장치 성능을 저하시키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차량에 몰래 설치했습니다. 질소산화물을 허용치의 40배까지 배출하면서도 말이죠.

2015년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폭스바겐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글로벌 신뢰의 추락, 천문학적인 벌금, 그리고 'Dieselgate'라는 오명이 브랜드에 영구적으로 각인되었으니까요. 최근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도 같은 혐의로 과징금을 받으면서, 그린워싱의 유혹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다시 고객의 마음을 돌리기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원인이 있었겠지만 이 회사는 2025년 3분기 기준 영업이익률 -1.6%를 기록하며, 2020년 2분기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국내 기업 적발 급증의 의미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조성문 실장의 분석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기업들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 자료 없이 판매 중인 제품이나 경영활동이 실제보다 환경에 더 좋거나 덜 해로운 것처럼 주장하거나 주요 정보를 생략하고 있다."는 지적은,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ESG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더 심각한 건, 2024년 적발된 2,528건 중 99.6%가 행정지도 처분에 그쳤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EU나 미국처럼 본격적인 법적 제재가 시작되면, 과연 국내 기업들은 제대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린워싱의 7가지 죄악

환경 전문가들이 정리한 그린워싱의 대표적 패턴을 살펴보면, 여러분의 브랜드가 이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숨겨진 대가(Hidden Trade-off)'로, 제품의 일부만 친환경이고 전체는 아닌 경우입니다.

둘째는 '증거 없음(No Proof)'으로, "친환경"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 자료가 전혀 없는 경우죠.

셋째는 '모호함(Vagueness)'인데, "자연스러운", "에코" 같은 의미가 불명확한 용어를 남발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거짓 라벨(Fake Labels)'로 마치 공인된 것처럼 보이는 가짜 인증 마크를 사용하는 경우이고,

다섯째는 '무관련성(Irrelevance)'으로 사실이지만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두 가지 악 중 덜한 것(Lesser of Two Evils)'으로 본질적으로 해로운 제품을 "친환경"으로 포장하는 경우이고, 마지막 일곱째는 '거짓말(Fibbing)'로 완전한 허위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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