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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l 03. 2020

아빠, 엄마랑 뽀뽀하지 마!

아내와 나, 딸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무거운 분위기가 우리 사이에 흘렀다. 딸은 내내 나를 노려보다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내가 엄마한테 뽀뽀하지 말라고 했지. 부탁했잖아. 왜 그래?"


딸의 뺨은 벌겋게 달아올라 금세라도 터질 듯 보였다. 사실 얼마 전 딸이 나를 방으로 불렀었다. 엄마는 아빠가 뽀뽀하는 것 싫어하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때만 해도 귀여운 투정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잠시 식탁에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뭐라도 해야 했기에,


"엄마가 싫다고 하면 아빠도 안 할게."


말은 했지만, 왜 이리 조마조마하지. 딸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랑 뽀뽀하는 것 싫지?"

"아니야. 아빠랑 엄마는 부부니깐 뽀뽀를 할 수도 있지. 엄마가 정 싫으면 아빠한테 말할게. 그건 네가 하라마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 말을 들은 딸은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원망, 미움, 분노의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헉. 어쩌지.


"아빠가 엄마에게 뽀뽀하는 것이 그렇게 싫어?"

"응."

"엄마가 좋아서?"

"응."


이건 무슨 상황인지. 아들이 엄마를 사랑해서 아빠를 경쟁상대로 여기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딸이 아빠에게 애정을 품고 엄마를 경쟁자로 의식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들어보았다. 그런데 딸이 엄마를 좋아해서 아빠를 경쟁상대로 삼는 것은 듣보도 못한 일이었다. 오. 주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옵니까.


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기미가 안보였다. 그래 내가 졌다 졌어.


"알았어. 아빠가 앞으로 조심할게. 그만 울고 늦었다 어서 씻어."


그제야 딸의 얼굴에서 살짝 미소가 비쳤다. 아내가 속옷을 챙기러 간 사이 선심 쓰듯 말을 건넸다.


"그럼. 내가 없을 때 둘이 하는 것은 괜찮아."


딸이 씻으러 간 뒤 아내와 잠시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내에게 좋겠다고 했다. 아내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 억울하다. 딸이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각방 생활한 지 벌써 몇 년인데. 이제는 뽀뽀까지 눈치 보며 해야 한다니. 딸아 두고 보아라. 아빠가 다 기록해놓을 거야. 너 나중에 남자 친구 생겨서 엄마 본체만체하면 내가 혼꾸멍낼 거야.


이리 말은 해 놓고, 서글픈 건 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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