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앞에 반 나체로 섰다. 표현이 다소 격했는데 하의는 입고 상의만 벗었다. 일단 줄 수 있는 모든 힘을 온몸 곳곳에 실었다.
"아들 아빠 몸 좀 좋아지지 않았어?"
"오. 그러네. 근육이 좀 붙었는데."
"배 좀 봐봐. 복근이 좀 있지 않아?"
"아니. 살 만 보이는데."
"눈 좀 크게 뜨고 봐바."
"솔직히 아빠 몸에 복근 만들려면 현재 몸무게에서 한 10kg은 빼야 해. 내가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내 복근 좀 봐."
아들은 그 자리에서 상의를 훌러덩 했는데 맙소사 배에 선명하게 석 삼자가 있었다. 씩 하고 가소롭다는 듯 내려보는데 어찌나 얄밉던지. 매일 헬스장에 가서 몇 시간씩 투자하는 나와 달리 집에서 아령과 윗 몸 일으키기 기구만으로 저런 몸을 만들다니. 아무리 십 대의 팔팔한 몸이라고는 하지만 밤 10시에 저녁 먹고, 과자 군것질을 즐겨하는 녀석이 뱃살 없이 매끈한 복근을 만든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
20대 이후로 이렇게 열심히 운동한 적이 없었다. 헬스장에 갈 때마다 근육운동과 30분 이상 러닝머신을 뛰며 신체를 단련했다. 그렇게 반년 이상하니 비루한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일단 살이 빠지고, 몸에 조금씩이나마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조금 붙는 옷을 입으면 튀어나오는 부분에 은근 희열을 느꼈다.
주변에서의 살 빠졌다, 몸 좋아졌다는 피드백이 강화물로 작용했다. 특별히 지방 출장이 있거나, 헬스장이 쉬는 날 빼고는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오롯이 무거운 쇳덩이에 집중하며 무념무상에 빠져들었다. 마무리는 늘 복근운동이었다. 헬스장에 복근 전용 기구가 있었서, 양쪽에 5kg씩 총 10kg을 매달고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매번 배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겪었지만 언젠가 복근이 생기기라는 희망을 품고 기구 위에 올랐다.
샤워장에 씻고 나와 밝은 조명 아래 거울 앞에 서면 희미하게나마 배에 선이 보인 듯했다. 확인 차 배를 쓸어내리면 분명 울퉁거림이 느껴졌다. 다만 그 위에 출렁거리는 뱃살이두텁게 덮고 있었다. 밥양도 평소보다 줄이고, 운동도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 그놈의 복근은 왜 생기지 않는 걸까. 종종 즐기는 음주 탓일까, 나잇살 때문일까.
예전에 배우 권상우와 정준하가 나온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전형적인 중년 몸매의 정준하와 달리 권상우의 몸, 특히 조각 같은 복근은 남자가 보아도 섹시했다. 저런 몸매를 만들려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필시 고강도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야 가능한 일이리라.
출처 MBC
내 나이 마흔일곱. 왜 이리도 복근에 집착하는 걸까. 복근 없이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건 평생 가져본 적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소망하거나 해외에서 살고 싶다고 꿈꾸듯 중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 복근은 삶의 목표요 언젠간 이루고픈 소망이었다.
얼마 전 SNS상에서 복근운동 기구를 발견했다. 한정기간 할인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 손이 뇌의 지배를 벗어나 클릭을 하고 말았다. 추석기간 배송지연으로 애간장이 탔다가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커다란 상자 박스 안에 담긴 기구를 보자마자 조립하곤 곧바로 실시를 해보았다. 5분여 만에 배가 뻐근했다. 옆에서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내가 보였다.
"여보 자기도 해봐. 이거 효과가 장난 아니네."
"조심해. 잘 못 하다간 턱 박겠다. 그냥 생긴 대로 살지. 안 되는 복근은 왜 만드려는지 쯧쯧쯧."
이 사람 보소. 사람 막 들끓게 만드네. 두고 보라고. 세줄은 못되더라도 한 줄이라도 선명하게 긋고 말 테니. 일단 아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살부터 빼는 거야. 즐겨하던 술도 끊어야 할까. 아냐 그럼 삶의 낙이 사라지니 횟수를 줄여보자. 이거 생각만으로 심장이 몹시 쿵쾅대기 시작하는 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