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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Apr 02. 2020

인사발령에 휘둘리기 싫다

조직은 정말 무서운 곳이다


화강암같은 내 멘탈도

역대급 인사발령에 무너졌다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회생활 10년차, 그동안 김순옥 작가님(대표작: 아내의 유혹)이 내 삶에 개입을 하는지 의심할 정도로 막장스런 고초를 겪었다. 세상풍파를 겪어내며 나의 내면은 지구에서 가장 단단하여 컬링스톤 재료로 쓰인다는 스코틀랜드의 화강암이 되었다. 매서운 빙판을 달리고 쓸리며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난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10년차에 맞이한 인사발령은 빙판이 아니었다. 가고시마를 패닉에 빠트렸던 활화산이었다. 나는 뜨거운 용암을 품어내며 포효하는 화구에 던져진 스톤이었다. 인사발령문이 뜨기 10분 전, 잠잠하던 모니터 창에 메신저 알림이 점멸했다. "시드니, 어떡하냐. 너네 이번에...." 다음에 등장한 단어를 믿을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있는데 앞이 깜깜했다. 차원의 이동이었다. 가슴을 옥죄었다. 화강암은 곧 물처럼 녹아내릴 것처럼 위태해졌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회사에서 하는 노력은 정말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는 것. 힘을 빼려고 노력했음에도 과하게 몰입했었다. 올해는 복직 후 3년동안 진행했던 장기 프로젝트가 실적으로 변환되는 시점이었다. 전임 상사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인사로 지금껏 진행한 프로젝트가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신입사원 연수시절 '본인이 CEO다, 회사의 주인이다 생각하고 일하세요'라는 말을 들었었다. 당시에는 그 말이 듣기 좋았다. 회사의 주인처럼 일하면 성과가 나오고 성취감도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 10년동안 경험한 바에 의하면 회사나 조직 내에서는 내가 절대로 '주인'이 될수 없다. 외부환경 변화에 따라 한순간에 모든 것이 변하는게 조직이다.  


내가 주인이 되는 방법은 조직을 떠나는 것 이다. 조직을 떠나 나만의 일을 하는 게 주인이 되는 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직을 떠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측에는 죄송하지만 노동자는 '주인의식'을 버려야한다. 맡은 일 하나하나 영혼을 실어 일하면 Co-worker 들에게 원성을 듣거나 성과가 나더라도 100% 만족스런 보상은 주어지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에 열심히 일하되, 이것이 휴지조각이 될수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한다.  


'난 그저 회사원이야'라는 생각을 무의식 속에 깔고 있었음에도 이번 인사는 충격이 크다. 어차피 회사에서는 나에게 충분한 연봉을 지급했고, 내가 만든 모든 프로젝트에 들어간 자원은 회사 돈이다. 이게 다 엎어지고 사라지더라도 나에게 물질적 피해는 전혀 없다. 덤덤하게 다시 조직의 흐름에 몸을 실으면 되는거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스쳐 지나간다. 꼭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잘 될 것 같다고, 패러다임이 바뀔 것 같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준 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이런날은 정말 감정이 아예 없는 사람이었으면 되었으면. 아, 이거 하지말래? 하면서 쿨하게 Delete 버튼을 눌러 버릴 수 있는 그런 인간. 그런 사람이 조직형 인간인 것 같다.


그런데 난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닌게 문제다. 인사발령문을 보고 가슴이 잘 진정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은 집에 와서 내 새끼를 강하게 끌어 안는 것. 열정적인 밤육아를 마치고 기절하듯 골아떨어지고 싶었다. 감정이 있는 인간인지라 그러지 못했다. 감성유투버 [해그린달]의 영상을 보며 심신을 다스리고 싶어 TV를 켰다. [해그린달]님이 마침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평생 작은 물고기를 잡아 온
어부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이 고기잡는 일을 물려받길 원하나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일이든 그 일의 주인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린 그녀는 마냥 이렇게 인생을 보내면 행복에서 멀어질 것 같아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시간에 집안을 홈카페로 만들고 SNS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커피메뉴를 만들어 먹었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한 시간, 그 시간을 통해 고단한 시간을 이겨 낼수 있었다. SNS에 그 '주인이 된 시간'을 기록하면서 결국 100만 유투버가 된 그녀. 자신이 주인이 된 시간을 통해 상상이상의 좋은 결과를 맞이했다.   


회사원인 이상 회사에서 주인이 되긴 어렵다. (물론 소수는 주인이 되기도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돌아가는 곳에 마음을 두는 것보단, 회사 밖에서 내가 정말 주인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현실적이다. 세입자라면, 내가 아무리 집을 고치고 아끼고 살아도 일정 시점이 지나면 집을 떠나야한다. 회사는 '집주인'이고 나는 '세입자' 라는 걸 기억하지 않으면 언젠가 명도 당할지도 모른다.


(1년 전 일기장에 있던 글을 이제야 올립니다)





ps. [노오력하면 호구됩니다] 브런치북이 브런치메인에 소개가 되었나보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처음 쓴 거라 다시 보니 많이 미숙하다. 그래도 완독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그분들의 인생여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 브런치 홈에 소개된 브런치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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