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002 [내가 잘하는 것]
병원의 밤은 그리 고요하지만은 않다. 드물게 조용한 하루를 보내며 글을 쓰지만 입 밖으로 금기어를 내뱉는 순간 고요함은 산산조각이 난다.
지난 3월부터 옮긴 병동은 응급병동이다. 의-정 사태의 후폭풍으로 내가 일하던 병동이 폐쇄되면서 병동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겨우 만났다. 병동은 원래의 파트가 고스란히 이어지지 못했다. 그와중에 중환자실을 더 만든다는 이유로 우리 병동은 또 폐쇄되며 그 인원이 재 오픈하는 응급병동으로 발령 받게 되었다. (구구절절 나열하는데 다들 이해하려나)
응급병동은 응급실이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되면서 생긴,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 환자들의 응급실 재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만든 병동이다. 각 과의 메인 병동보다 우선해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3교대 근무 중 어느 근무이든지 입원환자를 피해 갈 수 없다. 병동의 루틴업무 중간에 입원환자가 밀려오고 이들은 급성기 환자라 시행해야 할 처방들이 많으며 처방대로 일을 하다 보면 재시간에 퇴근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응급실에 온 환자에게 입원장이 나면 응급원무과에서 병실 배정을 위해 병동으로 전화한다. 병동의 전화기에 발신자 번호 [6655] 응급원무과 번호가 뜨지 않기를 매 순간 바라고 바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 어김없이 오늘도 울린다. 과거에는 6655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렸는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어느덧 체념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적응의 동물로서 변화에 적절히 순응하며, 혹은 소심하게 반항하며 결국엔 적응해 나간다.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니 최근 1년 반 사이에 가장 잘하게 된 것이 빨리 적응하는 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며 가끔은 꿈틀거리는 지렁이라도 되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6655. 너 오늘 한 번 봤으니 집에 갈 때까지 더 보지 말자.
매일 쓰겠다는 다짐이 하루 만에 무색해졌다. 밤 근무를 하는 날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후 다시 잠을 청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집에 와 저녁식사를 할 때 즈음에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또 하나의 핑계를 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