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약속했던 거 기억나니?
꼬맹이 너한테 가을 사진 많이 보여준다고 했었잖아?
너한테 편지글을 쓸 때마다 보여주곤 했었지만 오늘도 보여주려고 가을 사진 잔뜩 찍어왔어.
낙성대 공원은 꼬맹이 너도 종종 갔던 곳인데 주변이 가을빛으로 진하게 물들어가고 있었어.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르익어 가는 가을이 신기하더라.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곳에 와서 너에게 보여주곤 했었는데 기억나니?
알록달록한 가을옷을 입은 나무들이 예쁘지?
주변 광경을 둘러보려고 잠깐 앉았던 벤치에 단풍잎 하나가 떨어져 있더라.
그런데 하나인 게 외로워 보여서 주변서 단풍잎 하나를 더 주워서 이렇게 짝을 맞춰줬지.
아직도 씩씩하게 피어있던 코스모스들.
샛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는 은행나무잎들.
떨어진 은행잎들이 수북이 쌓인 인도를 너랑 산책했던 기억들도 떠올라서 찍어봤어.
너랑 산책할 때 떨어진 은행열매를 안 밟게 하려고 요리조리 피해서 다녔던 기억도 떠올려보고...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잎 그리고 빨간 단풍잎들의 색의 조화가 예쁘지?
요새 도로 주변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는 톱풀.
이 톱풀은 꼬맹이 네가 생전에 보지 못했던 꽃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에 담아왔는데 어때?
네가 보기에도 예쁘니?
종종 산책을 하다 보면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령견들이 꽤 많이 보여.
어떤 노령견은 느리지만 천천히 걷는데 그렇게 천천히 걷는 노령견의 발걸음에 맞춰서 느릿느릿 걷는 보호자들을 보기도 하고 일명 개모차라는 탈것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는 노령견들도 봐.
그런 광경들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 언젠가 아니 조만간에 찾아올 이별의 순간이 떠오르면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와서 마음이 힘들 때가 있어.
아마 그들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쓰여서 그런가 봐.
한편으로는 그들도 그 아픔을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
너를 보낸 후 두 번째 맞이하는 이 가을이 아무렇지도 않을 때가 있지만
때로는 너와 같이 이 멋진 가을을 함께 즐길 수가 없어서 아쉽기도 해.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나만 널 그리워하는 건 서운할 것 같아서 말이야...)
친구들과 재밌게 잘 뛰어놀고 있는데 내가 괜스레 너를 부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알면 알아서 눈치 챙기라고? 알았어~
알아서 눈치 챙기는 센스 있는 보호자가 되도록 노력해 볼게.
저렇게 곤히 잠든 너를 다시 보고 싶은데...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자는 너를 조용히 지켜보고 싶은데...
가끔은 자면서 짖기도 했던 너를 보고 싶은데...
부디 너의 별에서 신나고 재밌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
나 또한 현생을 잘 살아갈 테니.
가끔 놀다가 심심하면 좀 놀러 오고.
가을을 보여주고 싶어 가을을 데리고 온 지구인간이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