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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비 Jul 22. 2024

우리의 몸들은 고유하고 탁월하다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김원영, 문학동네)를 읽고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SNS를 통해서였다. 글이 인상적이라 팔로잉을 했을 테고, 그가 춤을 춘다는 것도 언뜻 읽은 기억이 난다. 와, 대단하군. <세상에 이런 일이>의 1200화쯤을 보는 심경으로 잠시 감탄을 했던 것 같다. “장애를 딛고”라든가 도전, 극복과 같은 상투적인 단어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만만한 작업은 아닐 테지. 몸의 불편함을 무릅쓸 만큼 춤을 좋아하거나 예술적 감각이 탁월했는지도……. 그러고는 깡그리 잊고 있다, 신문에서 그의 신간 소식을 읽었다. 아아, 그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구나. 그저 취미거나 가벼운 반짝 쇼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제대로’였구나.


이 책은 무엇보다 춤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가 무용수가 아니었다면, ‘몸을 위한 변론’이라는 부제가 조그맣게 박혀 있지 않았다면 책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작가는 모든 면에서 나와 다르지만-성별, 고향, 세대, 직업, 장애/비장애 등- 나처럼 “사람들의 시선 앞에 서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지만 노래나 연기를 좋아했고, 청소년기에 (작은 동네 교회) 무대에 선 경험을 잊지 못한다. 한때는 아마추어 재즈피아니스트로 작은 재즈바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춤도 좋아하지만 어쩐지 무대에서 ‘진지한’ 춤을 추는 건 부끄럽게 느껴졌다(작고 동글동글한 외모이다 보니 더더욱).


책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고(물론 개인의 경험담-유머도 촘촘히 섞여 있다) 책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데도, 최근에 읽은 어떤 책보다도 몰입하여-거의 압도당하며- 읽었다. 단순한 호기로 얕고 잔잔한 개울을 헤엄치다 더 깊은 데로, 어느새 넓은 강으로, 낯선 바다로 들어가, 만나본 적 없는 파도에 휩쓸리며 얼얼해진 기분. 마침내 새로운 대지에 닿은 기분.


4년 동안 한 챕터씩 (쓰고 공연을 하고 또 쓰는 식으로) 완성했다는 이 책은, 그만큼 밀도가 있고 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태어나, “(가슴아) 불거지지 마라”, “(사람들이 보는 데서) 기어다니지 마라”는 명령이 각인된 채 자란 어린 시절, 몇몇 친구와 몸으로 놀며 우정을 쌓았던 경험, 프릭쇼와 병신춤의 역사와 시선의 문제, ‘접근성’(accessibility 또는 배리어프리 barrier free: “어떤 공간이나 매체, 창작물에 노인과 장애인 등의 약자가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음을 뜻하는 용어”)의 중대한 의의, ‘모방’과 ‘되기’의 차이, 발레부터 모던댄스, ‘접촉 즉흥’까지 춤의 역사와 위대한 장애/비장애 무용수들, 장애인의 진입을 가능케 한 춤의 공동체라는 이념, 잘 추는 춤과 좋은 춤, 삶의 경이로움까지.


춤과 몸의 이야기, 춤의 역사, 여러 혁신가들의 이야기가 꽤 많은 지면에 걸쳐 펼쳐지다(이렇게까지 상세히?), 종국에 평등한 춤, 춤의 공동체라는 이념으로 이어지자 뭔가 전율 같은 게 느껴졌다. 와, 그가 춤을 춘다는 것은 (단지 취미나 특기를 넘어) 이토록 깊고 넓은 것이구나. 그는 누구보다 선명한 삶을 살고 있구나. 그 삶은 나와 무관할 수 없구나. 그걸 말하고 싶어 4년 동안 제 몸으로 이룬 ‘경이로운’ 경험과 사유를 공들여 기록했구나. 춤이라는 개인적인 경험, 춤의 역사에 대한 탐구가 ‘차별과 평등의 문제’와 어떻게 맞닿는지 완전히 납득되었다.  


기억하고 싶은 대목이 정말 많지만 이번에 마음에 남았던 부분들을 몇 개만 추려 본다.


먼저, ‘힘’과 ‘능력’을 구별하는 관점.      

"힘은 보편적이고, 개개인보다 더 크다. 힘은 능력의 외부에 머물며 능력의 전제가 되거나, 능력에 관한 세상의 척도를 전복하거나 재구성한다. 누군가의 능력 앞에서 우리는 종종 좌절하지만, 누군가의 힘을 목격하면 더 큰 세상에 접속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치심’에 관한 관점.      

"다만 우리는 모욕당하면서도 수치심에 빠지지는 않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자신의 몸이 진짜 ‘괴물’이 아니며, 자신이 이 세상의 멸시와 배제를 예상하고도 세상 밖으로 나와 당당히 무대에 섰다고 믿었다면 그는 스스로 깊은 존중감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병신춤’을 어떻게 해석할까-‘모방’과 ‘되기’의 차이.      

"(모방과 달리) 그 몸(소아마비)이 되려는 사람은 그 몸짓의 주체로서 생각할 것이므로, 그렇게 걷는 바로 그 ‘개인’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비틀거림이란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그만의 방식으로 걷는 것임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세상의 질서를 뒤흔드는 장애인의 몸.      

"나는 장애인의 몸에 문명이니 문화니 합리성이니 하는 이름이 붙은 고상한 가치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그 한계를 전복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장애인의 몸에서 억압적인 규범과 질서에 맞서는 해방적 가능성을 본다. ……장애인의 몸이란 ‘다른 방식으로 질서 잡힌’ 것이다."      


접근성의 진정한 의의.      

"‘접근성’을 위한 실천은 모종의 규칙들로 정리할 수 없는,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처럼 ‘육성’되는 기술이다. ……‘접근성’을 의식하면 어디를 가든 나와 다른 몸의 존재 방식을 상상한다."     


"접근성은 우리가 어떤 압도적인 이념에 매혹될 때, 우리가 자칫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구성원이나 다양한 맥락에 대해 문을 닫고 자아도취적(집단도취적) ‘황홀경’에 빠져 어딘가로 떠밀려갈 때 우리를 붙잡는 닻이다."     


‘닻’이라는 비유가 오래 남는다. 나는 나와 동질적인 ‘우리’라는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안온한 세계가 흔들릴까 자주 불안했다. 내 좁은 세계 바깥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이해했으므로, 그동안 김원영의 춤, 백우람, 김지수의 연극을 알지 못했다. 이들의 공연 영상을 비롯해서 책에 나온 여러 무용수, 유명한 <봄의 제전> 공연 같은 것을 찾아보았다(굉장히 흥미로웠다). 이런 독서의 경험은 꽤 신선했다.


책을 읽은 나는 이전의 나와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장애인 무용수나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에 관심이 갈 것이고, 접근성을 위한 여러 장치가 눈에 들어올 터이며, 일상에서 만나는 장애인이나 노인, 어린이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필 수도 있다. 나와 너무나 다른 타인을 ‘타는’(접촉 즉흥의 움직임. “접촉 즉흥은 그야말로 타인의 몸을 ‘타는’ 춤이다. 타기란 어떤 외부의 존재 위에 체중을 싣고 그 존재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행위다.”) 상상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몸들을 구체적으로 만남으로써 내 몸을 온전히 긍정하고, 더 ‘선명한’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꿈꿀 것이다. 고유하고 탁월한 타인이라는 닻을 통해, 우리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각각의 차별적인 능력을 지닌 개인들이 서로의 동등한 힘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고유한 개인이면서도 더 큰 세계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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