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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조 Dec 26. 2024

샤넬 운동화를 인지하라

사람이 보험이다.23

샤넬 운동화를 인지하라



출근하기 위해 신발장을 열었다. 샤넬 운동화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꺼내서 발을 넣으려다 다시 신발장에 넣는다. 출처를 모르는 동전만한 노란 얼룩이 눈에 거슬려서다. 이렇게 신발장에서 꺼냈다, 넣었다를 반년 넘게 하고 있다. 이 귀한 샤넬 운동화를 언제나 신을 수 있으려나.


이 운동화가 나한테 온 건 3년 정도 되었다. 보통 비싼 명품 신발이나 가방을 ‘아가’라고 부르던데 나는 이 아가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 아가가 나에게로 왔다. 나의 단골 수선집 사장님이 어느 날 이 아이를 내놓으며 신어보라고 했다. 얼떨결에 신으니 내 신발처럼 꼭 맞았다. 이 사장님의 다른 단골이 이 신발을 선물받은 지 한 달 만에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며 처분을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신발은 가방과 다르게 사이즈라는 게 맞아야 하는데 내 발을 보자마자 임자 만난 것이라며 면세점에서 1000달러를 넘게 줬지만 임자를 만났으니 20만원 초반대 가격으로 정리하라고 할 것이니 득템을 하라고 했다. 고민할 여지가 없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가볍고 예쁘고, 있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샤넬 운동화를 열심히 신고 다녔다. 문제는 열심히 신고 다닌 신발이 세탁이 필요해졌을 때였다.


명품 운동화의 세탁비는 8만원이었다. 그 돈이면 아울렛에서 브랜드 운동화 하나를 더 살 수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귀한 아가의 몸에 때가 찌드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외출 시 이 신발을 택하는 일이 줄어들고 가볍고 착용감이 좋아 신고 걸을 때면 가벼웠던 발걸음이 조심! 조심! 하면서 신경 쓰이는 것들 천지였다. 그렇게 조심해도 땅바닥은 레드카펫이 아니기에 또 세탁해야 했고 세탁을 한 돈이 또 아까워서 몇 번 신었는데 다시 세탁을 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번에 세탁하면 세탁비가 구입한 가격을 초과하는데 이게 맞나 싶어 더러워진 상태로 신발장에 방치 중이고 노란 얼룩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어떤 문제이든 답보 상태에 있을 때면 질문을 바꿔봐야 한다. 내가 왜 이 신발을 샀지? 샤넬치고는 싸서. 운동화는 뭐지? 신발. 신발은 뭐지? 신고 다니는 것. 샤넬 운동화는 신발, 신발은 신고 다니는 것. 나는 왜 이 샤넬 운동화를 신고 다니지 않는 것이지? 비싼 세탁비 때문에. 신고 다닐 수 없는 신발은 왜 필요하지? 글쎄, 샤넬이니까? 샤넬 정도 신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안 신고 다니면 샤넬 신을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


이러한 질문들의 나열 끝에 검색창에 니트 운동화 세탁법을 검색해 보았다. 이 아가를 직접 세탁해 보기로 결정했다. 셀프 세탁해서 성공하면 앞으로 세탁비를 버는 셈이고 망가지면 신발장에 자리 하나를 확보하게 된다.


나는 샤넬 운동화를 신발장에 돌려놓은 후 이 신발이 내가 가입한 보험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손해사정사라서 일단 가입한 보험에 대한 불안감이 커서 해지하지도 못하고 좋은 상품이 나왔다고 할 때마다 추가 가입을 하느라고 월 고정지출이 너무 늘어났다. 나의 보험료 지출은 웬만한 일반 가정 전체와 맞먹고 있는데 만약, 해당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후회하게 될까봐 놓지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보험료를 납입하느라 바쁜 나의 통장 잔고가 다른 생활의 여지를 앗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생활에 쫓겨 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가입했던 그 보험들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나도 뒤돌아서면 다른 소리하는 일반 보험소비자들처럼 이것을 내가 왜 가입했지 하고 자문할 때가 많다. 하지만 막상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며 열심히 통장을 채우고 보험료가 어딘가로 날아가는 소식을 문자로 보며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샤넬이라는 손에 잡히지도 않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가치 때문에 샤넬을 신발장에 모셔 놓았지만, 나의 발에는 그냥 세탁에 용이한 운동화가 있다. 어차피 샤넬이 줄 수 있는 가치는 내 신발장에 있으나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으나 남의 집 신발장에 있으나 내가 신지 않으니 매한가지다.


보험료를 열심히 납입하고 있으나 내가 무엇을 위해 돈을 내고 있는지를 모르니 이 또한 허상이다. 사람이 무엇을 할 때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진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왜인지 알고 있는 사람과 그 순간이 많지 않다.


손해사정사인 내가 보험료 납입 이유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닌 이들은 어떠하겠는가. 비싼 비용을 지불해 가면서 유지하고 있는 보험, 혹은 그 외에 여러 고정지출들이 나에게 가치가 아니라 그저 습관이고 상념인 경우를 상식이라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늘 깨어 있으라! 잠들지 말아라!”


아침마다 일어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해나가는 우리 모두 진정 깨어서 나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걸음이 무엇을 향해가고 있는지 오늘을 열심히 사느라 다른 질문을 할 여유가 없는 당신들을 위해 질문을 해본다.


“지금 당신은 거기 그 자리에서 무엇을 왜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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