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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Nov 29. 2021

밥 할 줄 모르는 며느리

김지혜 작가는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서문에서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이를 지적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장애인과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연구하고 강의하는 자신이 무의식 중에 차별하는 단어를 사용했다는데 스스로도 놀라고 부끄러웠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누구나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이 많은 페미니즘 책과 다른 점은 ‘고발’이 아닌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성차별 외에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는데 불평등한 사례를 나열하고 부당함을 지적하는 걸 넘어 차별을 대하는 이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했다. 마치 남의 옷차림이 이상하다고 말하기 전에 거울에 비친 나부터 보게 하는 것처럼.           


글을 읽다 보면 김지혜 작가가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심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분노하는 것으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최근에 나도 아무 소득 없이 격분했던 일이 있었다. 등산 모임 멤버 세 명과 지리산 산행을 마치고 군산으로 돌아와 고기를 먹을 때 문제의 사건이 일어났다. 차돌박이를 세 번째 상추에 싸서 먹을 때 내가 삼촌이라 부르는 분이 며느리 이야기를 꺼냈다.           


“명절에 며느리가 밥을 하는디 밥물을 얼마나 잡아야 하냐고 물어봐서 와이프가 ‘아부지한테 물어봐라’ 그랬어. 왜냐하면 내가 밥을 제일 잘하거든.”     

그러자 대뜸 A가 말했다.     


“무슨 그런 집이 다 있데요? 며느리도 잘못됐고 시어머니도 잘못됐네요.”     

고기의 핏기가 가시면 바로 먹으려고 불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나는 조선시대에서 온 시간여행자나 할법한 말을 하는 A에게 시선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뭐가 잘못됐는데요?”

“밥을 못하는 며느리나 시아버지한테 물어보라고 하는 시어머니 둘 다 잘못이지.”

“그건 잘못된 게 아녀.”

삼촌이 중재에 나섰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이었다.  

“남자가 처갓집에 가서 밥물을 물어봤다면 칭찬받을 일이 여자가 하면 왜 욕먹을 일이죠?”     


삼촌의 며느리는 아들과 가구사업을 함께 하고 있는 데다 설사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시댁에 가서 밥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니라고, 모르는 걸 알려주는데 남녀를 구별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나는 2021년을 살고 있는 사람답게 말했다.      


A도 지지 않았다.

“여자가 일하면 집안일에 소홀해져서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고, 나중에는 집안일에 아예 손을 놓게 돼.”          

A가 결론을 내듯 한 말의 속뜻은 여자는 살림만 해야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 여자들(나 포함)이 못마땅하다는 거였다. 내가 딸, 아내, 며느리, 워킹맘으로 살아오는 동안 A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그의 신념은 나와 다른 경험에서 빗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A가 말한 정보로 스토리텔링을 해보자면, 그는 농사를 짓는 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전기통닭을 사 오면 닭다리를 당당히 차지하는 특혜를 누렸고 제사와 같은 전통문화를 선으로 받아들여왔다.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어 현 체제가 평안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평등으로서의 진보가 그냥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옳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          

태어나는 순번과 성별로 특혜를 누려왔던 A에게 성평등은 상실을 의미했다.     


“닭다리 하나를 뜯고 나면 먹을 게 별로 없었당게.”     

아버지가 닭다리를 손에 쥐여준,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 동생에게는 어떤 기억일까? 오빠가 먹는 모습을 옆에서 침을 삼키며 보는 심정은. 가끔은 남동생에게도 닭다리가 돌아가는 날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딸에게 그런 행운은 A의 집이나 우리 집이나 공평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받는 특혜를 인식하지 못했고 소외되는 가족도 보지 못했다. 여든이 넘은 어머니가 제사 준비를 더 이상 못하겠다고 선언하자 그는 어머니와 싸웠다고 했다. 제사가 중요하다면 자기가 음식을 만들거나 구입하는 대안을 찾아보는 게 순리지만, 그는 어머니의 고생을 옆에서 본 아들이면서도 어머니에게 계속 노동을 요구했다.          


과거 농사는 집단 가족사업으로 일가가 한 마을에 살면서 함께 농사를 지었고, 제사의 목적에는 수확물로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들과 나누기 위한 것도 있었다. 일과 삶의 방식이 다양해진 현재까지 제사를 고수하면 가족 중 누군가가 희생할 수밖에 없다. 농경문화에서 만들어진 관습을 단지 전통이라는 이유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가족 중 전통을 위한 노력을 가장 적게 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차별적 행동을 하고 무안한 일이 있었다. 신체 1급 장애를 가진 김원영 변호사 강연을 들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김원영 변호사가 강연 첫머리에 “운전을 하고 왔다”라고 했을 때 나는 “우와” 환호하며 박수를 쳤는데, 이에 김원영 변호사는 “운전을 하고 온 게 이상한가요?”라고 말했다.


내가 박수를 친 이유는 비장애인인 나는 운전을 할 수 있지만 장애인은 할 수 없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런 편견은 김원영 변호사의 책 <실격당한 자들의 변론>을 읽고 강연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민감하지만 당연한 반응 덕분에 나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나는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차별을 하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 김지혜 작가와 김원영 변호사가 말하고자 하는 건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특권,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게 아닐까.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는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하고만 교류하기보다 노인, 이주민, 성소주자, 홈리스를 만나서 차별하지 않는 감각을 기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는 소득 있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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