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베트남 욕이 충돌할 때 벌어지는 오해들
한국과 베트남의 욕은 구조부터 목적, 금기까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 ‘가족, 금기’를 건드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키고, 베트남은 ‘인격 평가’를 통해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관계를 끊지 않는 선을 지킨다. 그래서 두 나라 사람이 갈등 상황에서 부딪히면, 서로 “상대가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는 오해가 쉽게 생긴다. 이 오해는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각 나라의 감정 표현 방식과 사회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1. 한국인의 분노는 ‘정면돌파’, 베트남인은 ‘곡선형 표현’
한국 사람은 감정이 쌓이면 결국 한 번에 '확' 터뜨리는 경향이 있다. 참다가 참다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 그리고 그 폭발은 종종 가장 금기인 가족이나 성적 표현을 건드린다. 폭발한 뒤에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 다음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하고 말도 섞는다.
반면, 베트남 사람은 감정이 생기면, 돌려 말하거나, 농담처럼 공격하거나 인격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현한다. 직설적인 언어 공격은 관계를 파괴한다고 믿기 때문에 최대한 우회적으로 감정을 내보낸다. 이 과정이 한국인의 눈에는 “왜 말을 똑바로 안 하지?”라고 보이기도 한다.
2.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이 싸울 때는 왜 더 ‘맹렬’해 보일까?
베트남의 평소 말투와 욕 구조를 보면 굉장히 온화하고 선을 넘지 않는 문화처럼 보이는데, 길거리에서 싸우는 장면을 보면 한국 사람보다도 더 공격적이고 잔인해 보일 때가 있다. 이것은 착각이 아니다. 동시에 오해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싸움’은 욕과 완전히 다른 문화적 카테고리다.
평소 말할 때는 관계와 체면을 중시하지만,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관계는 이미 끊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즉, ‘선을 넘지 않는 문화’는 싸움이 일어나기 전까지 해당된다.
싸움이 터졌다는 건, 이미 인연(duyên)이 끊어졌고 체면이 무너졌고, 더 이상 관계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든 상황이다. 그래서 싸움 자체는 매우 직접적이고 거칠다. 이것은 분노 표현 방식이 과격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3. 그럼 싸울 때도 가족 욕은 하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그 와중에도 가족을 건드리는 욕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상대가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어머니, 가족, 조상을 언급하는 것은 절대적 금기다.
왜냐하면 베트남 사회에서는 가족을 건드리는 말은 단순한 욕이 아니라 업보(nghiệp)로 남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움 중에도 “Đồ mất dạy(가정교육 못 받은 놈)” “Đồ khốn nạn(비열한 놈)” 같은 인격 평가형 욕은 등장하지만, 한국식의 가족 모욕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베트남은 ‘싸움은 세게 해도 욕은 선을 지킨다.’
이 독특한 구조가 한국인의 눈에는 '이 사람들 평소엔 조용한데. 왜 싸울 때는 이렇게 날카롭지?' 라는 심리적 괴리로 보이게 만든다.
4. 한국 vs 베트남, 서로에 대한 오해의 순간들
가. 한국인이 느끼는 오해
'말을 돌려서 해서 더 답답하다.'
'진짜 화났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싸울 때는 왜 그렇게 맹렬해지지?'
나. 베트남인이 느끼는 오해
'왜 한국인은 화나면 가족을 모욕하지?'
'한 번 터지면 왜 이렇게 폭발적이지?'
'욕하는 순간 관계를 끊자는 말로 들린다.'
한국인의 욕은 ‘카운터 펀치’에 가깝고, 베트남인의 욕은 ‘경고 사인’, 베트남의 싸움은 ‘관계 종료 의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욕의 목적도, 금기도, 감정 표현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 금기를 건드리는 정면돌파형이고, 베트남은 관계를 지키는 곡선형이다. 그리고 싸움이 터지는 순간, 베트남은 오히려 한국보다 더 직접적이고 거칠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족을 건드리는 욕은 끝까지 넘지 않는 선으로 남아 있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두 나라 사람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훨씬 부드럽게 대화하고, 감정을 읽고,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을 대할 때, '그래도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들의 수준으로 내 표현방식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중에 내가 무섭다며 근무를 그만 하고 싶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 직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주방장도 내가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잘못한 일이 있거나, 일이 생겨 내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아마도 '저 사람, 나와의 관계를 끊자고 하는 것인가!' '좋게 얘기하면 될껄 왜 저렇게 화를 내지?'라고 의아해 했을 것이다.
반면 나도 베트남 사람들이 큰 소리내어 말다툼 하는 것을 많이 보지 못한 반면, 길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난 후, 조금 얘기하다가 갑자기 주먹질을 하고, 주위의 돌을 줍는 모습을 보면서 경악하기도 햇다. 즉 한국 사람들처럼 입으로, 욕으로 싸움을 하지 않고 자기와의 관계 유지 여부를 판단해 최대한 정중히 하거나, 관계가 끊어진다고 생각하여 돌변하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베트남 사람들이 마지막 뒷모습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이 문화의 영향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글에서는 욕이라는 언어 뒤에 숨어 있는 각 나라의 역사, 심리, 사회적 구조를 살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