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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K Aug 08. 2021

사진으로 배우는 상담기법(5) “직면”

- 마땅히 있어야 하는 데 없는 그것의 의미 -


직면이란 내담자의 삶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내담자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일치하지 않는 언행을 의도적으로 지적함으로써 알게 하는 상담기법이다.

※ 천성문 외(2016). 상담기법 연습. 서울: 학지사.



이 글은 구체적인 상담기법과 상담 방법에 대해 목말라하는 사랑하는 나의 수퍼바이지들과 그들이 만나는 소중한 내담자들을 위해 쓰는 글이며, 아래 내용은 내담자 보호를 위해 충분히 각색했음을 밝혀둔다.



 주부 대상으로 “행복을 선택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현실치료 이론 기반 영화치료 구조화 집단상담, 2004년 한국 청소년 상담복지개발원에서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됨)” 영화치료 집단상담을 진행할 때였다.


좋은 세계(quality world)를 탐색하기 위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 사진을 각자 준비해 와서 전시회처럼 감상하였다. 희망하는 분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1. 왜 그녀는 모두 봉사단체 야유회 사진만 선택했을까?


50대 주부였다. 3장의 사진에 어떤 사연이 있고 어떤 욕구들이 충족되었는지 그때를 회상하는 그녀는 세상 행복해 보였다. 밝은 미소에 보는 이들도 긍정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유쾌해졌다.

첫 번째 사진은 전업주부인 그녀가 처음으로 사회봉사단체에 가입해서 첫 야유회에 간 사진이었다. 두 번째 사진은 몇 년 후 새로운 봉사단체에서 바다로 야유회에 간 사진이었고, 세 번째 사진도 다른 봉사단체에서 유명 사찰로 간 행사 사진이었다.   


사진 1. 50대 주부의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먼저 3장의 사진의 공통점을 확인했다. 모두 야외에서 혼자 혹은 봉사단체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2장 이상의 사진에는 패턴이 있다. 심리상담에서 내담자의 공통 패턴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다음 이 사진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데 없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녀가 남편과 자녀가 있는 주부임을 감안할 때 가족들이 아무도 없다는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다. 반영 형태로 <직면>을 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의 사진이 모두 봉사단체에서 야유회 간 사진이네요. 가족은 아무도 없네요.”

그제야 깨달았는지 볼이 발그레 변했다. 사진을 한참 보던 그녀는 왜 이 사진들을 선택했는지 수긍이 되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가족이 없는 혼자 있는 순간이 행복한 이유에 대해서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늦둥이 막내로 인해 육아기간이 유예되고 있었고, 집 옆의  남편 사무실에서 종일 일을 돕고 있었기에 365일 24시간 연중무휴 주부의 삶을 살고 있었다.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안타까워한 지인이 봉사단체 가입을 추천하였다. 보수적인 남편이었지만 봉사단체라고 하니 아내의 사회활동을 허락하였다.


 첫 번째 사진은 처음으로 집에서 벗어나 온전한 하루의 휴가가 주어진 날이었다. 얼마나 기념비적인 날이었을까. 그곳이 어디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낯선 장소에서의 공기가 얼마나 달콤했을지 가히 짐작이 되었다. 왜 가족이 없는 자연인으로서의 사진만 선택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은 주부라는 명함을 가진 여자들의 고됨과 왜 그들이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 또한 그것들을 겪었기에 더 이상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심리적 외상들과 마주치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 포스터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 만 가지 문제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질문에 대해 해답을 찾아야 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질문은 쏟아지는 데 답을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행복할 수가 없다. 그녀도 마음속에 가득 쌓인 질문들에 해답을 찾는 시간을 가질 수 없어서 힘들고 불행했던 것이다.       


수년간 멀지 않은 거리에서 누구보다 꾸준히 열정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봐 왔기에 앞으로도 그녀의 시원한 호흡과 반짝거림이 아름답게 퍼져나가길 소망한다.  

        


2. 왜 신혼부부인 그녀의 사진에 남편이 없었을까?     


20대 주부였다. 그녀는 신혼부부였고 엄마가 될 준비를 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행복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남달랐다.


첫 번째 사진(제목: 엄마랑)은 결혼 전 엄마와 시내 데이트를 하면서 찍은 스티커 사진이었다. 두 번째 사진(제목: 가장 아름다운 날)은 결혼 전 남동생과 엄마와 함께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마지막 사진(제목: 멋진 인생)은 신혼여행지에서 벤치에 앉아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2. 20대 주부의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사진 3장의 공통점은 모두 가족사진이라는 점이다. 두 장은 결혼 전 사진이고 나머지 한 장은 신혼여행사진이다.

여기서 마땅히 있어야 하는 데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2장의 원가족 사진 속에는 그녀의 아버지가 빠져 있다. 투사 검사(동적 가족화: Kinetic Family Drawing)에서 누락된 인물은 그림을 그린 내담자와 갈등이 있는 인물로 해석한다. 사진도 이미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같은 원리를 대입할 수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데 없다는 것은 내담자와 갈등 관계인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직면>을 하면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알아차릴 수 있고,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에 질문 형태로 <직면>을 이어갔다.


“00 씨. 아버지가 살아계신다고 하셨는데, 지금 선택한 사진에는 아버지가 안 계시네요. 그 부분이 궁금해요. 혹시 얘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성실한 가장은 아니셨어요. 음주를 좋아하고 외박도 자주 하셨어요. 아버지가 안 들어오시는 날이면 엄마는 저를 꼭 끌어안고 말씀하셨어요. 남자 믿지 마라, 남자 믿으면 상처 받는다고.”


엄마가 하는 말의 뜻도 몰랐던 어린 나이부터 결혼 직전까지 평생 동안 그 말을 들었던 것이다. 엄마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입버릇처럼 되 뇌였던 말이 딸에게 종교 교리처럼 새겨졌던 것이다.  

       

왜 3장의 사진에 아버지가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남자를 믿지 마라, 남자에게 의존하지 말라고 평생 들어온 그녀가 신혼여행 사진인데도 남편이 없는 사진을 고른 이유도 짐작되었다.

혹시나 그녀가 사진을 안 가져온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신혼여행에서 독사진만 찍었을 수도 있기에 먼저 확인 질문을 했다.


“아버지가 사진에 없는 이유를 알겠어요. 그런데 마지막 사진은 신혼여행 사진이라고 하셨는데 남편이 없네요. 혹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없었나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 맞네. 남편이 없네요. 남편과 찍은 사진은 당연히 많았죠.”


사진치료에서는 누가 찍어준 사진을 가져왔는가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만약 남편이 찍어 준 사진을 가져왔다면 프레임 안에 남편이 없더라도 넓은 의미에서 남편과 함께 있는 사진인 것이다.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남편과 찍은 사진이 많은데, 가장 행복한 사진으로 이 사진을 고르신 거네요. 이 사진 혹시 남편이 찍어주셨나요?”

“네. 남편이 찍어준 사진이에요.”

“그러셨군요. 그래서인지 표정이 밝고 행복해 보여요.” 사진 속 유독 밝고 편안해 보이는 표정에 대해 반영을 했다.

“그냥 앨범을 보다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찾다 보니 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가져왔어요. 남자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평생 듣다 보니 남편과 함께 있는 사진이 좀 불편했나 봐요.”


그녀가 한 말과 사진 속 그녀의 표정과 자세는 많이 달랐다. 누가 봐도 남성으로 인식되는 곰 형상(도자기로 만들어진 성인 남자 체격의 테디베어, 넥타이와 남성 정장 복장)이었다.   


언어와 비언어가 불일치할 때는 <직면>을 통해 알아차림을 돕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감과 함께 불일치에 대해 직면을 했다.     


“남자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로 인해 남편이 없는 독사진을 골랐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어요. 제가 00 씨라도 평생 아빠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본 딸의 입장에서 엄마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불편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남자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한 엄마의 말을 따르려고 한 것이라고 하기엔 이 남자 테디베어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고 행복해하는 것처럼 보여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담자는 다시 멀리서 찬찬히 사진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알아차림을 돕기 위해 <해석>과 <직면>을 사용했다.     


“어쩌면 결혼한 것 자체가 엄마의 말을 어긴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을 수 있어요. 결혼은 했지만 최소한 남자에게 의존하지는 않겠다는 마음에서 남편이 없는 독사진을 고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남편이 찍어준 사진을 선택했고 남자로 보이는 곰 인형에게 푹 기대어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을 때 어쩌면 00 씨의 마음에는 좀 더 편안하게 남편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 평생 마음고생한 엄마에게 맏딸로서 충성해야 한다는 신념과 사랑하는 남편에게 온전히 몸과 마음을 의지하고 싶은 본능의 딜레마의 한 중간에 서서 헤매는 마음이 짐작되었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녀가 살아온 날만큼 새겨진 문신 같은 말들을 떼어내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예전에는 무엇 때문에 불편한 건지 무엇을 고민하는지 모르고 한 거였다면 이제는 그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 나름의 지혜로운 해답을 찾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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