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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K Oct 22. 2021

사진으로 배우는 상담기법(4) “빈 의자 기법"

- 내가 하고 싶었던 말하기 & 네가 하고 싶었던 말 듣기


빈 의자 기법은 자신 혹은 타인과의 관계를 지금-여기에서 다루기 위해 빈 의자를 사용하는 기법이다. 내담자는 의자에 앉아있다고 상상하는 인물과 자신이 일으키는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독백, 방백, 대화, 역할 바꾸기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빈 의자 기법을 통해 내담자는 타인이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고 역할 바꾸기를 통해 동시에 나와 타인이 되어 볼 수 있다.

※ 빈 의자 기법[empty chair] (상담학 사전, 2016.1.15., 김춘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이 글은 구체적인 상담기법과 상담 방법에 대해 목말라하는 사랑하는 나의 수퍼바이지들과 그들이 만나는 소중한 내담자들을 위해 쓰는 글이며, 아래 내용은 내담자 보호를 위해 충분히 각색했음을 밝혀둔다.



1. 사진을 활용한 독백 - 내면의 대화(Inner voice)

사례 1. “글쓰기 귀찮아.”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활용한 <내면 대화 기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빈 의자에 자기 내면의 여러 부분을 인격화하여 앉히는 것처럼 사진을 활용해 갈등의 요소를 마음속에서 밖으로 꺼낸다.  모노드라마를 하듯이 마음속 서로 다른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면의 자아 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고, 행동을 어떻게 할지 알 수 있다. 언어적 상담의 한계에서 벗어나 사고, 행동, 정서, 신체에 의식적인 확장을 도울 수 있다.

먼저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마음과 달리 글쓰기에 부담감을 가지는 나의 이야기부터 하려고 한다.                          

                          

사진 1. "글 쓰기 귀찮아." 내면 대화_ I CAN 사진 & ICAN'T 사진

* 내면의 대화 진행 방법

1) 진열된 사진들 중 내면의 대화 사진을 두 장 고른다. 한 장은 “I Can(시도해 봐).”이고 다른 한 장은 “I Can't(난 할 수 없어. 하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주는 사진을 선택한다.

2) 손바닥 위에 두 장의 사진을 올린 후 바라보면서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 상반된 두 메시지가 계속 대화를 나눈 후 한쪽으로 의견이 결정되면 사진을 내려놓는다.

3) 서로 오고 간 중요한 대화를 포스트잇에 정리한다.

4) 사진을 선택한 의미와 대화가 오고 가고 결론으로 도출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상담자(혹은 집단원)와 나눈다.



사진을 고른 후 두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눈 후 대화 내용을 적어보았다.      



# 내면의 대화 축어록

Can't 1: 갈 길이 너무 멀어. 아득해. 끝이 안 보여. 한 번에 가기 힘들어.

Can 1: 넌 너무 멀리 보고 있구나. 고개를 돌려 앞을 봐. 한 번에 한 칸씩만 걸어가자.

Can't 2: 귀찮아. 노트북 켜고 글쓰기가 귀찮아.

Can 2: 가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을 거야.

Can't 3: 몰라. 피곤해. 할 일도 산더미인데 글까지 쓰는 건 힘들다고.

Can 3: 번거롭긴 하지. 그러면 그냥 포스트잇 1장이라도 적어서 사진을 찍어. 그걸 문서로 옮기는 정도는 할 수 있지.

Can't 4: 난 피곤해. 쉬어야 해. 쉴 거야.

Can 4: 쉬고 있지만 널 봐. 넌 새야. 날개가 있어. 걷는 것보다 훨씬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Can't 5: 아! 정말. 맞네. 내게 날개가 있구나. 걸어간다고 생각하니 아득했는데 날개가 있어서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갈 수도 있겠는 걸.

Can 5: 그래. 내가 글을 쓰려고 한 목적을 생각해 봐. 그동안 오랫동안 익혀온 것들을 후배들에게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잖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잖아. 글로 정리하자.

마음속의 can't와 can의 목소리가 하나로 통합되었다.    


내면의 대화(Inner voice) 작업을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다.



# 내면의 대화로 인한 통찰(insight)


1. 난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라 순간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만 기록을 하지 않아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다 사라져 버린다. 어떤 아이디어는 정말 기똥차게 괜찮아서 쓰려고 해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반복되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글 쓰는 노트라서 고른 사진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카메라가 있었다. 글 쓰는 건 귀찮고 번거롭지만 사진은 찍을 수 있다. 고정된 기록방식에서 자유롭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기록할 수 있다.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기록하고 찍는 것을 생각해냈다.


2. 나는 시작하면 한 번에 다해야 하고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쉽사리 시작을 잘하지 못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간이동‘하듯이 즉각적인 결과가 나오고 성과를 얻길 욕심부린다. 한 걸음씩 천천히 마음을 비우고 경치도 봐가면서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을 것이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3. 많은 양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글을 쓰고 기록하는 자체를 막고 있었다. 그런데 해야 할 양을 작게 쪼개어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작은 양(포스트잇 1장)으로 확 줄이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4. I Can't 사진을 고를 때는 아득한 기찻길 때문에 골랐다. 새와 손바닥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새가 나는 동물이라는 것과 날개가 있다는 것에 시선이 갔다. 이미 많은 경험이 있기에 다른 사람보다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전해졌다. 천천히 들여다보니 새가 잠시 휴식하고 날아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5. 내가 왜 이 글을 쓰려고 했는지 본질을 기억해냈다. 스무 해 이상 상담을 공부하고 상담자로 일하면서 참 오랫동안 헤맸다. 이 분야가 시작도 끝도 없이 광범위하고 내용도 어려워서 정신 못 차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길을 판 덕에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도제교육을 하듯이 한 땀 한 땀 배워가야 하는 그 아득하고 먼 과정을 친절하고 쉽게 안내해 주고 싶었고 그래서 글을 썼다. 그런데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계속 쌓이면서 글쓰기를 자꾸 뒤로 미루는 나 자신이 싫어졌고 지쳐갔던 것이었다. 초심을 다시 회복하자는 마음속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I Can!"의 목소리로 통합되었다.


이 방법은 절차도 간단하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지만, 상당히 효과적이다. 일종의 사진 명상이라고나 할까. 가끔 마음이 소란해지면 나는 사진을 꺼낸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마음을 실컷 맞짱 뜨게 만들면 결국 한 마음이 이긴다. 이윽고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가 된다.  


2. 사진을 활용한 독백 - 내면의 대화(Inner voice)

사례 2. “불상이 되고 싶어요.”     


20대 청년의 내면의 대화 작업을 한 내용이다.


# 내면의 대화 축어록

Can't 1: 눈치 보여서 해도 될까 싶어.

Can 1: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Can't 2: 뭔가를 근거를 들라면서 타당하지 않다면서... 난 정말 아닌가 봐.

Can 2: 답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Can't 3: 일일이 대처하는 것도 귀찮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Can 3: 내가 하고 싶은 일 해도 큰 일 나지 않아. 아무 문제없어.                            




내면의 대화 내용을 들은 후, I CAN'T 사진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요청했다.


내 1: "난 원래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명확한 내 생각과 기준이 있었고 잘해나갔어요. 그런데 000에 오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정신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내고 가버리는 거예요.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것도 아니에요. I CAN'T 사진을 보면 흙먼지를 정신없이 일으키면서 저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면서 저리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 정신없음에서 탈출해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사진 2. 청년의 I CAN'T 사진

사진 2에서 무리들(갈색 말)이 달리는 방향과는 다르게 자신(백마)은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음을 반영하였다.  


상 1: 본인은 그럼 백마인가요? (네) 어쩌면 이 사진도 I CAN 사진 같아 보여요. 내가 갈 방향을 찾아 달리고 있어서.

내 2: 그래도 옆에서 정신없이 흙먼지를 일으키는 갈색 말들은 I CAN‘T 사진이지요.     

- 중략 -   I CAN 사진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내 3: 나의 I CAN 사진은 이 불상이에요. 어떠한 환경에도 꿈쩍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진 3. 청년의 I CAN 사진

상담을 처음 시작할 때 청년이 고른 사진은 영국 근위병이었다. 이 사진과 불상이 닮아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그 유사성을 반영하였다.  

   

상 2: 그 천상천하 유아독존 불상과 지난번 고른 근위병 사진이 닮았네요. 자기 자리를 지키고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사진 4. 첫 회기 내담자가 고른 투사적 사진

내 4: 네. 그런 것 같아요. 백마에서 불상이 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I CAN'T 사진을 보면 백조 같아요. 미운 오리 사이에서 백조라서 구박받고 자신은 오리가 아니었는데 오리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내담자는 '갈색 말속의 백마'를 미운 오리 새끼 동화의 '오리들 사이에서 정체감의 혼란을 일으키고 괴로워하는 백조'를 떠올린 것 같다. 백마와 백조, 이질적인 무리 속에서 정체감의 혼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내담자를 닮았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 불상이 되고 싶다는 내담자의 말에 백조가 물 위에서는 우아하고 한결같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수없이 발길질을 하면서 애쓰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갑자기 수직 상승할 수 없으며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함을. 백조처럼 보이는 사람도 내면에는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음을 내담자의 사고의 관점을 확장해주고 싶었다.     


상 4: 백조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백조가 수면 위에서는 우아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엄청난 발길질을 한다는 것이 생각났어요. 불상이 되기 위한 과정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거고, 우리가 보는 모습이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내담자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남은 회기 동안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느껴지는 자신에 대해, 그 혼돈의 원인과 영향, 의미의 해석에 대해 깊이 나누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행동계획을 세우고 훈습 과정을 거쳤다. 누구보다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소중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내담자였기에 성장의 여정을 잘 걸어갈 수 있었다.  


이 세상 누구도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럴 기회는 적다. 상담은 내담자를 주인공으로 초대하여 1인칭 시점에서 2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게 한다. 1인칭과 2인칭의 시점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결국 그 둘이 분리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분리된 내가 아닌 어우러진 하나가 될 수 있는 과정을 충분히 거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온전히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그것이 상담자의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어느 책에서 본 문장을 인용하며 마무리하련다.

"그 시간을 이겨낸 너를 위로한다. 지금의 당신을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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